- <여신님이 보고 계셔>, 남녀의 평이 다른 이유

[엔터미디어=정다훈의 문화스코어] 지난 15일 막이 오른 <여신님이 보고 계셔>(작 한정석, 작곡 이선영, 연출 박소영)를 남자 일행과 보고 나왔다. 흥미로운 점은 남자 관객과 여자 관객의 반응이 다르다는 점.

여자 관객의 반응은 대체로 넘버‘그대가 보시기에'가 흘러나올 때 만날 수 있는 건장한 남자들의 애교 섞인 율동에 자지러진다. 후반에 이르러서는 잊고 있던 ‘여신’의 존재를 떠올리며 기어코 눈물을 쏟아내는 관객도 몇몇 보였다. 반면 듬성 듬성 앉아있는 남자 관객은 자지러지는 웃음을 내비치기 보다는 억지로 웃음을 참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막이 내리자 한마디 하는 거였다. “딱 군 장병들을 위한 안성맞춤 뮤지컬이네”

그 말을 듣고 ‘이렇게 남녀 반응이 다를 수 있구나’ 하는 생각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기자가 본 이 뮤지컬의 장점은 ‘귀에 쏙쏙 박히는 호소력 있는 음악’, ‘꿈과 희망이 인간에게 필요한 이유를 알려주는 여신의 존재 및 극의 주제’, ‘귀엽고 잘생겼을 뿐 아니라 유머러스한 남자배우들이 여심을 공략한 점’ 등이었다.

남자관객의 입을 통해 들은 이 뮤지컬의 장점은 ‘군인들이 군 생활을 계속 이어갈 수 있게 해주는 활력소’를 갖춘 공연이었다. 그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틀린 말도 아니었다. 극 속에 나타난 미지의 여인 ‘여신님’은 그 자체로 희망과 엔돌핀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더더구나 치마만 두른 평범한 여자만 나타나도 환호성을 지르는 군인들에겐 말이다.

<여신님이 보고 계셔>는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외딴섬에 고립된 남북 병사 6명의 100일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 ‘황산’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나치 수용소에 수감된 광기에 빠진 집단이 한 여성 수감자의 영향으로 규칙이 생기고 질서를 유지하게 된다는 소설 속 설정이 뮤지컬 속에선 ‘여신님’의 존재로 그려진다.

작품 속에선 적군과 아군으로 대치하던 군인들이 ‘여신님’이란 가상의 존재 아래에서 서로 화합하게 된다. 이런 줄거리에 대해 ‘여신님이 도대체 어디있어?’. ‘그저 만화 같은 설정, 판타지 뮤지컬 아니야’ 딴지를 걸 수도 있겠다. 작가 역시 이런 질문을 미리 예상이라도 한 듯 위트 있는 대사를 준비했다. 바로 ‘공기도 안 보이는 데 왜 들이마시냐?’고.



6명의 인물들 중 주인공은 전쟁 후유증으로 정신이 살짝 나가버린 순둥이 ‘순호’와 사격 못해, 싸움 못해, 체력 딸려, 군인으로서는 전투능력 꽝이지만 타고난 입담과 잔머리의 달인 ‘영범’이다. ‘영범’은 전쟁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순호를 달래기 위해 여신의 전설을 지어내고 ‘순호’는 여신의 전설에 푹 빠져들면서 서서히 안정을 되찾아 간다.

무인도를 탈출하기 위해서는 인민군 포로 중 유일하게 배를 고치고 조정할 줄 아는 ‘순호’의 정신이 돌아와야 한다. 이런 순호를 달랠 수 있는 건 오직 ‘여신님’밖에 없다. 여신님이 좋아하는 건 ‘조용한 것’.‘나누시는 것’,‘깨끗한 것’,‘예의범절’ 등이다.

극중 순둥이 ‘순호’를 보며 작가 한정석씨가 궁금해졌다. 주변인들에게 물어본 결과 “‘순호’와 한정석의 이미지는 닮은 구석이 많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 대답을 듣고 따뜻함과 순수함이 공존하는 작가란 상상을 하게 됐다.

<여신님이 보고 계셔>는 ‘2011년 CJ Creative minds’, 2012년 제1회 서울뮤지컬페스티벌 예그린 앙코르에서 최우수작으로 뽑히기도 한 작품이다. 2012년 쇼케이스 무대보다 여신님의 비중이 커졌을 뿐 아니라 여신님의 의상 역시 변화했다.



여신님(이지숙)은 어머니, 여동생, 사랑하는 여인등으로 변신하면서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결국 인간’이란 생각을 갖게 했다. 또한 고통에 빠진 인간에게 ‘이야기’가 얼마나 소중한지도 깨닫게 한다. 무엇보다 발굴의 가창력을 지닌 ‘여신님’이 힐링이 필요한 대한민국 관객들에게 ‘내게로 와서 잠들라’ 고 외친다.

계속 발전해나가고 있는 뮤지컬이다. 많이들 지적하는 초반 30분이 몰입도가 다소 떨어지는 점이 아쉽다. 그 장면의 호흡이 보다 빨라진다면 매니아 관객 뿐 아니라 처음 관람하는 관객들까지 사로잡을 듯 싶다.

소극장의 묘미를 살리며 관객과 호흡이 많은 작품이다. 관객에게 먹이를 던지거나, 낚시줄을 던져 낚시를 한다. 관객이 물고기가 돼 배우와 스킨쉽을 할 수 있는 자리에 대한 정보가 알려지면서 일부러 그 좌석을 예매하는 관객들도 있다는 후문이다. 또한 공연 관람 횟수에 따라 배우들의 얼굴이 프린트 된 스티커를 찍어주는 행사도 열고 있다. 3월 10일까지 충무아트홀 소극장 블루에서 공연된다. 뮤지컬 <쓰릴 미>,<번지점프를 하다>,<트레이스 유>등으로 계속 발전해가고 있는 배우 윤소호의 섬세한 연기와 따뜻한 눈웃음이 눈에 띈다. 배우 신성민 전성우 윤소호 최호중 이진규 임철수 최성원 지혜근 이지숙 출연.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연우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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