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글>의 울분 섞인 해명, 왜 쿨하지 못했나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드디어 박보영이 등장했다. 그녀의 팬이 아니더라도, <정글의 법칙>의 열혈 시청자가 아니더라도 궁금한 장면이다. 아시다시피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박보영이란 이름을 끼고 발발한 대사건을 어떻게 수습하고 나아갈지는 병만족의 생존보다 더 날카로운 생사의 갈림길 위에 놓인 서바이벌이고, 방송 내의 리얼리티를 떠나 모두에게 현재진행형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다소 지겨울 정도로 <정글의 법칙> 논란이 회자되는 것은 사소하게 발화된 논란이 오늘날 예능에 대한 시청자들의 본질적인 감정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 기묘한 지점이 할 말에 할 말을 물고 늘어지게 한다. 일각에서는 방송과 현실을 구분 못하는 순진한 '대중'들이라고 하고, 한편에서는 제작환경을 잘 몰라서라고 하고, 한편에서는 일종의 배신감을 느꼈다고 한다.

예능 1위 프로그램이자 웃음이 아닌 다른 정서로 승부를 보는 시대를 이끈 큰 형격인 프로그램에 놓인 시련. 웃음이 최우선 과제일 때는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지 않으려면 계속 웃기면 되지만, 정서(진정성으로 주조한)로 다가간 프로그램이 그 정서에 상처를 입고 그간의 공감대가 의심을 받을 때, 이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는 아직 공식이 성립하지 않은 문제다. 어찌됐든 용서를 구하고 화해가 필요한데, 이를 어떻게 해결할지에 모두의 관심이 쏠린 것이다.

쿨하지 못해서 미안해.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렇게 들렸다. <정글> 제작진이 들고 나온 것은 새 여행지에 대한 프리뷰를 대신해 뉴질랜드편을 준비한 제작진의 노고였다. 17여분가량 진행됐으니 꽤나 큰 시간을 쓴 만큼 세세했다. 실제 현지 전문가들과의 대화 속에서 관광객 많은 곳은 제외, 인공 장비에 의존해야 하는 곳은 제외, 안전이 담보가 될 것 등의 생존지 선택의 까다로운 기준을 공개했다. 또한 어렵고 어렵고 또 어려움을 거치며 천혜의 로케이션 장소를 물색했지만 국립공원 관계자로부터 촬영불가 통보를 받으며 모든 고생이 수포로 돌아가는 과정 등을 통해 3주간의 걸친 탐사 기간 동안 제작진이 <정글>의 진정성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고생했는지 보여줬다.



허나 이는 사족이다. <정글>이 추구한 리얼리티는 그 자체로 존재의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시청자들이 TV를 보면서 판타지를 구축하도록 하는 울타리였다. 시청자들은 내가 저 상황이라면, 저들과 함께한다면, 저기에 간다면 어떻게 할까라는 상상을 하면서 빠져든다. 그 상상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만들고 돕는 것이 병만족을 둘러싼 오지의 리얼리티다. 그래서 이번 논란이 타격이 된 것이다. 당연히 그랬어야 하겠지만 판타지를 원하는 시청자들에게는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이동 중 숙식에 관한 문제, 그러니까 카메라 밖의 모습을 시청자들이 알게 된 것이다. 판타지를 꿈꾸고 있는데 그 울타리를 보게 된 것이다.

비약과 과장을 덧붙이자면 시청자들은 짐 캐리가 <트루먼쇼>에서 스튜디오의 존재, 자신의 세상을 둘러싼 울타리를 발견한 것과 비슷한 감정을 받은 것이다. 이번 논란 후 먹을 것 있는데 왜 괜히 동물들을 잡느냐는 말이 나오는 것도 바로 이런 감정의 발현이다. 따라서 이번 회에서 다소 울분 섞인 해명을 하는 것보다 울타리 내부의, <정글>이 최고의 예능 프로그램이 될 수 있었던 그 정서에 더 천착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갖고 있는 본질로 승부를 보지 않고, 해명의 변을 털어놓는 것 같아 쿨하지 못해 아쉬운 것이다.



결과론이지만, 논란만 없었다면 뉴질랜드 편은 프로그램이 받고 있는 가속도에다가 박보영이란 A급 히로인의 존재, 웃음으로나 생존 미션으로 보나 균형이 최적화된 게스트의 가세로 정점을 찍을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도 이런 저런 사족 덕분에 본 방송을 볼 시간은 짧았지만 멤버로 보나 수려한 환경으로 보나 꽤나 기대를 품게 했다. 특히 강한 승부욕을 지닌 데다, 거버사의 멀티툴을 챙겨오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밀리터리 생존기술을 갖춘 정석원의 가세는 리키 김과의 관계, 능력이 부족한 형님들과의 관계를 비롯해, 초창기의 생존보다 원시 부족 체험과 문화 교류 쪽으로 넘어갔던 중심 추를 다시 돌려놓을 것이란 기대를 품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번 논란을 의식한 편집에다 초심까지 겹치니 다소 과하게 느껴졌다. 초심을 강조하며 쥐라기 체험이란 주제 하에 태초로 돌아간 원시체험은 이벤트성으로 흥미로울 수 있지만 이것 역시 자연의 영역이 아닌 울타리를 드러내는 것이다. 사람들이 <정글>에 열광한 것은 문명의 이기가 리셋이 되고, 서울에서의 생활과 단절된 또 다른 공동체가 생존이란 단 하나의 목적으로 뭉쳐서 해쳐나가는 과정이 주는 여러 흥미다. 이는 오지에서의 맨몸 생존 기술인 부쉬크래프트(bushcraft)류의 아웃도어 정서에 가까운 것이다. 이미 촬영된 분량이라 운신의 폭이 좁았겠지만 제작진이 개입해서 설정하는 원시체험보다는 보다 자연스럽게 환경만 던져놓고 생존이란 미션을 더 살릴 수 있도록 보여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해명은 장외에서 끝내고, <정글>의 본질인 판타지는 울타리 내에서 구축했어야 했다. 강력한 판타지를 위해 리드미컬하고 숨 가쁜 호흡으로 시청자들을 몰고 갔어야 했다. 어차피 상처를 극복하는 방법은 그 본질을 더 매력적으로 내놓는 것 외에 왕도가 없다. 해명과 해설은 분명 필요한 절차이지만 <정글>의 시청자들을 불러 모으는 건 어찌되었던 <정글>만의 재미다. 핸들이 고장 난 8톤 트럭과 같고 인생은 언제나 삐딱선을 탄 사람들의 시선으로 보면 이번 논란이 없었다면 마오리족 체험 캠프 또한 어떻게 편집했을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제작진의 진정성을 계속 드러내는 것은 시청자들이 판타지를 꿈꾸는데 계속 난입하는 것이자 삐딱한 시선을 모두 해소할 수 없는 한정적 방법이다.

<정글>은 <무한도전>이나 <1박2일>과는 다르다. 카메라 안팎의 환경이 드러날수록 리얼리티를 얻는 방송과 철저히 감춰야 하는 방송이 있다면 <정글>은 후자에 가깝다. 제작진의 노고는 명절 특집 방송에서 <정글> 아류 캠프를 개최하는 것 대신 다큐멘터리로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고 이것이 <정글>의 시청자들이 더욱 안심하고 판타지를 품도록 하는 장치이자, 정서적으로도 결속하도록 해 더욱 더 큰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다. 해명의 시간은 이제 끝났다. <정법>은 자신들이 품은 힘에 조금 더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SBS]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