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벤져스 다 뭉쳐도 해밍턴 하나를 못 당하네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런닝맨>이 간만에 스토리가 강화된 특집을 준비했다. 지난 9일 처음으로 MBC <진짜 사나이>에게 시청률 선두자리를 내준 시점에서 준비한 블록버스터급 특집은 남달라 보였다. 스파이더맨이 가세한 어벤져스 멤버(스파이더맨의 어벤져스 합류는 할리우드 영화사들도 해결 못하고 있는 문제다)들과 운동 마니아인 2PM의 찬성과 택연, 종합격투가 김동현과 추성훈, 관록의 무술 감독 정두홍이 함께한 물량공세부터 대단했다. 게다가 다음 주에는 예능 버라이어티에 거의 모습을 내비친 적 없는 정우성이 슈퍼 히어로들과 함께 한판을 벌인다고 한다.
어벤져스 특집은 <런닝맨>이 여름을 맞이해 준비한 대형 프로젝트이자 정체된 분위기를 반등하기 위한 카드다. 매주 새로운 게스트와 색다른 게임으로 변주를 이어가고 있지만 이름표를 떼는 게임의 틀이 워낙에 확고한 데다, 캐릭터들이 모두 안정화 추세이다 보니 배신과 반전 등등의 에너지가 한창 때보다 많이 떨어졌다. 이광수가 예능의 신의 도움을 받고 있지만 예능의 신마저도 최근에는 동시간대의 윤후나 샘 해밍턴에게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듯하다.
<런닝맨>의 제작진은 이런 시기에 영화로 더 유명해진 마블 코믹스의 슈퍼 히어로들을 빌려와 인위적으로라도 새 캐릭터를 부여하고, 협업과 배신의 관계망에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을 수 있는 카드를 꺼내든 것으로 보인다. 제작진은 이미 2011년 만화적 요소를 가미한 ‘초능력자’ 특집을 통해 게임과 스토리 사이의 유연성을 확보하고 정체된 캐릭터를 확장시켰던 경험이 있다. 그때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이름표를 떼는 ‘런닝맨 놀이’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들에게 <런닝맨>은 예능인 동시에 <파워레인저> 같은 열혈물의 세계관을 가진 드라마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물론, <런닝맨>이 초등학생용 프로그램은 아니다. 오랜 시간 정을 쌓으며 일상의 영역으로 자리 잡은 몇 안 되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일반인들과 호흡을 맞추는 특집 같은 경우는 <무한도전>도 부럽지 않은 수준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이 페인트볼 서바이벌게임을 할 때, 같은 시간 옆 방송에서는 유격훈련장에서 실제 격렬한 참호 전투를 펼치는 시대가 도래 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연예인 멤버들을 주축으로 일반 시민들의 참여가 아니라 반대로 연예인 이름표를 떼고 일반 군인들의 생활 속에 들어가 그들처럼 사는 것이다.

지난주 치열한 일요 예능은 어쩌다보니 히어로와 교육생의 대결이었다. 예능 신의 가호를 받는다는 이광수, 슈퍼 히어로, 짐승남들에 35번 교육생 샘 해밍턴은 홀로 맞섰다. 여기에 A급 신병 장혁과 진짜 신병 박형식이 뒤를 받치며 삼각편대를 이뤘고, 개인적으로 판정을 내린다면 삼각편대의 완승이었다.
<런닝맨>의 등장인물 모두가 각기 저마다의 초능력을 갖고 있지만 교육생에게 주어진 건 허름한 유격복과 계급장을 땐 훈련병 번호표뿐이었다. 그리고 그거면 충분했다. 샘 해밍턴은 윤후와 마찬가지의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장악한다. 그들은 그냥 존재할 뿐이지만 그것만으로 그 상황은 웃음이 터지게 된다. 샘은 유격 교관이 마지막으로 몇 번 유격체조를 할까 물어봤을 때 확고부동하게 가장 힘들어서 기피하는 8번 온몸 비틀기를 추천했다. 혹시나 해서 다시 물어봤지만 요지부동이었다. 같이 훈련받던 교육생들의 당황하고 놀라는 표정은 진심이었다. 샘 덕분에 재오픈한 지옥에서 교육생들은 패닉에 빠졌다. 샘은 늘 이런 식이다. 샘 해밍턴이 방송 내내 숱하게 받은 얼차려는 언급을 생략하도록 한다.
몸 개그는 또 어떠하냐. ‘도하 준비 끝’을 ‘번지 준비 끝’이라고 하고, 줄잡고 건너기를 시도했지만 바로 물에 처박혔다. <1박 2일>이었다면 높은 점수를 받을 입수자세였다. 그러고 물속에 서 있는 그의 방탄 헬멧 위에 밧줄이 살포시 얹어진다. 그림도 이런 처량하고 웃긴 그림이 없다.

<진짜 사나이>는 연예인들이 실제 군인처럼 행동하는 것과 센스 있는 자막 이외의 설정은 하나도 없지만 <런닝맨> 멤버들의 물고 물리는 배신과 반전의 가능성으로 가득한 시나리오가 갖지 못한 진정성이 있다. 그 위에 전우애, 추억, 안쓰러움, 공감, 호기심, 혹은 누군가를 그리게 하는 온갖 감정이 피어나고 샘 해밍턴이 웃음까지 터트려주니 재밌는 것이다. 어깨 인대가 손상돼 열외 했던 김수로가 보다 못하고 훈련에 참가한 돌발 상황과 같은 전우애가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게 바로 그런 것이다. 스토리의 유려함보다 드라마의 배경이 세트인지 실제인지에 더 큰 관심을 보이는 것이다.
반면 <런닝맨>의 어벤져스 특집이 블록버스터급이긴 하지만 복합적인 정서를 가진 <진짜 사나이>와 비교해보면 볼거리가 오히려 부족했다. 의상 이외에는 슈퍼 히어로만의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면서 1시간 30분 동안 예열만하다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이것은 한 회의 컨디션 문제가 아니라 패턴과 리얼의 대결이다. 이제 시청자들은 예능을 킬링타임용으로만 보지 않는 세상이다. 조금 거창하게 말하면 예능은 세상과 시청자들을 잇는 허브 같은 구실을 한다. 어떤 식으로든 시청자 개인의 존재를 비춰줄 거울 역할을 하거나 시청자들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정보나 감정을 전달해야 한다. 어벤져스와 교육생들간의 대립은 ‘그들의 리그’를 최대한 재밌게 보여주는 전통적인 스타일의 예능과 다큐의 영역에서 리얼의 궁극에 달한 예능 콘셉트간의 한판 대결인 셈이다.
지금 한쪽은 어벤져스와 정우성, 한쪽은 군생활의 백미인 유격으로 맞섰다. 분위기는 고조됐다. 점점 치열해지는 일요 예능의 리모컨 쟁탈전은 그저 시청률 싸움이 아니다. 예능의 패러다임, 그 왕좌를 놓고 벌이는 신구 세력의 격전지인 셈이다. 본격적인 첫 승부는 다음 주로 예고되었으니, 스포츠 경기를 즐기듯 현장을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SBS,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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