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싸이 ‘젠틀맨’, 한국이라 비난받는 세 가지
[엔터미디어=하재근의 이슈너머] 싸이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는 자기조롱이었다. 전혀 강남스럽지 않은 분위기를 가진 싸이가 잘 나가는 강남 오빠라며 잘난 척하는 ‘바보 같은’ 내용이었다. ‘젠틀맨’ 역시 자기조롱이다. 전혀 젠틀맨스럽지 않은 싸이가 젠틀맨이라고 우기는 내용이다. 자신을 우스꽝스럽게 희화화하며 망가진다는 점에서 ‘젠틀맨’은 ‘강남스타일’의 전략을 그대로 잇고 있다.
‘강남스타일’은 전혀 고급스럽거나 우아하지 않은 스타일이었다. 미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화장실 유머 코드와도 통했다. 그래서 ‘A급’이 아닌 ‘B급’이라고 했는데, ‘젠틀맨’도 그렇다. ‘젠틀맨’ 뮤직비디오는 저속한 스타일을 본격적으로 강화했다. 말하자면 더 천박한 B급인 셈이다.
이렇게 ‘강남스타일’의 코드가 그대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봤을 때, ‘젠틀맨’은 ‘강남스타일 시즌2’라고 할만하다. 그런데 ‘강남스타일’에 환호했던 사람들 중에 많은 이들이 ‘젠틀맨’은 불편해했다. 일단 ‘젠틀맨’ 노래가 처음 공개됐을 때 실망감을 표시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뮤직비디오가 공개된 후엔 비난성 댓글도 많아졌다. 한국망신이라는 소감들도 꽤 있었다. 그 세 가지 이유를 정리해보면 이렇다.
◆ ‘비삐삐삐삐, 많이 먹었다 아이가’
한국에선 최근에 버스커버스커가 주목 받았다. 아날로그 열풍도 불었다. 디지털 기계음에 사람들이 질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 얼마 전엔 <무한도전>에서 방배동 살쾡이 ‘옹’께서 ‘비삐삐삐삐’하는 디지털 기계음을 대방출했다. 이럴 때 싸이가 ‘비삐삐삐삐’하는 소리를 전면에 내세우자, ‘방배동 살쾡이한테 많이 먹었다 아이가’하는 반응이 나온 것이다.
‘젠틀맨’은 일렉트로닉 클럽댄스 음악이다. 그런데,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이라고 해서 모두 다 ‘젠틀맨’처럼 ‘비삐삐삐삐’하는 소리가 노골적으로 나진 않는다. 복잡하고 화려하고 세련된 댄스 음악도 많다. 반면에 싸이는 가장 1차원적인 기계음을 깔았다. 이것은 사람들에게 조악함을 느끼게 했다.

◆ 약자들을 괴롭힌다?
‘강남스타일’에서 싸이는 동네 바보형이었다. 아무도 해치지 않는, 그저 그 자신이 웃음거리가 되는 사람이었다. 동네 놀이터에서 꼬마를 옆에 세워놓고 한껏 거드름을 피우며 일광욕을 한다든지, 뒷골목에서 모델 워킹을 하다가 쓰레기를 뒤집어쓰는 모습이었다. 그가 하는 추잡한 행동이라곤 그저 에어로빅하는 여자 엉덩이를 입 벌리고 보는 정도였다.
반면에 ‘젠틀맨’에서 싸이는 ‘동네 나쁜형’이다. 단순히 여자를 쳐다보는 수준을 넘어서서 비키니 끈을 풀어버린다든가, 의지를 잡아 빼서 넘어지게 만드는 식이다. 악의 없는 바보 캐릭터는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지만, 물리적으로 해를 끼치는 대상은 불편함을 준다. ‘강남스타일’에서 싸이는 약자였지만, ‘젠틀맨’에선 약자인 여자와 아이들을 괴롭힌다는 점이 달랐다.
◆ 가족과 함께 보기엔 민망하다
한국은 어쨌든 아주 오랫동안 성리학을 거의 종교 수준으로 섬겼던 나라다. 그래서 문화적 표현에 있어서의 보수성, 도덕성이 대단히 강고하게 남아있다. 불과 30여 년 전까지 경찰이 길 가는 여자의 치마 길이를 쟀던 나라인 것이다. 그러므로 선정성은 한국에서 상당히 큰 문제가 된다.
‘강남스타일’도 여자 엉덩이를 노골적으로 쳐다본다든가, 뮤직비디오 중간에 미인과 엮인다는 설정이 있었지만 ‘젠틀맨’ 수준은 아니었다. ‘젠틀맨’ 뮤직비디오는 ‘강남스타일’보다 훨씬 노골적이어서 온 가족이 함께 보기엔 민망한 부분도 있다. 이래서 비난이 터져나온 것이다.

싸이라고 자신의 노래와 뮤직비디오가 한국에서 ‘강남스타일’보다 덜 대중적이라는 걸 몰랐을 리 없다. 노래 구성 자체가 일반적인 가요의 문법하고는 완전히 다르다. <강남스타일>엔 어느 정도 기승전결이 있고 클라이막스 부분에서 터지는 맛도 있는데, <젠틀맨>은 극히 단조로운 구성에 클라이막스의 폭발성이 아예 없다. 한국에서 이런 노래는 사랑받기 힘들다.
그래도 싸이가 이런 선택을 한 것은 미국시장을 겨냥한 승부수라고 보인다. 미국, 더 나아가 서양의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은 기승전결 멜로디 구성의 가요하고는 분위기가 다르다. 그런 미국 코드에 싸이의 싸이다움, 즉 ‘싼티’, ‘저질’을 노골적으로 강조한 결과 ‘젠틀맨’이 나오게 된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노래와 뮤직비디오 모든 면에서 ‘강남스타일’보다 ‘젠틀맨’에 더 끌린다. 클럽에서 ‘강남스타일’이 나올 땐 자리에 앉았었는데, ‘젠틀맨’이라면 일어날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건 전적으로 개인적인 취향이기 때문에 어느 걸 좋아하든, 혹은 싫어하든 각자의 마음이다. 다만 바라는 건, 미국 사람들이 ‘강남스타일’을 기적처럼 좋아했듯이 ‘젠틀맨’도 좋아하면 좋겠다. 그래서 이번엔 빌보드 넘버원까지 가길 바란다. 빌보드 순위산정에 인터넷이 많이 반영된다면 깜짝 1위도 꿈만은 아닐 것 같다.
칼럼리스트 하재근 akoako@entermedia.co.kr
[사진=YG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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