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한도전>을 레전드로 만드는 두 개의 심장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착한 예능, 교양과 다큐 성향의 예능이 뉴웨이브를 이루고 있는 이때, 농구가 마이클 조던 전후로 나뉘고, 비틀즈가 팝 역사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것처럼 우리나라 예능사에 있어 가장 큰 분량의 챕터를 차지할 <무한도전>의 최근 특집들의 양상이 자못 흥미롭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가 2013년 1월에 진행한 프로그램 몰입도(PEI) 조사 결과, 6개월째 몰입도 1위의 기염을 토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새로운 흐름과 분위기 속에서도 여전히 자신의 영역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설 연휴의 ‘숫자야구’특집과 지난 주 ‘맞짱’ 특집은 생각 없이 웃는 <무모한 도전>시절의 몸개그부터 캐릭터쇼의 묘미까지 모든 것이 들어 있었다. ‘맞짱’ 특집에서 닭싸움이나 차 끌기 같은 레트로한 ‘무모한 도전’식 코미디와 2011년 빅뱅과 함께했던 ‘갱스 오브 서울’의 가위바위보 대결 추격전을 다시 가져와 <무한도전> 시청자들의 추억과 유대감을 자극했다. <무한도전>식 게임의 법칙을 잘 숙지하지 못한 조정치 등을 교육시키는 데프콘은 열혈 시청자의 모습 그대로였다.

이 두 특집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이런 자기 복제를 통한 재미를 넘어서 새로운 캐릭터를 설정하고 활성화하는 데 있었다. <무한도전>의 위기 혹은 침체는 캐릭터 쇼의 임계상황에서 나오는데, 이 두 특집은 다소 식상해진 캐릭터를 벗어내고 새로운 캐릭터를 계발하고 선보이는 데 집중했다.

멤버들의 캐릭터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은 물론, 올해 가장 성공적이었던 특집인 ‘못친소’의 친구들을 다시 초청해 <무한도전>의 가족 수를 늘렸다. ‘못친소’의 친구들이 갖는 의미는 <무한도전>의 초심이라 할 수 있는 ‘평균에 한참 모자란 무엇’에 대한 공감대다. 즉, <무한도전>의 초창기 ‘평균에서 한참 부족한 여섯 남자’라는 옛 무기다. 거기다 ‘갱스 오브 서울’ 특집의 조직이란 틀을 가져와 마포 꿀주먹, 서래마을 꼬요, 여의도 권 집사 등의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형성했다. 이를 통해 외연이 넓어지면서 캐릭터쇼의 기본인 갈등과 새로운 화학작용이 일어날 여지가 엄청나게 늘어났다.

그 한 예가 바로, 신치림의 두 멤버인 하림과 조정치의 관계망 형성이다. 예능의 대세로 떠오른 조정치에 대한 하림의 질투. 조직명 작명 시간부터 갈등을 고조시킨 후 아무런 주목을 받지 못하던 하림이 보스가 되자 화색이 도는 얼굴을 콕 집어낸다. 그러든 말든 무심한 조정치의 얼굴을 여기에 교차시킨다. 하림과 조정치의 예능감과는 별개로 <무도>에서 만들어내는 새로운 갈등관계인 것이다.



또 다른 예로 김영철과 김제동의 존재감 없고 구박받는 캐릭터는 기존의 길과 정준하, 정형돈의 그것을 물려받은 것으로, 등산 마니아 및 무쇠다리로 칭송받다 한 순간에 등신으로 나락한 길이 재미없는 캐릭터를 벗어나 한 단계 더 발전된 캐릭터를 갖게 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원군들이다.

이와 더불어 기존 멤버들의 새로운 캐릭터 설정을 위한 노력도 눈에 띄었다. 특히 최근 <무한도전> 내에 가장 성공한 캐릭터인 ‘F1’ 노홍철은 새로운 캐릭터 찾기 운동의 상징과도 같다. 물론 타의에 의해 불리긴 하지만 “살아 있네”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냈으며, 노긍정, 노집사라는 은혜로운 서브 캐릭터에도 힘을 불어넣었다. 그래서 요즘 <무한도전>의 에너지는 바로 노홍철에서부터 시작된다.

노홍철과 함께 새롭게 각광받는 멤버는 박명수와 정준하의 ‘하와수’ 콤비다. 이들의 콤비네이션 역사상 최고의 정점에 이르렀다. 예전과 달라진 점은 주로 윽박지르던 박명수가 정준하에게 무슨 캐릭터를 잡은 것이냐고 면박을 듣고, 박명수가 예의 말도 안 되는 멘트를 날리면 정준하는 ‘7년 해 본 입장에서 이런 건 방귀라고 생각해라’고 다른 이들에게 무시하는 법을 알려준다. 가장 강력한 홈런 타자이지만 극심한 슬럼프에 빠진 박명수가 정준하와의 호흡을 통해 자신의 캐릭터에 생명력을 다시 불어넣으며 이 콤비의 입담은 캐릭터 쇼의 불변의 재미로 격상되고 있다.



그런데, 이번 두 특집에서 가장 놀랄만한 변화는 유재석에게 있었다. 유재석은 담기는 물의 색, 주변의 색에 따라 빛을 달리한 투명한 크리스탈 잔 같은 인물이었다. 다른 멤버들이 캐릭터를 조금씩 변주해갈 동안 그는 이 캐릭터 쇼에 마지막 남은 청정지역이었다. 그런 그가 드디어 색깔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전에도 간간이 유재석의 잔소리가 웃음거리로 회자됐지만 ‘숫자야구’ 특집에서 정준하와의 고부갈등은 유재석 캐릭터를 부각시키는 전주곡이었다.

실제 포용하고 조율하던 역할에서 벗어나 갈등을 일으키는 존재로, 즉 박명수처럼 앞으로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맞짱’ 특집에서 자리를 탐내고, 정준하를 타박하는 유재석의 시어머니와 같은 히스테리컬한 모습은 그 또한 슈퍼맨이 아닌 다른 멤버들처럼 역시나 무언가 부족한 인물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따라서 앞으로 그의 존재가 만들어낼 갈등은 심화될 것이고, 이는 <무한도전>과 리얼 버라이어티의 기반이 되는 캐릭터 쇼의 생명력을 계속 강화해나가는 또 하나의 도화선이 될 것이다.

앞서 언급한 자료와 꾸준히 10%대 중반을 찍는 시청률에서 알 수 있듯이 <무한도전>의 기반을 이루는 웃음과 캐릭터쇼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은 여전히 유효하다. 예전만큼 넘버1 시청률은 아니지만 이보다 더 강력한 팬층을 가진 예능 프로그램도 없다. 이를 가능케 하는 원동력이 바로 쉼 없는 변혁과 시청자들과 함께해온 7년간의 역사를 자기 복제하는 두 개의 심장이다. 변혁은 여러 장치와 기획을 통해 캐릭터의 끊임없는 변주와 성장을 뜻한다. 지금 <무한도전>은 새로운 흐름과 다소 정체된 캐릭터라는 장애물을 전혀 다른 성질의 두 에너지원을 하이브리드하여 넘어서고 있는 중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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