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선구자 자리 내준 <라스>, 독특함을 되찾아야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라디오스타>가 예전 같지 않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시청률도 그렇고, <라스>만의 장점이었던 섭외에서부터 예전 같지 않음이 나타난다. 말도 안 될 것 같은 기상천외한 조합이 만드는 시너지, 네임벨류가 낮은 게스트를 맛있게 요리해 뽑아내는 에너지와 의외성이 <라디오스타>의 특기였다. 하지만 요즘, 여타 토크쇼와 차별성은 다소 흐려져 홍보성 출연 또한 심심찮게 늘어나고 있다.
또한 <라스> 고유의 정체성이자 여러 의미를 내포한 ‘독함’의 상징, 김구라가 바로 옆 채널에서 나오는 이 기이한 현실은 표면적이며 결과론적인, 우연에 의존한 인과론이긴 하지만 김구라의 이탈 이후 태도와 취향이 약화된 <라스>의 현재를 반추해보는 유리구슬을 같기도 하다. 김구라는 정통 토크쇼에 가까운 <두드림>에서 베어링과 윤활유 역할을 맡아 연착륙을 시도한다면 <라스>는 완만한 언덕을 천천히 내려오고 있는 것 같다.
예전 같지 않다고 했지만 <라스>는 여전히 재밌다. 공중파 토크쇼 중 힐링을 내세운 토크쇼들을 제외하고 오로지 ‘웃음’에 포커스를 맞춘다면 여전히 <라스>가 가장 큰 웃음을 주고 있다고 단언한다. <라스>가 뜰 수 있었고, 또 지금도 가장 재밌는 토크쇼라고 말하는 이유는 <라스>의 출연진과 제작진이 갖고 있는 태도 때문이다. <라스>의 장점은 독함이 아니라 편안함이다. <화신> 등의 여타 토크쇼와 비교했을 때, 시청자들 입장에서 거북함이 들지 않는다.
무슨 비밀 클럽에 가입한 것처럼 <라스>만의 무엇이라는 명문화되지 않은 진짜라는 분위기도 있다. 이는 기존 토크쇼의 과장된 리액션과 띄워주기를 버리면서 얻은 것이다. 조금 산만하고 정신없지만 웃음에서 눈물에 이르는 연극 같은 토크쇼, 에피소드만 늘어놓는 토크쇼를 보다 연예인, 스타의 틀을 무장해제하고 시청자들이 궁금했던 것들, 민감한 것들을 쿨하게 묻는다. 미간에 힘을 주고 고개를 끄덕이며 해명을 듣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가벼움과 유쾌함을 어떤 상황에서도 꾸준히 유지하는 감정 과잉이 없는 초유의 세련된 토크쇼였다.

지금도 여전하다. 이홍기에게 끊임없이 묘한 라이벌 관계에 놓인 씨앤블루 이야기를 꺼냈고, 이홍기는 관련된 해명과 심정을 솔직하게 말하는 데다 용준형과 모텔에 함께 있었던 얘기까지 얹었다. 오랜만에 보니 정말 예쁜 백진희에게는 <하이킥3> 내에서의 비중 축소, 그리고 방송 후 생각보다 빛을 보지 못한 그녀의 위치부터 다른 <하이킥>시리즈에 비해 시청률이 낮은 이유에 대해서까지 각종 민감한 문제들을 직설적으로 물어본다. 이적을 저 멀리로 보내고, 방송용 밑에 있는 윤종신의 성격을 페퍼민트 차에 빗대어 표현하는 진정한 솔직함, 순수함을 내보였다. 이런 건 <라스>에서나 가능한 일들이다.
무엇이 달라졌나? 그런 건 없다. 여전히 따발총 같고, 게스트들은 먹잇감이 되지 않으려면 조심해야 한다. 재미가 없는 건 아니지만 예전 같지 않게 느껴지는 건, <라스>의 독함과 직설의 태도가 이제 예전만큼 센세이셜 하거나 특이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김구라가 복귀 이후 진행하는 <썰전>같은 경우, <라스>의 태도를 보다 더 각을 세워 잡고, 다루는 주제에서 거론되는 내용까지 <라스>보다 정치, 프로그램 비평 등으로 외연이 넓어졌고, 그 넓어진 외연은 시청자들의 일상과 맞닿아 있다. <라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훨씬 독해진 셈이다.

기존 방송에서 못할 것들을 해서 성공한 토크쇼가 <라스>인데 이제 그것보다 훨씬 더 독한 콘텐츠가 통하는 시대가 됐다. 금기의 영토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또한 연예인의 틀이 아닌 자연인의 틀로 게스트를 다뤄서 만든 태도는 <힐링캠프> 등의 힐링 토크쇼에서 콘셉트로 내세우고 있다.
<라스>를 비롯한 토크쇼들이 침체를 겪고 있는 와중에 구원투수로 나선 이는 공교롭게도 김구라다. 지금 이 시점에서 김구라가 각광을 받는 건 그의 콘텐츠가 아니라 에너지와 태도 때문이다. 이 태도는 다큐형 예능, 관찰형 예능, 일상이 각광받는 흐름과도 부합한다. 케이블부터 차근차근 활동해 공중파로 재입성한 김구라는 보다 현실과 일상과 가까워지고 소재는 물론 태도로써 중요해진 예능 환경에 가장 최적화된 MC인 것이다. 그리고 선구자의 위치에서 김구라와 동반성장을 이룩했던 <라스>는 같은 이유로 그들만의 특성과 지위를 조금씩 내려놓고 있다. <라스>가 다시 유니크해지기 위해선 보다 낯선 무엇이 필요해 보인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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