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도>,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실험정신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유재석이 결단을 내렸다. 물론 ‘무한상사’ 내의 유 부장 이야기다. 결국은 이제나 저제나 어떤 식으로든 해피엔딩이 오리라고 기대했던 시청자들은 당혹했다. 아내에게 살아남았다고 안도의 한숨을 쉬며 할부 결재하라고 전화하는 박명수에서 한 번, 마지막 떠나는 자리를 지켜주려는 듯 뛰쳐나간 길 사원이 출입증을 회수하고 돌아설 때 또 한 번, 반전에 대한 기대는 와르르 무너졌다. ‘서른 즈음에’가 흐르면서 엔딩 크레딧으로 이어지자 어안이 벙벙해져 좀처럼 리모콘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설상가상, 뒤이어 나온 콜라 광고 속에도 정 과장(정준하)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더욱 심란해졌다.

설마설마 했지만 예능에서 정리해고로 끝을 내다니. 다 같이 책상 위에 올라가 ‘캡틴 오 마이 캡틴’을 외치거나 붉은 깃발 아래 바리게이트를 치지도 않았다. 그래봐야 달라질 것은 없는 눈물의 송별회도 없었다. 남은 자들은 그 불행이 빗겨나간 것에 감사하면서 모른 체했다. 입 다물고 안도하는 모습, 행여나 불행의 불씨가 튈까 몸 사리는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매우 불편한 감정으로 다가왔다. 현실의 무게를 너무 극적으로 묘사했기 때문이다. <무한도전> 8주년 기념특집 ‘무한상사’는 이렇게 시청자들의 마음을 ‘색다르게’ 열어놓았다.

바른 생활 사나이 유재석이 잔소리 캐릭터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처럼 ‘무한상사’는 <무한도전>이 걸어왔던 역사와 개척한 캐릭터를 정기적으로 버전업하는 패치 같다. 시작은 두서와 맥락 따위는 없는 전개와 ‘드립’으로 이어졌다. 걸스데이와의 프리허그 때문에 지각했다거나, 걸스데이 민아 이야기가 나오자 연식 있는 박 차장(박명수)이 기억 속 저편에서 월드컵 가수 미나의 노래를 소환하는 식이었다. 순발력을 요하는 이름 짓기와 이행시 대결, 중국집에서 벌어진 ‘진격의 준하’ 꽁트, <아이언 맨>에서 빌려온 파워슈트를 만드는 설정과 ‘아연맨’의 등장,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의 설정과 음악을 슬쩍 집어넣는 패러디까지 애드립과 캐릭터 연기와 똘끼 충만한 기획이 결부된 <무한도전> 특유의 웃음이 터졌다.

회사에 위기가 찾아오고, 부서의 존폐가 걸린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배구 선수로 위장한 박사들이 등장하는 등, 개연성 제로의 스피디함으로 밑도 끝도 없이 전개되는 와중에 8년이란 시간동안 다져진 멤버들의 내공은 빛을 발했다. 정형돈이 젖지 않는 박스로 만들었다고 주장한 파피루스맨이 한 방에 발가벗겨진 장면은 이 날의 하이라이트였다.



이렇게 실컷 웃기다가 급브레이크를 밟는다. 마치 주성치의 명작 <서유쌍기>를 보듯 포복절도의 웃음 뒤에 정 과장의 정리해고 스토리를 정색하고 배치해 웃음과 눈물의 코 범벅을 만들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정리해고라는 사회적 이슈가 아니라 이런 무거운 이슈를 풀어내는 드라마의 존재다. <레미제라블>의 ‘내일로’ 퍼포먼스로 대표되는 후반부는 <무도>가 애드립 위주의 콩트에서 드라마가 가미된 예능으로도 재미를 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특히 콘셉트이기도 했던 미드 <글리>나 영화 <레미제라블> 등의 뮤지컬 퍼포먼스를 코믹하게 노래방 방식으로 풀어내면서 웰메이드 퍼포먼스와 코미디 사이에서 줄타기를 했다. 정리해고라는 무거운 이슈에서, 뮤지컬이란 장르적 소재까지 예능이란 틀에서 할 수 있는 새로운 시도를 계속 이어간 것이다.

<무도>는 위기이든 아니든 언제나 항상 다른 예능 프로그램보다 한 발을 먼저 내딛어왔다. 8년간 최정상의 자리에 있으면서 성공한 공식에 안주하지 않았다. ‘재미’라는 기준과 <무도>만의 존재의 가치 사이에서 논란이 벌어지는 것도 <무도>가 자신의 존재 이유인 도전을 멈추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부산물이다.



이처럼 <무한도전>이 그 어떤 쇼보다 특별한 이유는 누구나 편하게 보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유일하게 ‘의미부여’의 여지를 열어놓기 때문이다. 이것이 무조건적인 옹호나 신격화로 넘어가면 곤란하지만 예능에서 다룰 수 있는 장르 형식과 소재와 정서의 영토를 넓힌 도전을 행하면서 얻어낸 <무도>라는 브랜드의 핵심이다. <무도>는 그간 두서와 맥락 없는 애드립의 향연에서 성장코드와 감동을 넘어 이제 사회적 이슈를 정면으로 끌어안는 데 까지 나아갔다. TV매체로 국한시킨다고 해도 드라마에서나 느낄법한 감정과 시사다큐 프로그램에서 다룰 법한 소재를 예능 속에 가져온 것이다.

<무한도전>의 이번 특집이 대단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예능에서 정리해고를 다루는 것처럼 용감하게 사회참여의 목소리를 내고, 정치적 올바름을 고민했다고 치켜세우는 건 이견의 여지가 있을 수 있는 판단이지만,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은 기존 예능의 범위를 넘어서는 장르적, 정서적 실험과 성취를 8년간 최정상의 자리에서 계속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처절한 예능 편성표내에서 그 긴 시간동안 <무도>의 왕좌의 게임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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