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빠 어디가>, 폭발적인 반응을 이어갈 방법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아빠 어디가>는 단거리 선수에서 장거리 선수로의 변화를 모색해야 할 시점에 왔다. <아빠 어디가>는 요즘의 경향인 편한 예능의 대표주자다. 편한 예능은 기본적으로 다큐형식을 빌려 쓰고 가학적인 재미나 즉각적인 웃음보다는 잔잔하거나 소소한 일상의 재발견을 통해 삶의 의미와 재미를 찾는다. 그래서, 기본 구조는 단출하기 그지없다. 아이들이 장 봐오면 밥 해먹고, 아빠와 아이들이 어디 둘러보고 오는 게 전부다. 그 흔한 게임도 없고, 딱히 경쟁이라 할 만한 것도 없다. 그 사이 그저 예전 유럽의 명감독들처럼 롱테이크로 보여주는 대화가 있을 뿐이다. 이런 까닭에 파일럿을 넘어 최소 6개월, 1년을 버텨야 하는 정규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겠냐는 의문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사실 2회 정도 방영했을 때, 반응은 폭발적이었지만 지속가능성 부분은 여전히 물음표였다. 1시간 10분가량을 끌고 갈, <1박2일>의 잠자리 복불복이나 <런닝맨>의 이름표 뜯기처럼 매우 간단한 수준의 기본 구조조차 전무했다. 버라이어티쇼에서 게임이란 경쟁과 갈등을 키우기 위한 장치인데 아이들을 이런 체계 속에 넣는 게 그리 간단해 보이지도, 어떤 타겟을 노리는지도 모호했다. 물론, 무언가 하려고 시도는 했다. 난데없이 광희가 게스트로 등장해 눈썰매를 타며 뭔가 하려고 했고, 여행지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집 고르기를 통해 복불복과 비슷한 나름의 갈등을 유발하려고 했다. 허나 민국이가 우는 걸 지아와 윤후가 달래주는 것 빼고는 볼거리 하나 남지 않은 싱거운 뽑기에 그치고 말았다.

아이들은 항상 귀엽지만 프로그램의 완성도를 봤을 때 처음 몇 회는 상황과 상황이 뚝뚝 떨어져 편집됐다. 그런데 그 초반의 삐걱임이 최적의 방식을 찾게 했다. 만약, 아이들이 마스게임하듯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거나 억지로 미션과 쇼에 참여하도록 했다면 지금의 인기를 누릴 수 없었을 것이다. 아이들은 지켜볼 때 가장 귀엽고 사랑스럽다. 거기다 <우리 결혼했어요>처럼 모두가 판타지임을 전제로 하고 보는 지켜보기가 아니라 실제의 관계망이 카메라 안으로 들어오니, 진정성은 물론 더욱 몰입해서 볼 마음을 열고 볼 여지가 더욱 컸다.

캐릭터가 자리를 잡아가는 것도 그렇다. 리얼 버라이어티는 본디 아이들의 또래 문화와 정서를 어른들이 재현해낸 것이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굳이 그런 장치와 연극이 필요 없는 애초에 ‘애’다. 기본적으로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는 순수함이 고스란히 그들을 따라다니는 카메라에 담기면서 그들의 성격이 예능에서 말하는 캐릭터로 그대로 옮겨졌다. 그리고 이는 여느 리얼 버라이어티가 그랬듯 ‘성장 코드’로 이어진다. 본디 아이들은 여백이고 커가는 존재다. 한 회 한 회가 쌓이면서 아이들도 아빠들도, 그리고 부자간의 관계도, 또 출연진 사이의 유대관계인 커뮤니티도 성장하고 있다.



공주처럼 아빠에게 의지했던 지아는 바쁜 아빠를 위해 홀로 옷 갈아입고 머리 빗고 핀까지 꽂고 단장한다. 여전히 아빠 이름을 ‘이조녘’이라고 알고 있지만 괴상한 국을 끓여 와도 맛있다고 엄지를 치켜드는 준수, 돌아가신 할아버지 이야기하는 아빠에게 창작 동화를 구연하면서 위로를 건네는 윤후도 그렇고 무엇보다 민국이는 더 이상 과도하게 떼를 쓰거나 울지 않는다.

아빠들도 성장하고 있다. 올레길 길을 잘못 들어 헤매고, 배 시간을 못 맞추고, 아이에게 지명 설명도 제대로 못하고, 여전히 도마 따위는 찾지 않으며, 쌈채소도 뜨거운 물에서 씻고, 횟감을 국거리로 전락시키는지만 밥 솜씨는 날이 갈수록 늘고, 아이들도 아빠가 차려주는 밥상 점점 더 익숙해지고 있다.

이제는 그 다음의 성장을 모색할 때가 됐다. 아빠와 아들의 관계를 보여주는 장면은 물론 <아빠 어디가>의 정수이다. 하지만 계속 이렇게 아빠와 아이 단 둘만의 관계만을 부각하는 것은 지금 아이들, 아빠들,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시청자들이 모두 성장하고 있는 가운데 홀로 정체 중인 것과 비슷하다. 이런 식의 진행이 앞으로도 계속된다면 안 그래도 호흡이 긴데 지루해질 수밖에 없다.



아침 밥상거리를 챙겨서 가져다주고, 성동일과 송종국이 반찬을 교환하며, 김성주가 배고픈 윤후를 위해 계란을 구워주는 것처럼, 서로서로를 챙겨주는 모습을 통해서 하나의 커뮤니티로 단단해지는 모습을 이제 더 키워가야 할 필요가 있다. 아이들이 성장하고 관계가 무르익음에 따라 마땅히 또 다른 차원의 성장을 보여줘야 한다. 다양한 형식과 관계가 발전해야 하는 것이다. 이제, 아빠와 아들 단둘이 부정을 나누는 것은 익숙한 장면이 되고 말았다. 지금처럼 대부분의 장면을 아이와 아빠로 고립시켜 놓으면 캐릭터 쇼의 필수인 성장을 방해할 뿐이다.

<아빠 어디가>는 미래의 부모들에게는 기대감을, 현직 아빠들에게는 동질감과 공감대를, 이미 아이를 어른으로 기른 아버지에게는 그리움과 추억을 준다. 정서적 접근은 모두 부자(모자) 관계지만 그것을 표현할 다양성은 그 둘만의 관계 밖에서도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애초에 아이들의 귀여움만으로 얼마나 가겠느냐는 회의론이 일부에 있었다. 그런데 의외로 아이들이 힘을 보여줬다. 이젠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잘 보여주도록 도울 차례가 됐다. 이는 아빠와의 관계를 품고 그 다음 단계의 세상으로 나아가야 할 때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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