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겨울>, 믿음 배반하지 않은 노희경 작가의 힘

[엔터미디어=신주진의 멜로홀릭] 노희경 작가가 전작 <빠담빠담, 그와 그녀의 심장박동소리>를 종편채널 JTBC에서 하기로 했을 때, 한쪽에선 ‘노희경 너마저’하는 실망과 비난의 소리가 일었었다. 막상 뚜껑을 연 드라마는 오랜 사진첩처럼 낡았지만, 흑백사진 같은 심도와 안온함은 ‘그래도 역시 노희경이야’하는 말을 내뱉게 했었다.

그리고 그런 ‘노희경 너마저’와 ‘그래도 역시 노희경이야’라는 상반된 감정은 이번 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서도 그대로 반복된다. 아무리 원본 부재의 시대라고는 하지만, 노희경 작가가 일본드라마 원작을, 그것도 드라마로 영화로 우리고 우린 남의 원작을 가져오는 것은 상당히 실망스러운 일이다. 게다가 변칙편성으로 방송사들 사이에 잡음까지 일어나니 여러 모로 유쾌하지 않은 상황이다.

물론 변칙편성이 작가의 책임도 아니고, 일개 작가에게 나날이 노골적으로 상업화되어 가는 방송 시스템에 대한 책임을 모두 전가시키는 것도 온당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그래도 노희경인데’하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자꾸 드는 것은 노희경 작가에 대한 여전한 믿음과 기대 때문이기도 하다.

응당 세상에 하나밖에 남지 않은 혈육인 오빠를 기다리는 시한부의 시각장애 여자와 그녀의 막대한 유산을 노리고 오빠인 척 접근한, 인생 막장에 다다른 남자의 사랑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사랑따윈 필요없어’를 외치던, 세상에 상처받고 버림받은 두 인물이 자신들이 그토록 부정했던 사랑을 되찾는 순간 파국을 맞아야 하는 것은 인간사의 가장 고전적인 비극에 해당한다.

<그 겨울, 바람이 분다>는 담백하지만 다소 칙칙했던 원작을 매우 화려하고 스타일리쉬하게 복원해낸다. 원작의 절망적 상황 속의 거칠고 음울한 나쁜 남자는 훨씬 매끈하고 로맨틱한 핸섬 가이로 변신했다. 군필자 조인성의 얼굴에 내려앉은 미세한 세월의 흔적은 세상의 때가 묻은 지친 오수의 얼굴을 적절하게 살려준다. 게다가 파리하고 예민하고, 깨질 것처럼 투명하고 위태로운 송혜교의 오영은 성에 갇힌 눈 먼 공주를 시각적으로 탁월하게 형상화해낸다.



그렇게 두 주인공 캐릭터에 힘입은 드라마는 처음부터 곧장 오수와 오영의 멜로를 향해 직진한다. 오수가 오영의 오빠인가 아닌가, 오수의 정체를 둘러싼 의혹의 미스터리는 정확히 두 사람 사이의 팽팽한 갈등과 긴장을 만들어준다. 오랜 시간 버림받고 상처 입은 여자의 깊은 원망과 날선 경계심, 어떡하든 살아남아야 하는 남자의 초조하고 절박한 무모함. 이들 사이에 밀당 로맨스가 강화됐다고 말할 수도 있다.

앞 못 보는 오영에게 오빠와 낯선 남자를 오가는 오수의, 그리고 오수에 대한 오영의 아슬아슬한 감정은 사랑의 불가해성과 함께 육체적 긴장을 끌어올린다. 청각, 촉각 등 감각은 생생해지고, 멜로는 훨씬 농밀해졌다. 두 사람의 시선이 한 곳에서 만날 수 없는 어긋남의 비극성은 애처로움과 절절함을 배가시킨다.

게다가 노희경은 여전히 산다는 것의 의미를 묻고 있다. 갬블러에 건달인 오수가 인생의 바닥까지 몰린 상황에서 벌이는 마지막 도박에서, 이 더러운 시궁창 같은 세상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꼭 거창한 의미가 있어야 사는 거냐? 사는 의미가 없는 놈은 살면 안 돼? 이렇게 사는 게 쪽팔려도, 나 살아 있으니까, 살고 싶다.”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오수와 달리, 자신에게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감지하고 있는 오영은 차라리 자신이 먼저 죽음을 택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것은 그녀가 죽음에 길들여지고, 죽음의 공포에 맞서는 방식이다. “살고 싶어 하는 내가 죽고 싶어 하는 여자를 만났다. 우리는 분명 너무도 다른데, 왜였을까? 그 순간 나는 그 여자가 나 같았다. 처음으로 그 여자가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사랑이 시작된다.



노희경에게 삶의 절실함, 절박함은 삶과 죽음이 항상 함께 있기 때문이다. 삶 이후, 삶이 끝나는 것으로서의 죽음이 아닌, 삶과 붙어 있는 죽음. 삶을 위협하지만, 그래서 더 삶을 욕망하게 하는, 삶과 공존하는 죽음. 이 비극적 양면은 오수와 오영의 사랑으로 격렬하게 부딪치고 절정으로 치닫는다. 이들에겐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야 비로소 살아야 할 이유를 찾고, 사랑을 깨닫고 사랑을 얻었을 땐 결국 죽음을 맞게 되는 것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오영을 둘러싼 오수와 왕비서(배종옥)의 삼각관계이다. 표면적으로는 오영의 재산을 노리는 오수와 왕비서, 두 사람이 서로의 정체를 의심하고 서로를 불편해하고 적대시한다. 그러나 왕비서의 영이에 대한 감정은 훨씬 복합적이다. 그녀가 단지 영이의 재산을 탐내고 자신이 미는 이본부장(김명훈)과의 결혼을 밀어붙이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그것보다 그녀는 영이를 끝까지 소유하고 싶어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영이를 애정 없는 결혼으로 몰고 가는 것은 마치 그녀가 영이를 독점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엄마가 되고 싶어 하는 그녀의 과도한 애정과 욕망은, 과도한 집착과 과잉보호로 나타난다. 영이를 가두어놓고, 자신에게 의존하게 만들고, 자신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어린 아이로 만들어놓은 것이다.

그렇게 <그 겨울, 바람이 분다>는 78억을 놓고 벌이는 쫓고 쫓기는 사생결단 밑에 사랑으로 상처받고 배신당하고 사랑의 상실로 고통 받는, 그래서 더욱 더 사랑을 욕망하는 인간의 여린 내면을 촘촘히 박아놓았다. 심지어 오수를 쫓는 악인인 무철(김태우)에게도 사랑의 그림자를 짙게 드리워 놓는다. 노희경은 여전히 헛된 욕망을 좇는 인간들에서 단지 그 욕망만을 보는 것이 아닌 그 욕망의 그림자, 그 안에 놓인 사랑을, 삶과 죽음을, 인생을 그리고 있다.

칼럼니스트 신주진 joojin913@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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