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짜 사나이> 돌풍, <푸른거탑>과 뭐가 다를까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일밤>의 ‘진짜 사나이’는 현존하는 예능 프로그램 중 가장 실험적인 프로그램이다. ‘연예인들이 군대에 입소한다.’ 이 한 가지 로그라인 이외는 아무런 구성이 없다. 장치가 없기로는 그 예전 아무것도 없이 가다가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고 없어진 ‘대망’과 유사하다. 실제로 김수로를 비롯한 여섯 연예인들이 군대에 입소해 일주일간 생활하다 나오는 것이 <진짜 사나이>의 전부이고, 이 프로그램은 이들의 입소가 절대로 카메라 앞에서만 보이는 설정이 아니라 실제 사병과 똑같이 생활하고 대우받는 것을 보여주는데 모든 역량을 쏟는다.

예능은 ‘재미’를 존재의 이유로 삼는다. 그런데 재미의 기준과 성격의 범위가 넓어졌다. 리얼 버라이어티가 전성기일 때만 해도 재미와 웃음이 등호를 이뤘지만, 서바이벌 쇼를 거쳐 SBS <정글의 법칙>과 KBS2 <인간의 조건>등의 최근 예능 프로그램들의 경향을 보면 중심을 잡아 주는 따뜻한 감성이 있고, 웃음은 윤활유처럼 쓰인다. <진짜 사나이>는 이런 경향의 극단에 놓인 프로그램이다. 미션도, 게임도, 웃기기 위한 그 어떤 포즈도, 진행자도 없다. 기획 자체가 마흔 언저리에 있는 연예인들이 다시 군 생활을 한다는 일종의 부조리극이지만 이는 빵빵 터지는 웃음을 노린 코미디가 아니라 <체험 삶의 현장>에 가깝다.

물론, 웃음도 있다. 주말 버라이어티 고정을 하기에 ‘급’이 다소 모자란 샘 해밍턴과 손진영을 투입하면서 오히려 빵빵 터지는 웃음을 만들어냈다. 사격장에서 10분간 휴식을 주자 먹을 거 없냐고, 후식 시간 아니냐고 묻는 외모에서부터 엉뚱함이 묻어나는 샘이나 김수로를 진심으로 열 받게 만드는 손진영의 얼빠진 행동들을 보면 군대와 관련된 아무런 경험이 없는 시청자가 봐도 누구나 웃을 수는 있다. 심지어 샘은 일상적이라고 하기 힘든 금속탐지기가 동원되는 탄피 분실까지 해주니 방송 분량을 제대로 확보해주는 역할도 한다.

허나 구멍이라 칭하는 샘과 손진영은 웃음만 주는 존재가 아니다. 미르에게서 군기가 잔뜩 들어간 신병의 긴장감이 느껴지듯 이들에게서는 이른바 ‘고문관’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진짜 사나이>의 핵심은 tvN <푸른거탑>과 마찬가지로 ‘추억’이다. 지난 2회 차 방송의 주인공은 멤버 그 누구도 아닌 애증의 군대리아였다. 햄버거에 잼을 발라 먹는 게 권장 레시피이고 우유와 스프를 이용해 각자의 취향대로 조합해 먹는 군대에서만 접할 수 있는 별식. 이 군대리아의 2013년 버전이 전파를 타니 그 반가움에 군필자들의 각종경험담과 무용담이 답지하며 일요일 밤 네티즌들의 이슈가 되었다. 참고로 샘이 3일 만에 숙변을 덜어낸 것과 군대리아의 상관관계를 지적하는 일종의 음모론에 한 표를 바친다.



이처럼 비록 군모와 군복이 베레모와 디지털 군복으로 바뀌었지만 군대를 경험한 시청자들은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끊임없이 기억을 소환하고 자기를 대입해본다. 아침 연병장의 찬 공기, 아침 구보와 점호, 밥 먹으러 갈 때도 줄을 맞춰가던 잊고 살았던 제식의 기본 동작들이 머릿속 저편의 기억을 불러오는 것이다. 방송에 나오는 내용을 그저 흥미롭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대배치 첫날의 기억, 첫 사격 훈련을 했던 기억, 탄착군이 형성된 표적지 등을 떠오르면서 나름의 추억을 회상해보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또한 기상 후 막내들이 번개 같은 속도로 모포를 정리하는 게 아니라 스트레칭을 하는 낯선 풍경이나 개인 젓가락, 일회용 도루코에서 삼중날로 바뀐 면도기 등, 군번에 따라 자신의 군 생활과 <진짜 사나이> 속 병영의 모습을 비교해보는 재미도 있다. 덕분에 서먹했던 부자지간에 이야기할 거리도 만들어준다.

<진짜 사나이>의 또 하나의 미덕은 군대를 직접 경험하지 못한 시청자들에게는 간접 체험의 엿보기를 선사한다는 점이다. 내레이션을 유명 걸그룹 멤버들이 맡는 것은 그녀들의 목소리가 아름다워서만이 아니다. 간접적으로 군대를 접한 사람들에게 실제 군대의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기회를 줌으로써 호기심을 자극한다. 군대를 경험한 이들에게 추억을, 군대를 경험하지 못한 이들에게는 마치 <다큐 3일>을 보는 듯한 흥미로운 다큐멘터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군대를 소재로 위무도 당당하게 진군 중인 <푸른거탑>이 극화된 캐릭터와 각종 대중문화를 패러디한 잘 짜여진 시트콤으로 성공했다면 <진짜 사나이>는 주말 예능 프라임타임에 병영 코미디가 아닌 병영 다큐를 택했다. 사실 군대의 일상이란 지겨우리만큼 특별하지 않다. ‘삽질한다’라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이미 <진짜 사나이>는 각 잡고 앉아 있는 모습에서 사격훈련과 세면실까지 적나라한 군대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시청자들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앞으로 얼마나 다채로운 군대의 모습을 어느 선까지 보여줄 것인지가 <진짜 사나이>의 진짜 인기를 가늠할 포인트가 될 것이다. 이제 예능은 캐릭터를 잡고 웃기는 장치를 잘 고안하는 것만큼, 일상을 매번 새롭고 의미 있게 보여줄 수 있는 감각과 감수성도 중요해졌다. 이제 향수를 자극하는 풍경을 넘어서서, 병영의 일상을 얼마나 흥미롭게 보여줄지 앞으로 펼쳐질 <진짜 사나이>의 진짜 승부를 기대해본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