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간>, 폭발적인 관심을 되찾기 위한 방법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인간의 조건>은 우리에게 작지만 소소한 일상의 재발견과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통해 새로운 재미를 가져다줬다. 이 프로그램은 우리가 너무 당연시해서 놓쳤던 것, 공기 중의 산소와 같이 너무나 소중하지만 늘 곁에 있어서 그 소중함을 몰랐던 것들을 예능의 틀 안에서 일깨워주면서 큰 관심을 받았다. 최근 관찰과 다큐형 예능이 발전할 수 있는데 방법론적으로 큰 영향을 끼친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핸드폰, 텔레비전, 컴퓨터 없이 살기’ ‘쓰레기 없이 살기’ ‘자동차 없이 살기’ ‘돈 없이 살기’ ‘산지 음식만 먹고 살기’를 거쳐 이번 주는 바쁜 일상 속에서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며 많은 사람과 함께 있지만 정작 갈수록 더 외롭다는 문제인식 하에 진짜 친구 찾기까지 미션이 주어졌다.
<인간의 조건>이 내세우는 주제의식과 아날로그적 태도는 여전히 좋다. 진짜 친한 친구에 대한 정의와 기준을 고민하면서 시청자들도 자신의 주변을 돌아보게 한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조건>이 파일럿을 넘어 예능의 트렌드를 형성할 수 있었던 인기 요소였다. 그러나 가면 갈수록 힘이 부치는 모습이 역력하게 나타난다. 최초 미션이었던 ‘휴대폰 없이 살기’나 ‘쓰레기 없이 살기’ 때는 메시지가 그들을 관찰하는 재미 위에서 형성됐었다. 울림의 진폭은 재미 위에서 커졌다. 하지만 새로운 미션이 진행될수록 메시지는 뚜렷한데 그것을 뒤받치는 재미 요소가 힘을 잃어가고 있다.
<인간의 조건>에 문제제기를 하기란, 너무나 성실하고 착한데 성적이 안 나오는 학생을 다그쳐야 하는 선생의 입장과도 같다. 하지만 멤버들이 함께 고민하고 대체할 수 있는 미션보다 각자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미션이 늘어나고 ‘돈 없이 살기처럼’ 대체 불가능한 미션이 진행되면서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불편을 해소하기 위한 그들의 몸부림이 사라지거나 다소 억지스러워졌다. 문명의 이기나 우리 주변의 소중한 것들에 대해 시청자들이 생각해보는 공감 지향형 프로그램에서 공감할 수 있는 고리, 그 고리에 맺혀 있는 재미가 옅어지면서 그저 지켜보는 프로그램에 가까워진 것이다.
이번 주 시작된 ‘진짜 친구 찾기 미션’도 친구라는 존재를 고민하고, 내 주변을 돌아보게 하는 아날로그적 감수성에 젖게 하는 주제였다. 여전히 관심이 가는 주제지만 정작 방송에서는 옆 건물 유스호스텔 비슷한 곳에 묵는 외국인들을 초대해 언어의 장벽을 넘는 새로운 친구 맺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막상 친한 친구를 찾아간 장면의 그림들이 반복되었다. 그 결과 멤버들이 전하는 공감멘트는 흡입력이 떨어졌다.

더 멀리, 더 긴 호흡으로 볼 때 흡입력을 저해하는 더욱 큰 문제는 멤버들 간의 시너지에 있다. 이 프로그램은 공감대가 가장 중요한 포인트인데 시청자와 프로그램 사이의 공감대를 잇게 해줄 허브이자 관찰의 재미를 담보하는 멤버들 간의 유기적인 관계가 처음 시작했을 때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감수성의 양상국, 공감 멘트의 정태호, 인간성의 김준현 등 각자 캐릭터는 잡혔지만 이들이 함께하면서 만들어내는 웃음이나 그들의 합숙을 지켜보면서 느슨한 형태의 연대, 새로운 형식의 가족의 탄생에 걸었던 기대는 점점 약해지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조건>의 또 다른 무기는 직장생활을 함께하고 있는 <개그콘서트> 멤버들이 예능 프로그램 속에 그들의 서열과 관계를 그대로 들고 들어왔다는 점이다. 늘 예능 선수들에게 치여 마이너 취급을 받았던 이들이 자기들만의 영토를 확장해 예능에 깃발을 꽂은 첫 사례였다. 하지만 겨울이 오고 있는 어느 미드의 한 가문처럼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의 왕국을 지키는 데 힘이 부치는 모습이다.
이는 새로움을 위해 매회 숙소를 바꿨지만 한편으로는 일상을 들춰보는 재미, 익숙한 그 집 앞을 다시 찾아간다는 정서가 약해진 것과도 궤를 같이 한다. 미션이 진행될수록, 여섯 남자가 모여 있기는 하지만 관계는 그다지 발전해가지 않고 비슷한 모습이 반복되면서 여섯 식구가 함께 사는 집을 챙겨서 보고픈 마음도 줄어드는 것이다.

<인간의 조건>은 KBS에서 조사한 좋은 품질 방송 순위에서 <무한도전>과 함께 1위에 뽑혔다. 예능의 재미, 예능의 가치가 가진 외연을 확장한 점에서 충분히 수긍이 가는 결과다. 하지만, 예능은 마치 자본주의가 모든 가치평가를 우선해 돈을 벌어야 하는 것처럼 어떤 종류로든 재미가 출중해야 한다. 특히 함께 1위에 뽑힌 <무도> 멤버간의 유기적 관계는 참고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탕이 되어야 다음 이야기가 가능하다. 숨고르기라고 하기엔 아직 더 달려야 할 시기고, 한계를 마주했다고 보기엔 아직 기회를 충분히 마주하지 못했다. 그러니 <인간의 조건>이 첫 미션에서 폭발적 관심을 받았던 영광을 재현하려면 여섯 남자의 관계가 빚어내는 재미가 더욱 흥미로워져야 할 것이다. 결국 미션이 어떠하든 이 여섯 남자의 생활을 보고 싶어야 공감 또한 가능한 것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KBS,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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