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박2일>, 대중은 더 강력한 마취제를 원한다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해피선데이>의 화창했던 햇살에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남자의 자격>은 폐지가 확정됐고 <1박2일>은 제작진을 교체하고 김승우가 하차한다. 여기에 <배우들>이나 <달빛프린스>와 같이 자리를 잡지 못한 신생 쇼에 대해 빠른 용단(?)까지 합쳐지니 공중파 예능의 위기라는 시각까지 존재할 정도다. 좋든 싫든 변화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 닥쳐왔고, 이는 선택의 순간을 만들었다. 어쨌든 정들었던 무엇과 이별해야 할 시간이 된 것이다.

물론 공중파 예능의 위기는 아니다. 휴머니즘과 교양적 가치가 힐링 코드와 결합한 새로운 흐름을 맞이한 세대교체의 시기일 뿐이다. <썰전>이나 ‘SNL코리아’, <푸른거탑>처럼 휴머니즘을 찾아볼 구석은 없지만 타겟팅을 좁히고 확실하게 한 종편이나 케이블 쇼들이 도드라지는 것도 바로 이런 새로운 흐름이 도래하면서 드러나는 다양성의 한 차원인 것이다.

문제는 왜 영광의 화석화가 진행되었냐는 것이다. 한때 일요일 저녁을 호령했던 KBS 간판 예능 <해피선데이>은 어쩌다 시청자들을 떠나보내게 되었냐는 것이다. 특히 휴머니즘의 예능이 대세를 이루기 전, <무한도전>이 싹틔운 성장과 패밀리십의 캐릭터쇼를 기반으로 휴머니즘과 힐링 코드를 리얼 버라이어티 안에 가져온 것이 바로 <1박 2일>과 <남자의 자격>이었다. 시대를 앞서갔고, 또 그것으로 사랑을 받았다. 그런데 이들이 역설적이게도 힐링과 휴머니즘의 시대를 맞이하면서 무너졌다. 이는 대중들은 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볼거리를 원한다는 말과 비슷한 논리로 설명할 수 있다. 지금 시청자들은 보다 더 직접적이고 훨씬 진한 힐링을 원하는데 <남자의 자격>과 <1박 2일>은 기존에 통했던 공식 그대를 답습하며 원래 하던 것만 계속해왔던 것이다.

<1박2일>은 복불복 게임과 야외 취침이란 당시 시청자들이 출연자들의 고통을 기꺼이 공감해줄 수 있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벌칙으로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게임은 구성일 뿐이고 시청률 30%대를 유지할 수 있었던 근원적인 이유는 잊고 있었던 무엇인가를 떠오르게 하는 정서적 공감대였다. 그간 우리가 등한시 했던 우리나라 곳곳의 아름다운 풍광과 시골마을의 정겨운 풍경, 이웃의 정, 가족애, 마냥 즐거웠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한 동심 등으로 이뤄진 정서는 일요일 저녁, 평화로운 가족이란 그림에 딱 들어맞는 콘텐츠였다.

개구지게 게임을 하면서 웃음을 만들어내지만 강호동이란 강력한 리더를 중심으로 뭉친 출연진들의 끈끈한 가족애와 연예인임을 내려놓고 현지화된 모습에서 사람들은 ‘나도 저 곳에 가고 싶다’ ‘나도 저들 사이에 끼고 싶다’라는 동경을 자아냈고 실제 <1박2일> 촬영지에 대한 여행 붐이 일기도 했다. 예능으로 시작했지만 그들이 내뿜은 것은 웃음이 아니라 동경이었고 아웃도어 열풍과 맞물려 라이프스타일이 되었던 것이다.

