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오페라의 유령>엔 팬텀, <날아라 박씨>엔 엔젤이 있다.
[엔터미디어=공연전문기자 정다훈] 누군가 그랬다. “뮤지컬이란 몇 번 빛나지 않는 삶의 순간을 춤과 노래로 얼려 영원히 잔상과 이명으로 남겨두는 몸부림이라고.”
뮤지컬 <날아라, 박씨!>의 컴퍼니 매니저 오여주도 한 편의 뮤지컬을 만들기 위해 힘겹고도 사랑스런 몸부림을 친다. 그녀를 울고 웃게 했던 바로 그 ‘무대’ 때문이다.
■ 무대 가장자리를 빛내는 초인적인 히어로들에게 경배를
대구 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과 제1회 서울 뮤지컬페스티벌 예그린앙코르우수상으로 선정 된 뮤지컬 <날아라, 박씨!>는 하나의 창작 뮤지컬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 그 안에 담긴 제작진의 고민을 담아낸 작품. 극중극 형식을 도입해 무대 속의 ‘박씨전’ 이야기와 백 스테이지에서 벌어지는 스토리를 동시에 보여준다.
이 작품은 컴퍼니 매니저 오여주의 내레이션이 함께한다. 그렇다면 컴퍼니 매니저란 게 뭔가? 이름이 좋아 매니저지 실제론 배우 스케줄 관리, 배우 및 스태프간의 갈등 발생할 때 해결하기, 상대 배우 대신 대사 맞춰주기, 공연 일정 관리 등 모든 일에 불려 나가 온갖 시다바리(보조원)로 활약 하는 임무를 맡는다. 공연이 올라가기까지 가장 마음 조리며 지켜보는 사람 중 한 명 인 것이다.
이 작품의 외피는 공연을 올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의 땀과 눈물이 있었는지를 알려주는 것이지만 내피를 벗겨보면, 모두가 반짝 반짝 빛나는 인생의 주인공임을 따뜻하게 이야기 하는 작품. 공연을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들어선 뮤지컬 세계에서 점점 매너리즘에 빠져가던 여주가 그러했듯, 음악을 듣고만 있어도 행복했던 황태경이 본인이 원하는 음악보단 기획사 대표가 원하는 음악을 선택하며 자괴감에 빠졌듯 말이다.
우울증도 이겨내게 해준 뮤지컬에 대한 애정은 태경의 ‘이명’을 빗대 이야기 하고 있다. ‘불안과 걱정을 덜어내면 빈 공간이 널 위해 공명해주지 않을까’란 여주의 대사에서 짐작할 수 있다.
‘무엇이든 창작단 동이주락’이라는 창작 단체를 만든 신인작가 정준과 작곡가 조한나의 실제 체험이 가득 담겨 있는 작품이다. 초인적인 히어로들이 뿜어내는 생생한 치유와 성장의 과정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그 결과 무대 가장자리를 빛내는 초인적인 히어로들인 앙상블, 언더스터디, 커버 그리고 컴퍼니 매니저와 조연출들에게 건배를 하고 싶어진다.
특히 <날아라, 박씨!>는 자칫 진부한 이야기로 빠질 수 있는 위험을 이겨내고 고전소설 ‘박씨부인전(朴氏夫人傳)’을 재치있게 끌어들였다. 오여주와 ‘박씨부인’의 인생을 교차시켜 보여 준 결과 ‘모두가 두근거리는 삶의 주인공이다’란 주제는 명확해졌고, 극은 훨씬 재기발랄해졌다.

■ <오페라의 유령> 팬텀을 가뿐히 제압한 ‘애인절 나으리'의 매력
이 뮤지컬! 까도 까도 뭔가가 나오는 양파처럼 숨겨진 이야기가 무궁무진하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내용 아니야? 하는 관객의 반응을 이미 예견한 듯 ‘’슈렉‘이나 ’헤어스프레이‘ 따라 하는 것 같잖아.’, ‘’오페라의 유령‘에서 분노한 팬텀 때문에 목소리가 망가진 이가 누구야. 칼롯타’를 대사로 인용하며 재치 있게 객석의 머릿 속을 점령했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에서 칼롯타의 코러스 역할에 불과했던 크리스틴은 팬텀 덕분에 일약 프리마돈나로 등극한다. 신성한 무대에 절대 오를 수 없었던 오여주는 흉측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꽃미남도 아닌 그를 믿어주는 연출가로 인해 단 하루 뮤지컬의 주인공이 된다.
여기서부터 박씨부인과 시백이의 사랑 이야기가 아닌 ‘박씨부인’과 ‘애 인절 나으리’의 숨겨진 인간적인 사랑이 폭발한다. 흥미로운 점은 팬텀 역으로 볼 수 있는 ‘애 인절 나으리’가 얼굴을 마스크로 가려야 하는 게 아니라 크리스틴으로 볼 수 있는 ‘박씨부인‘이 장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다녀야 한다는 점.
박씨는 처음엔 남편의 사랑으로 허물을 벗을 수 있다고 믿었지만, 곧 천사(애 인절)의 도움으로 자신의 허물을 벗을 수 있게 된다. 으리으리한 샹들리에가 객석을 지나 떨어지진 않지만 박각시나방 애벌레의 깜찍한 변신술이 관객을 맞이한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에 유명 넘버 ‘팬텀 오브 오페라(The Phantom of the Opera)’가 있다면, 따라 부르기 좋은 우리 뮤지컬엔 국악가락이 함께하는 ‘장옷녀송’이 있다. 이 어찌 웃지 않을 수 있겠나.
곳곳에서 터지는 웃음코드에 대해선 반응이 갈릴 듯 보인다. 그럼에도 주제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톡톡 터트려주는 에피소드에 박수를 칠 수 밖에 없다. 또한 이번 작품에서 처음으로 조연을 맡게 된, 7년차 앙상블 배우 ‘장미’ 역 배우 방글아의 시원한 성량은 그녀를 주목하게 만들었다. 애 인절 나으리 역 배우 정동석의 유연한 몸놀림과 무대 장악력 역시 ‘이 배우 분명 뜬다’에 내기를 걸고 싶어질 정도다. 능수능란한 립 버블(입술떨기)과 박씨부인과 다를 바 없는 추녀로 태어난 시백이의 엄마로 분한 배우 김남호의 감초 같은 연기도 유쾌함을 전달했다.
권호성 연출 양정아 조연출의 <날아라, 박씨!>엔 회전문을 부르는 꽃미남 배우들이 떼거지로 나오진 않지만 보고 또 보고 싶은 정겨운 배우들이 함께한다. 바로 홍륜희 엄태리, 정가호 송태윤, 이영기, 윤영진, 문혜원, 정동석, 김남호, 방글아, 권은지, 이명화, 박두영, 안진영, 김지윤이 그들. 주인공 여주 역으로 분한 배우 홍륜희 엄태리의 작품에 대한 뜨거운 애정은 그녀들의 눈빛에서 이미 감지하고도 남는다. 3월 17일까지 서울 동숭동 PMC대학로 자유극장.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무엇이든 창작단 동이주락, 쇼앤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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