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디오 스타’ 김구라의 복귀가 남긴 숙제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역사는 스토리를 만든다. 이번 주 <라디오 스타>는 유유히 흐르는 장대한 대하드라마 속에 유속이 빨라지고 굽이치는 변화의 에피소드였다. 바로 그들의 정신, <라스>가 탄생하고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 김구라가 돌아온 것이다. 그에 맞춰 또 다른 이별을 그들답게 쿨하게 했다. 김구라는 현재 예능판에서 활동하는 사람 중 그 존재로 판도를 흔들면서, 트렌드와 화제를 몰고 다니는 유일한 인물이다. <라스>를 떠난 후 오히려 성장한 그가 다시 복귀한다니 TV 좀 본다는 사람들은, 힐링과 따스한 예능에 지친 심신이 지친 사람들이 그토록 고대하던 순간이었다.
김구라의 말대로 인트로에서 시청률이 올랐을 것이다. 자숙의 기간을 갖고 몇 번의 복귀가 무산되는 과정 속에서 사람은 때라는 것이 있고, 상처가 아물기 위해선 물리적 시간이 필요한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물론, 역시나 그답게 김재철 전 사장의 실명을 언급하면서 개인에 대한 섭섭함을 토로했다. 이런 게 바로 <썰전>이 흥할 수 있는 이유고 시청자들이 김구라에게 바라는 바다. 허나 그의 첫 복귀 무대는 숙제를 남겼다. 인트로에서 시청률이 오른 것은 김구라의 <라스>에 대한 기대심리 때문이었겠지만 그는 부싯깃에 지나지 않았다. 시청률을 붙잡고 실시간 검색어를 점령하며 <라스>의 불을 프로판 가스를 댄 것처럼 활활 지핀 건 홍진영이었다.
역시나 김구라의 말대로 홍진영은 새롭고 세고 엉뚱한 캐릭터가 아노미를 이루는 상황에 등장한 또 한명의 중고 4차원 스타다. 유구한 역사를 써내려가는 <라스>는 최근 샘 해밍턴 이후 또 한 번 번뜩이는 순간을 잡아냈다. 축구로 치면 레알마드리드의 호날두, 농구로 치면 마이애미의 르브론처럼 그는 프리롤이었다. 복귀한 김구라든 그 누구든 자신의 페이스에서 토크를 이끌었고, 애교의 영역에 있는 반말투와 손동작은 김구라를 당황시켰다.
홍진영은 몰랐던 매력이 있었다. 그녀는 남자들은 너무나 좋아하고 여자들은 그런 남자들을 손가락질하면서 곁눈질로 흘겨볼 스타일의 여자다. 트로트를 하는 젊은 여가수라는 포지셔닝, 진한 화장과 얼굴 빼고는 성형한 곳이 없다는 소개에서 보듯 외모와 느낌만 보면 전형적인 털털하면서 섹시한 약간 B급의 미가 있다.

그런데 반전이 있다. 거침없는 감정 및 의사표현을 반말투의 짧은 말과 끊임없는 윙크로 얹어서 한다. 김구라의 찌푸린 얼굴에다가도 말을 끊고 ‘싫다’고 소리치는 멘탈도 가졌다. 게다가 무역학 박사라니 자세를 고쳐 잡게 된다. 무엇보다 아무튼 예쁘다. 센 외모에서 귀여움이 뿜어져 나오니 그녀의 짧은 말 뒤를 길게 이어붙여주고 싶게 만든다. 그녀는 그렇게, 함께 출연한 박완규와 신지는 다큐 나레이터로 만들고 김신영은 ‘연가시 언니’로 웃기는 정도로 롤을 축소시키면서 무대를 장악했다. 다시 한 번 김구라의 말을 빌리자면 너 정말 최강이었다.
그런데 홍진영 덕분에 혹은 때문에 기대했던 김구라에 대한 평가는 미뤄지게 됐다. 홍진영이 치고 나온 것도 있지만 김구라의 태도가 소극적이었다. 간만에 손발을 맞추다보니 생기는 불협화음이라기보다 <라스>에 다시 돌아와서 취할 스탠스를 정하지 못한 듯하다. 한창 때 필드에서 내려와 멀찍이 떨어져 있으면서 가진 생각. 케이블, 종편은 물론 타 공중파 방송사의 굵직한 토크쇼들을 모두 경험하면서 그는 토크로 일가를 이루는 데 있어 이전의 독설 이미지를 벗어난 변화를 원하는 것 같다. 더 큰 차원의 ‘MC롤’에 대한 고민이 엿보인다.

이런 부분에서 윤종신 등과 티격태격하다가 <화신>에서 색깔을 달리가라고 주문했다고 말했다. 물론 이게 정언명령 같이 엄청난 지침은 아니다. 허나 그의 변화에 대한 고민이 훨씬 더 여실히 드러나는 지점은 진정성 있는 이야기를 해도 웃음으로 승화하는 건 3~4년 지난 방식이라는 대목이다. 요즘 트렌드는 감정선을 유지하고 진정성을 가져가야 한다고 했다. 허나 김구라와 <라스>에 기대하는 건 슬레이어의 레이닝 블러드(Raining Blood)를 들으며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듯한 여백 없는 웃음과 그 어떤 맥락에서 깔깔거리는 웃음과 실소를 삐져나올 수 있게 만드는 위트다.
그는 날품팔이처럼 살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예전보다 무게 있고 장난보단 보다 토크에 집중하고 물어뜯기보단 판세를 진단하는 MC스타일에 대한 지향이 엿보인다. 그것이 급작스런 변화를 맞은 <라스>에서 원하는 역할, 골수팬들의 기대와 매끄럽게 모이지 못했다. 물론 첫 회에 모든 게 완벽할 순 없는 법이다. 이런 식의 기대를 품을 수 있는 유일한 예능MC 김구라이기에 기대치가 높았던 것이다. 그의 복귀가 다시 <라스>의 중흥을 이끌 것이라는 전망에는 여전히 수정사항이 없다.
다만 후배들이라도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는 문화가 좋다고 했으니 주변과의 조율이 필요해 보인다. 참고할 것은 스포트라이트를 가져간 홍진영의 깜짝 흥행이다. 이토록 개성이 강한 홍진영은 <안나의 실수>이외에서는 별 존재감을 발산하지 못했다. 그런 그녀가 다시 주목받을 수 있는 건 그 무대가 <라스>라는 토크쇼였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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