지금의 <1박2일> 시즌2 체제가 시작된 지난해 3월 4일, 27%를 상외 하는 시청률을 기록했던 것을 보면 시청자들은 멤버가 바뀌고 상징이라 할 만한 강호동과 나영석 PD가 빠졌지만 여전히 기대를 갖고 있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 1년간 평균적으로 시청률이 10% 넘게 빠졌다. 새로운 제작진과 예능 초보로 구성된 새로운 <1박2일> 멤버들은 복불복 게임을 하며, 그 속에서 가족애를 싹틔우고자 노력했다. 이수근이 직접 멤버 하나하나 퇴근을 시켜주면서 멤버들 간의 우애를 그려내도 강호동 시절만큼 그들의 조합에서 어떤 따스한 기운이 퍼져나가지 못했다. 시청자들이 멤버들에게 감정이입을 하지 못하고, 그들이 모여 있는 그림에 속하고 싶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는 것은 더 이상 이런 식의 가족애를 쌓아가는 과정에 동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남자의 자격>도 마찬가지다. 리얼 버라이어티의 끝물에 발을 담군 아류라는 평가를 뒤엎고 존재와 위상이 위태로워진 중년 남성, 즉 아버지 혹은 아저씨에 대한 위로라는 힐링 코드로 큰 사랑을 받았다. 마라톤을 하며 서로를 챙기는 모습에서 가족애가 드러났고, 멤버들의 캐릭터 또한 아버지 이경규부터 막내 윤형빈까지 가족의 형태로 윤곽이 잡혔다. 중년 남성들의 대변자로서 사랑을 받던 <남자의 자격>은 박칼린과 함께한 합창단 미션을 통해서 홈런을 쳤다. 예능과 힐링 감동 코드가 접목해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사례였다. 그러나 아저씨들의 행복을 위한 고군분투기는 고군분투의 정도가 덜 해지고 혼수 논란이나 각종 이해할 수 없는 미션들을 통해 잽을 날리다가 3년 연속 합창단을 하면서 결정적인 어퍼컷을 스스로에게 날렸다. 꾸며진 감동은 힐링이 아니라 지루함만 가중했다. 아저씨들은 어떻게 마주할지 모르던 육아문제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는 <아빠 어디가>로 넘어갔다.

이처럼 <1박 2일>과 <남자의 자격>은 멤버간의 가족애를 바탕으로 성공한 대표적인 예능이다. 그들은 모두가 남자지만, 그 안에서 각자 맡은 역할은 한 가족 구성원의 그것과 같았다. 그런데 멤버가 바뀌는 과정에서도 가족애를 주조하는 방식을 아무런 고민 없이 반복했다. 가족이란 원래 바뀔 수 없는 것인데다 멤버 각각이 가진 잠재력과 임팩트는 오히려 후퇴했는데 말이다. 게다가 보다 살벌한 환경에 놓인 가족인 <정글의 법칙>의 병만족이 등장하고, 실제 직장에서 부딪히며 살아온 <인간의 조건>이나 실제 부자지간의 이야기인 <아빠 어디가>처럼 실제 관계를 카메라 앞에 가져오면서 이들이 쌓아온 패밀리십과 이를 기반으로 한 공식의 경쟁력은 일순간에 감퇴했다.



KBS1의 다큐멘터리 <공부하는 인간ㅡ호모 아카데미쿠스>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하버드대생 4명이 동양인들이 공부를 대하는 태도와 목적을 탐구하는 형식의 다큐인데, 동양인들은 공부를 하는 목적에 있어서도 개인보다 가족을 중시한다고 한다. 자기 자신의 욕망보다는 가족, 부모에 대한 기대에 부흥하고 최소한 남보다 뒤처지지 않으려는 체면이 중요시 된다는 것이다. 각종 게시판에서 회자된 대치동 초등학생의 영어실력에 한 번 놀래고, 공부의 목적과 인생의 목적을 비롯한 삶의 태도에서 한 번 더 놀랐다는 그 캡쳐 영상이 바로 이 다큐의 한 장면이다.

오늘날 예능이 휴머니즘을 강조하게 된 것도 이 다큐의 내용과 무관하지 않다. 경기가 나빠지고 더욱 더 경쟁에 내몰릴 때 사람들은 소중했지만 소홀히 했던 것, 특히 가족을 돌아보며 울타리를 점검한다. 사회가 경직되고 경기가 어려울수록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낙오자가 되길 두려워하는 우리는 다시 한 번 희망이 불타오르길 바란다. 웃고 떠드는 것보다 더 필요한 것이 마음의 안정과 정화인 시대인 셈이다. 예능에서 답을 얻고 인생의 희망을 얻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더욱 힘들어진 만큼, 더욱 지쳐있는 만큼, 그 마음을 달래줄 달콤한 초콜릿을 원한다. 그것도 카카오와 설탕으로 이뤄진 순도 높은 초콜릿으로 말이다.

지금 시점에서 돌이켜보면 과도기적인 힐링 코드의 예능인 <해피선데이>는 더 큰 웃음이냐 더 핍진한 힐링이냐는 선택의 순간을 마주한 것이다. <남자의 자격>은 문을 닫았고, <1박 2일>은 다음을 기약했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기존 리얼 버라이어티 방식의 힐링 코드는 이미 현실성을 잃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더욱 달콤해서 더욱 강력한 힐링 효과를 지닌 초콜릿을 이미 맛보았다. 사람들은 더 힘들어진 만큼 더 강력한 마취제를 원하고 있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KBS]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