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라이어티쇼의 완승, 연성화의 슬픈 현실

[엔터미디어=우석훈의 대중문화 파토스] 정권이 바뀌고 나서 많은 사람들이 이제 곧 TV가 막히고, 라디오도 막힐 것이라고 했다, 지난 3년을 돌아보면, 대부분의 말은 사실이 되었다. 교양방송 중에서는 가장 인기 있던 손석희 교수가 <100분 토론>에서 하차하게 되었고, 많은 방송들의 진행자들이 자리를 떠나게 되었다. 물론 10년만에 정권이 바뀌니 당연한 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진행자 교체 자체가 아니라 바로 방송의 ‘연성화;라고 할 수 있다. 예능의 비중이 늘어난 것만이 아니라, 교양 방송과 보도 방송도 연성화가 진행되면서, 이제 진짜 뉴스와 탐사 보도를 TV애서 보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쉽게 정리하면, 인기 프로는 점점 인기 없게, 그리고 그렇게 인기가 떨어진 방송은 시청률을 이유로 하차 및 폐지, 그렇게 정권이 아주 열심히 3년 동안 TV와 라디오를 막았다. 이제 거의 마지막 남은 공영방송의 진행자인 손석희와 김미화 정도가 남았지만, 이번 방송 개편에서 그들이 잔류하게 될지, 아니면 정권의 의도대로 하차하게 될지, 그 정도가 관심사일 뿐이다.

그렇다면 TV만이 막혔는가? 출구가 막힌 것은 영화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영화에 필요한 제작비의 주요 출처가 대기업들로 전환되면서, 예를 들면 대기업 내부에서 생긴 비리와 같은 소제는 아예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포기하게 된다. 노골적으로 대기업을 비판하는 영화는, 만들 수도 없고 극장에 걸을 수도 없다. 그렇다면 검찰이 아예 대놓고 수사를 포기한 도곡동 땅 사건을, 누군가가 영화적 해석으로 영화화한다면? 민감한 소재이기는 하지만, 광범위하게 반MB 정서가 퍼져있기 때문에 상업적으로는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런 것도 만들 수가 없다. 괜히 겁 없이 ‘살아있는 권력’의 민감한 얘기를 꺼냈다가는 제작사, 펀드, 극장, 모두 세무조사 받거나 감옥 갈 각오해야 한다. 촛불집회 때 스피커와 앰프를 빌려준 회사가 어떻게 고통받았는지, 우리 모두 똑똑히 본 적이 있지 않은가?

지난 3년 동안, 방송이든 영화든, 제대로 건들기 힘든 세 가지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소재가 있다. 청와대, 대기업 그리고 교회… 이걸 손 대려면 정말 현 정권에서는 목 걸고 해야 한다.

‘밥 그릇 차 버리기’, 이게 청와대가 방송에 임하는 자세가 아닌가?

방송인에게는 TV 출연금지는 치명적이다. 배우든 PD든, 여차직하면 밥줄을 끊어버리겠다고 덤비는 데야, 현장에서 아무리 더 많은 얘기를 하고 싶어도 어쩔 도리가 없다.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것은, 시청자들이나 관객들이 사회적 지지와 사회적 발언의 형태로 더 목소리를 높이는 수밖에 없지만, 현재까지의 상황으로는 예능이라고 불리는 버라이어티쇼의 완승이다. 물론 버라이어티쇼에서도 아무런 메시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국민의 힘으로 교양방송을 지키지도 못했고, 연출자들을 지켜주지도 못했다. 방송 중에 한직으로 쫓겨나는 것은 물론이고, 사회 현안과 관련된 방송을 만들던 제작진들이 제작 중에 교체되는 일도 벌어졌다. 제작과 경영의 분리라는, 언론과 방송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기준과 상식도 지난 3년간 한국에서 통하지를 않았다.

상명하달, 이것이 유인촌, 최시중과 같은 최고권력자의 부하들이 한 때 르네상스로 향해가던 한국의 방송과 문화를 바꾸어놓은 모습이다. 우리 사회는 더 이상 군대처럼 돌아가지는 않지만, 우리의 공영방송과 영화계는 지금 군대처럼 변하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서로가 서로를 밀고하여, 검열장치를 피해나간 연출자와 진행자는 해고하거나 좌천시키고, 밀고자가 대신 승진해서 차장도 되고 부장도 되는, 내부 고발과 배신의 시대, 그 시대를 살고 있다.

이것을 부드럽게 말해서, 방송의 연성화, 문화의 연성화라고 부른다. 촛불시민 용어로 한다면 “TV가 막혔다”, 그렇게 표현할 수도 있다.

이러다가는 집단적으로 특정 예능방송을 보지 않아서 본방 시청률을 떨어뜨려주는 것이 시청 앞에서 촛불 드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시위의 방법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승자독식을 지나치게 예찬하는, 그리하여 대학생들의 취업용 스펙 쌓기를 강요하는, 지독할 정도로 신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를 찬양하고 취업자를 업수이 여기는 방송의 본방 거부운동, 그게 등록금 집회보다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끔 해본다.


칼럼니스트 우석훈 < 2.1연구소 소장 > honortomeadows@entermedia.co.kr


[사진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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