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스>의 정체성을 책임지는 유세윤의 진가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어수선함과 산만함도 꿰어놓으면 웃음보따리다. 이번 주 <라스>는 김구라가 없이 어떻게 웃길 수 있는지 그 진가를 잘 드러낸 한 회였다. 김구라가 빠진 <라디오 스타>는 팀 던컨이 빠진 샌안토니오 스퍼스와 같다. 오로지 그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전술과 전략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었고, 이는 곧 <라스>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졌었다. 허나 명민한 제작진은 <라스>의 분위기와 정서를 그대로 이어가는 법을 알았다. 순하게 생긴 규현에게 김구라의 피규어를 안기며 독설의 이미지를 부여했고, 과감하고 대담한 질문과 마치 마누 지노빌리의 유로스탭을 보는 듯한 화제전환은 <라스> 대본의 중추였다. 그래서 알렉스에게 근황을 물어보듯 음주운전 사건을 물어보고, ‘알렉스류’의 남성을 불편해하는 대다수의 남성들을 위해 그의 매너에 외국물을 끼얹을 수 있었다.

이런 대본을 바탕으로 하니 방송은 오승환이 등판한 것처럼 돌직구가 연속으로 꽂혔다. 정인이 조정치에게 유세윤을 욕했던 에피소드에서는 개코원숭이 흉내 거부 논란을 희화화하고, 숨겨왔던 성 정체성을 깨닫는 남자들을 위한 테마송의 주인공인 알렉스의 감미로운 목소리를 배경 삼아 규현과 홍석천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낄낄거렸다. 그 속에 최강창민과 빅토리아의 숟가락 스캔들이 은주걱처럼 반짝였다. 이정이 박보영 소속사측으로부터 받은 컴플레인 에피소드에서는 그 회사 관계자 분들 만만치 않다며 <정글의 법칙> 논란에 대한 언급을, 호란의 영화 같은 프러포즈 스토리는 민망한 ‘혼전 여행’이라고 격하했다. A/S가 필요한 김국진의 평탄치 못했던 결혼사는 여전히 마르지 않는 웃음 포인트였다.

집요함 대신 산만함이었다. 웃음 빈도가 늘었다. 실제 김구라 시절의 <라스>는 뭔가 하나 잡으면 집요하게 몸 쪽 꽉 차게 파고드는 돌직구를 날려서 삼진을 잡았다면, 지금은 일단 맞춰 잡는 형국이다. 하나의 사안을 파고드는 것이 아니라 질문에 대답할 시간이 없을 정도로 시끌벅적하게 진행한다. 한 명이 웃음을 터트리면 최소 두세 명이 거기에 끼어들어서 주워 먹고, 뜯어 먹는다. 정인의 화장발 이야기가 나오자 메이크업 담당자를 화백에서 의사로 격상시키는 것이 그런 예다.



여전히 가식 따위는 없고, 물론 대접 또한 없다. 신곡을 발표한 가수들을 불러놓고 노래방 반주를 트는 것은 물론, 신입사원 회식에서나 할 법한 ‘돌아가면서 노래 한 곡씩’을 주문하고 또 넘어간다. <힐링캠프>라면 1주치 분량이 나올법한 이야기를 시켜놓고 중간에 이리저리 끼어들어 놓고는 정리조차 하지 않고 웃고 떠들며 지나가는 것이다. 심지어 알렉스에게 음주운전에 대한 반성과 사죄의 의미로 엉덩이로 젓가락 부러뜨리기 퍼포먼스를 부탁했다.

이런 산만함이 주조하는 웃음의 중심에는 유세윤이 있다. 그는 기존 <라스>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유형의 진행자다. 김국진처럼 맥락과 맥락 사이에 한마디 던지거나 윤종신처럼 토크를 주워 먹는 것이 아니라 예의 깐족거림을 바탕에 깔아두고 재연과 모창, 패러디를 통해 웃음의 격전지를 만들어낸다. 그곳으로 규현과 종신은 돌진하고, 김국진은 뒤에서 곡사포로 포격하는 식이다. 예를 들면 정인 특유의 표정을 과장한 모창을 하면서 말 할 때 정신없어지는 정인이 더욱 정신없게 만들고, 또 규현이 이정의 성대모사를 자연스럽게 하도록 돕는다. 남자들의 숨겨왔던 그런(?) 장면은 놓치지 않고 연출해서 내면의 홍석천을 호출한 명연기를 펼친 김국진이 스튜디오를 초토화할 수 있게 판을 만들어줬다.



규현이 외국물을 언급할 때처럼 때때로 차마 대본을 자기화 할 수 없을 정도로 저렴하고도 솔직한 대본은 <라스> 불변의 무기다. 남들이 피해가는 것을 웃음으로 포장도 하고, 비껴내기도 하는 것이 <라스>의 정서가 가진 매력이다. 이를 가장 잘 표현한 것이 김구라였고, 대체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다. 허나 묵직함은 떨어졌을지라도, 유세윤은 게스트들을 넘어가게 만드는 각종 애드립과 재연이라는 새로운 스타일의 무기로 <라스>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리듬을 끌어올린 것이다.

알렉스의 말대로 이제는 좀 피곤해진 단어가 된 힐링의 토크쇼는 범람하지만, 다양한 게스트를 섭외해 풍성한 이야기를 나누는 토크쇼는 여전히 <라스>외에 없다. 김구라가 떠난 빈자리가 여전히 쓸쓸하지만 호란, 알렉스, 정인, 이정을 게스트로 모셔서 방송을 하고, 또 이들을 통해 웃길 수 있는 프로그램도 여전히 <라스>가 유일하다. 이를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골수 <라스>팬들이 볼 때 가장 이질적으로 유세윤의 활약이다. 어차피 낄낄거리다가도 속 시원해지는 <라스>만의 웃음. 이 웃음으로 모든 것을 비껴낸다는 본질은 같다. 다만, 어수선하고 산만하며 정신없게 만드는 유세윤식 코미디를 통해 김구라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라스>의 또다른 웃음과 재미를 만들어내고 있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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