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박보영 사태’ SBS의 해명이 뼈아픈 까닭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예능은 더 이상 웃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2013년에 들어서면서 이제 모두가 다 아는 이야기다. 화려한 픽션을 내세우는 것도 아니다. 그 영역에는 이미 드라마와 영화라는 별개의 굳건한 장르가 존재한다. 그렇다고 재미를 포기했다는 뜻은 아니다.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재미의 질과 다양성이 증가했다는 얘기다. 어떻게 웃음 이외의 재미를 추구하느냐? 이것이 오늘날 예능 프로그램의 화두이다.
<정글의 법칙>은 이런 경향의 선구자요 힌트였다. 웃음 이외의 재미가 존재하고 그것이 예능의 공식으로도 먹힌다는 것을 보여줬다. 리얼 버라이어티의 극단이란 단단한 과자틀 위에 여행과 생존이란 달달하고도 상큼한 로망을 절묘하게 배합해 올린 서양배 타르트와 같았다. 한 번 베어 문 시청자들은 그 맛에 빠져들었다. <정글의 법칙>은 시간대를 자주 옮겨 다니면서도 시청률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최근에는 시청률 20%대를 육박하는 수준까지 올라왔다.
시청자들이 이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이 여행을 떠난 것이 아니라 자급자족 생존을 해낸다는 설정이다. 떠나는 것이야 <걸어서 세계 속으로>부터 <세계테마기행>까지 다양하다. 음식기행도 있다. 허나 병만 족은 단지 떠나는 것이 아니다. 새롭고 낯선 오지에서 아무런 도움도 없이 자기 손으로 하나하나씩 해결해내고 돌아온다는 설정이 먹혔다. 모함과 탐험의 설렘과 함께 성취감의 대리 만족을 느끼게 해준 것이다. 불안한 미래, 어깨를 짓누르는 책임과 주위의 시선, 고장이 나기 직전의 부품에 불과한 듯한 비루한 현실의 모든 것을 던져놓고, 새롭게 시작한다는 로망을 모험을 통해 풀어내는 재미가 <정글의 법칙>을 사로잡게 한 중추였다. 이 중추를 지배하는 것은 당연히 ‘리얼’이다.
기이한 일이다. 안 좋은 일은 한꺼번에 온다고 했던가. 아니면 모든 일에는 증후가 뒤따르는 것인가. 7일 실시간 검색어의 한 자리는 고준희, 정진운 커플과 관련된 것이 차지했다. 최근 오연서와 이준 커플의 하차로 인해 리얼리티의 허상이 드러난 <우리 결혼했어요>와 ‘리얼 중의 리얼’을 표방하던 <정글의 법칙> 가짜설 파문이 물결처럼 연이어 터졌다. 게스트로 참여한 박보영의 소속사 대표이자 매니저가 현지에서 올린 글을 요약하자면 ‘다 짜고 하는 거고 실상은 호텔방에서 비싼 술 마시고 논다’라고 다소 격앙된 표현으로 자신의 SNS에 폭로를 했다. 사람으로 치면 심장에다 비수를 꽂은 격이다.

당연히 난리가 났다. 원래 리얼이 아닌 걸 몰랐느냐는 반응부터 대표의 기질을 탓하는 쪽까지 다양한 의견이 홍수처럼 쏟아졌다. SBS는 재빠르고도 정면 돌파의 정공법으로 파문에 맞섰고, 이내 박보영 소속사 대표는 술김에 한 일이라고 다소 어느 학생의 반성문 같은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 백미는 편지의 사족처럼 사과문 맨 뒤에 덧붙인 동물을 잡아서 촬영한 건 맞긴 한데, 그건 인서트용이라는 친절한 뱀다리였다. 이처럼 상처는 바로 꿰맸다. 허나 그 내상은 꽤나 깊어 오래갈 수밖에 없다. 대표의 SNS가 진실이든, 아니든 간에 정글에서 2주 넘게 고생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시청자들에게 카메라 밖의 모습이 그것도 꽤나 불필요한 부분들이 부각 되어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전에 우선 방송은 진짜가 아니고, 완벽한 리얼은 없기에 이번 사건도 별반 문제될 것이 없다는 주장은 일면 냉철해보이지만 <정글의 법칙>을 보는 시청자들의 심리와는 동떨어져 있다. 방송은, 특히 리얼버라이어티라고는 하지만 실제 리얼이 어디에 있냐는 냉소적 주장의 배경은 유독 예능만이 리얼함과 그로 인해 분비되는 친밀감을 강조하기 때문에 나타난다. 그만큼 예능은 유사현실의 판타지를 꽤나 정교하게 구축하고 그 품에 들어오도록 유혹한다.
시청자들은 당연히 CCTV를 보듯 100% 리얼한 상황이 아님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알아서 눈감아준 것 이상으로 ‘연기’ 하는 것이었다면 그것은 바로 기만이자 시청자들에게는 절교의 사유가 된다. 예전 <패떴>의 대본 논란과 <우결>의 이준, 오연서 커플의 하차 등의 사건이 그러하다. 마치 풍선을 바늘로 찌른 것처럼 시청자들과 함께 힘겹게 구축한 판타지 세상을 일시에 날려버리는 것과 같은 효과다.

그런데 생고생을 테마로 하는 <정글의 법칙>에 다른 얼굴이 있을 수도 있다는 의혹이 터졌다. 실제로는 다 설정이고 호의호식한다는 것이다. 사과문을 발표하고 사실관계를 바로잡긴 했지만 다른 프로그램도 아니고 진정성과 진짜를 내세운 <정글>이기에 파장은 클 수밖에 없다. 전교 회장 모범생이 알고 보니 일진일 수도 있다, 뭐 이런 식의 충격이다.
무엇보다 SBS의 공식 해명에서 촬영지 이동 중 호텔에 묵으며 맥주를 마시는 것을 일상적인 일이라고 한 부분은 뼈아팠다. 시청자들은 정글에서 2주간 고생하는 모습만 보고 감정이입을 하고 있는데 이들이 며칠마다 한 번씩 좋은 숙소에서 묵으며 술자리를 갖고 놀았다고 하니 씁쓸함이 감도는 것이다. 방송이 모든 것을 공개할 필요는 없지만 보여선 안 되는 부분이 있는데 그 지점이 엉뚱한 포화를 맞으며 살짝 드러난 것이다.
<정글의 법칙>을 둘러싼 논란은 ‘술이 웬수다.’로 정리되는 분위기다. 하지만 <정글의 법칙>의 로망에 입은 상처를 아직 아물지 않았다. 이번 사건 덕분에 원주민과의 교류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이들이 실제 원주민이 아니라 관광 사업을 하는 부족이라는 이야기도 퍼지고 있다. 박보영 소속사 대표의 이해하기 힘든 행동에 대한 질타와 동시에 원주민의 치아건강과 의복과 헤어스타일에 대한 의문 그리고 심지어 투어 코스를 소개하는 웹 페이지까지 떠돌고 있다.
다시 한 번 예능의 ‘리얼’이 풍전등화에 놓인 것이다. 리얼이 풍선처럼 크게 부풀어 오를 순 있지만 단 한 순간에 다시 쪼그라들 수 있음을 우리는 여러 사례를 통해 봐왔다. 한번 어그러진 판타지는 잘 회복되지 않는다. <정글의 법칙>의 재미가 쌓은 신뢰가 이번 논란까지 잠재울 수 있을지, 순항하던 뗏목에 뜻하지 않은 파도가 밀려오고 있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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