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 황제가 조련의 신으로 강림한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엔터미디어=최영균의 듣보잡(‘듣’고 ‘보’고 ‘잡’담하기)] 본방사수. 최근 들어 IPTV 다시보기나 OTT의 발달 등으로 점차 힘을 잃어가던 단어가 2020년 추석을 맞아 강력한 이슈로 재등장했다. 원래 인기 드라마에 즐겨 쓰이던 용어였고 지난해 ‘미스터트롯’ 열풍으로 좀처럼 사용되지 않던 음악 프로그램에서도 만나게 됐지만 체감상으로는 이번이 더 강렬한 듯하다.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추석 연휴 첫 날인 지난 30일 KBS2를 통해 방송된 트로트 황제 나훈아의 콘서트다. 2017년부터 매년 투어를 하고는 있고 지난 8월에는 새 앨범도 발표했지만 2008년 야쿠자 테러설과 관련된 기자회견 후 오랜 잠적이 있었던 데다 티켓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 여전히 많은 이들의 갈증이 계속되는 공연이다. 거기다 TV에서 공연을 보여주는 것은 15년 만의 일이니 더 난리가 날 만하다.

이날 방송 몇 시간 전부터 포털 사이트 검색어에 나훈아가 올라오는 등 본방사수 분위기는 일찌감치 고조됐다. 이 공연의 가치를 입증하듯 광고가 40여 개나 붙는 바람에 방송의 시작을 기다리는데 한참을 견뎌야 했다.

본방사수의 열기가 달아오를 수밖에 없던 것이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는 나훈아의 요청으로 재방송이나 다시보기 없이 본 방송 1회만 하기로 결정됐기 때문이다. 나훈아가 콘서트 이외의 노출이 극히 드물고 매번 하는 공연이 ‘세상에 한 번뿐인 공연’을 지향하며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점을 생각하면 이해되는 요구사항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나훈아는 ‘조련의 신’임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나훈아는 가수로서 가질 수 있는 모든 능력을 최고치로 지닌 희대의 대중예술가다. 넘볼 수 없는 가창력과 음색은 물론 히트곡이 120곡이 넘는 작사 작곡 능력, 풍성한 표정과 제스쳐의 공연 표현력, 쇼맨십과 카리스마, 그리고 관객을 쥐락펴락하는 입담까지 지니고 있다.

여기에 조련 능력도 신계이다. 관객과 눈을 마주치고 손을 잡고 밀어를 던지는 등 공연 중 조련도 초고수이지만 활동 방식에서도 다른 스타들은 선뜻 시도 못 하는 방식으로 조련을 개입시킨다. 극도로 노출을 자제하고 콘서트로만 세상과 소통하는 신비주의적 성향을 고수하지만 대중들이 자신을 갈구하고 공연을 기다려서 찾아오게 만든다.

이번 오직 1회 방송은 그런 조련의 연장선으로 보인다. 자신의 희소가치를 극대화시켜 대중들의 관심과 사랑을 증폭하고 유지하는 이런 조련은 물론 독보적인 스타성과 실력을 갖추고, 대중성과 작품성 높은 레파토리의 두터움을 가늠하기 힘들 만큼 쌓은 나훈아만이 시도할 수 있는 일 같아 보인다.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는 스타의 조련에 평소 거부감이 있던 사람이더라도 흔쾌히 넋을 내려놓고 따를만한 가치가 있었다. 무대에 들어오는 커다란 배 세트 위에 우뚝 서 ‘고향으로 가는 배’를 부르는 오프닝으로 시작된 공연은 1부 고향, 2부 사랑, 3부 인생을 거치면서 제목을 굳이 열거할 필요가 없는 수많은 명곡과 이번 신곡을 합쳐 총 30곡으로 채워졌다.

코로나로 인해 관객들은 랜선으로 관람했고 스테이지만이 아니라 객석도 거대한 LED 스크린이 배치된 외로운 무대였지만 나훈아의 열정은 그대로였다. 사운드 후처리 문제인지 아니면 나훈아도 세월의 영향을 받는 것인지 TV를 통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공연 초반 보컬 음향이 먹먹하게 들려 다소 아쉬움은 있었다.

하지만 곧 원래의 입체감 가득한 보컬을 되찾아 나훈아의 공연은 그대로임을 입증해 보였다. 대면 관객이 없어 트레이드마크인 관객 대상의 매력적인 멘트와 액션의 밀당을 볼 수 없었지만 CG와 무대장치 등 볼거리가 풍성히 이어져 코로나로 인해 생긴 공연의 빈 부분을 보완해 나갔다.

원래도 나훈아의 음악은 트로트에 가두기에는 컨트리 블루스 민요 가곡 등 다양한 음악적 확장성을 갖고 있는데 이날 공연에서도 크로스오버 포크 국악 록 그리고 힙합까지 결합한 무대로 본인의 음악적 넓이와 깊이를 한계 없이 밀고 나갔다. 방송 중 한 랜선 관객의 말처럼 한과 흥이 모두 풍만한 나훈아의 공연은 그렇게 시청자들의 가슴에 몰아치듯 왔다가 갔다.

이번 조련은 원래 나훈아 팬들의 팬심을 공고히 하는 것은 물론 신세대들의 유입도 야기했을 것으로 보인다. 조련된 어르신들이 리모컨을 꼭 쥐고 본방사수할 때 나훈아에 관심 없지만 명절이라 부모 친지와 함께 시간을 보내던 젊은 층도 최근 ‘미스터트롯’ 등 트로트 열풍을 통해 들어본 노래들 중에 나훈아의 작품이 너무도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듯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나훈아 공연을 챙겨 찾는 열성팬까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부모님의 나훈아 덕질(?)에 심정적으로 경제적으로 힘을 보태는 소프트 팬덤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은 크다고 본다.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방송 도중 나훈아는 김동건 아나운서와의 중간 토크에서 은퇴에 대한 생각도 해보고 있는 듯한 의미의 말을 꺼냈다. 하지만 이번 조련으로 세대를 넘어가며 넓혀지는 팬들로 인해 그 생각을 실행에 옮기는 일은 쉽지 않아 보인다.

최영균 칼럼니스트 busylumpen@gmail.com

[사진=KBS]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