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작년 한국 영화계에서 있었던 일들 중에서 가장 실망스러웠던 건 영화평론가 정성일의 감독 데뷔작 [카페 느와르]의 개봉이었다. 영화 자체에 실망했다는 건 아니다. 정말 그 영화는 모두가 정성일이라는 평론가에게서 기대할 법한 바로 그런 영화였으니까. 오히려 우리가 기대했던 것보다 더 정성일 같았다는 게 신기했달까. 그에 대한 선호도나 입장이 어떻건, 영화가 미리 세워놓은 기준보다 모자라 실망할 일은 없었다.
실망스러웠던 건 영화에 대한 반응이었다. 정성일이 영화를 만든다는 소리가 들린 뒤부터 온갖 이야기들이 다 돌았는데, 그 중 가장 자주 들리는 소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번엔 네 차례다!”라며 정성일의 영화를 깔 준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개봉되면, 적어도 그와 그의 평론에 관심이 있는 작은 서클 안에서는 신나는 소동이 벌어질 것 같았다. 근데 웬걸. 개봉하고 나니 반응은 정반대였다. 평은 대부분 긍정적이었고 온화했다. 내가 정성일이었다면 실망했을 거다. 가드 올리고 준비하고 있는데, 아무도 치러 오지 않는다. 이런 젠장.
이건 좀 수상하다. [카페 느와르]는 모두의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는 영화는 아니었다. 생각해보라. 괴테와 도스토예프스키를 멋대로 엮어 하나의 이야기로 만든 뒤, 멀쩡한 배우들에게 10분짜리 발연기를 시키는 3시간짜리 영화이다. 나는 재미있게 봤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럴 수 있을까. 이건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취향과 입장의 문제다. 당연히 신나는 토론의 시작이 되었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평론가들은 이를 굳이 비평할 필요가 없는 교과서나 성경으로 보고 그 안에서 알아서 의미를 찾아 읽는 것으로 만족한다. 언제부터 우리나라 영화계가 이렇게 화기애애한 곳이었던가. 이건 무심한 듯 시크하게 벌이는 사보타지인가.
이만큼은 아니지만 비슷하게 실망스러웠던 건 임권택의 [달빛 길어올리기]에 대한 반응이었다. 임권택의 101번째 영화는 [조선왕조실록] 복본 사업을 맡은 7급 공무원을 주인공으로 삼은 전통 한지 예찬이다. 드라마라기보다는 극영화의 탈을 쓴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결코 완벽한 발성이 장기가 아닌 박중훈은 대사를 위장한 몇 십 줄짜리 정보 제공용 내레이션을 읊느라 버벅대고 강수연은 종종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용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짐꾼처럼 보인다. 한 마디로 이 영화는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본편 상영 앞에 틀던 문화영화랑 크게 다를 게 없다. 감독이 자신의 의지로 찍은 메가 스타 출연 영화라는 게 다를 뿐이다.
이 영화를 좋아하고 예찬할 수는 있다. 영화는 종종 아름답다. 장르 배합은 엉뚱하니 재미있다. 수십 년 동안 하나의 영역에서 작업을 해온 노장의 여유도 보인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이 영화를 좋아해서는 안 된다. 영화는 완벽함과 거리가 멀고 소재와 주제를 대하는 태도는 수상쩍다. 당연히 이는 토론의 시작이어야 했다. 하지만 대부분 평자들은 임권택의 101번째 영화를 적극적으로 비판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들 모두가 이 영화를 좋아해서? 음,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정말로 그렇다면 우리나라 영화 관객들과 비평가들의 문화적 유전자는 캐번디시 바나나처럼 단일화되었다는 말이니, 조용히 앉아 다가올 멸종을 기다릴 수밖에 없겠다.
물론 정말 그런 건 아니다. 영화잡지에 실린 별점 리스트를 보면 이 영화에 부정적인 의견들도 꽤 있다. 단지 애써 목소리를 높여 그 의견을 비평으로 확장하는 사람들이 적을 뿐이다. 아마 그들은 굳이 101번째 영화를 낸 노인을 깔 생각이 없는 건지도 모른다. 하긴 임권택은 우리나라 영화계에서 희귀종이다. 아직도 영화를 찍는 36년생. 외국에서 이건 별다른 특권도 아니지만, 90년대에 피가 날리는 숙청과정을 한 번 거친 우리나라에서 이런 노장은 보호받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게 이건 예의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임권택의 101번째 영화에 대한 가장 정중한 태도는 그를 한 명의 현역 감독으로, [달빛 길어올리기]를 2011년에 개봉한 한 편의 현대 영화로 보고, 거기서부터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야 영화가 관객들과 역사 속에서 숨을 쉬고 하나의 살아있는 예술작품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개봉되자마자 비평가들과 관객들의 조용한 예우를 받으며 박물관으로 들어가는 영화에게 무슨 기회가 있겠는가.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달빛 길어올리기’]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