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엔터미디어=이문원의 문화산업비평] 5월12일 국내개봉이 예정된 홍콩 성애영화 ‘옥보단 3D’가 중화권에선 벌써 흥행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스포츠한국 4월17일자 기사 ‘옥보단 3D 돌풍… 홍콩·대만서 개봉후 연일 만원’은 “17일 야후 홍콩에 따르면 <옥보단 3D>는 홍콩에서 지난 14일 상영 첫날 275만 홍콩달러(약 3억8,552만원)의 수입을 올리면서 바로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옥보단 3D>의 입장 수익은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블록버스터 <아바타>가 가진 262만 홍콩달러를 능가하는 홍콩 역대 최고 기록”이라면서 “개봉 이래 연일 만원사례를 질주하고 있어 벌써부터 홍콩영화 사상 최고의 흥행작으로 기대되고 있다.”고 전했다.
또 “15일 영화 상영에 들어간 대만에서도 첫날에만 220만 대만달러(8,263만원)를 거둬들여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고 주말까지 800만 대만달러(3억48만원)을 너끈히 돌파할 것으로 자유시보(自由時報)가 보도했다.”면서 그 흥행원인에 대해 “개봉을 목전에 두고 주인공의 부인으로 등장하는 란옌이 돌연 잠적해 정신병원 입원 소문에 자살설까지 나돌면서 영화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켰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바닥까지 떨어진 극장용 성애영화의 상품가치
그러나 본국에서의 이 같은 열기와 달리 ‘옥보단 3D’의 국내 흥행 예상은 썩 좋지 않다. 정확히 말하자면 꽤 비관적이다. ‘앤잇굿’의 애드맨을 비롯한 영화전문 블로거들 예상도 그렇거니와, 무엇보다 대중 반응 면에서 ‘불타오르고’ 있지가 않다.
원인은 다양하다. 일단 한국에선 중화권에서 먹혔던 출연배우 란옌의 노이즈 마케팅이 허공에 떴다. 란옌이 대체 누군지조차 알지 못하는 환경인데 노이즈가 일리 없다. 그리고 ‘3D 사랑영화’라는 독특한 캐치프레이즈도 한국에선 딱히 주목요소가 못 된다. 한국은 그보다 1년여 전 첫 3D 자국 성애영화 ‘나탈리’를 무참히 실패시킨 시장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이제 한국에서 성애영화는 일종의 애물단지에 가깝다는 ‘원천적 결함’에 있다. 성애영화 장르가 ‘매춘’ 등 대박 히트작을 쏟아내며 저예산 고수익 효자 노릇을 했던 전성기는 이미 1980년대에 끝났다. ‘젖소부인 바람났네’ 등 비디오용 성애영화들이 2차 시장을 주름 잡았던 시절도 1990년대 말엽을 끝으로 종식됐다.
인터넷 탓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인터넷 불법파일 유통 탓이다. 웹하드 등을 통해 ‘AV강국’ 일본의 수많은 AV영화들이 일제히 불법유통에 들어간 지 오래다. 미국 등 서구 포르노대국의 콘텐츠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중화권 등 여타 아시아 지역, 유럽 지역의 합법/불법 포르노 콘텐츠까지 수없이 ‘발굴’돼 대중에 꾸준히 불법 소개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듯 인터넷만 접속하면 보다 쉽게, 보다 싸게, 보다 노골적인 콘텐츠를 공급받을 수 있는 환경인데 굳이 수위에 한계가 있는 ‘극장용 성애영화’의 상품가치가 높을 리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옥보단 3D’만의 문제가 아니다. 성애영화 장르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성애영화가 1차 시장인 극장에서 상품가치를 잃은 뒤 2차 시장으로 내려오기 시작하면서 이미 문제는 발생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2차 시장 붕괴의 서막을 알렸던 인터넷의 등장과 함께 국내 성애영화 시장 몰락은 기정사실화 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
그러니 이런 때 극장에서 먼저 승부를 보겠다는 ‘옥보단 3D’의 등장은, 3D건 4D건 ‘안 될 콘셉트’라는 게 일반적인 시각인 것이다.
그나마 성공한 극장용 성애영화들은 모두 ‘여성용’
당연히 반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임에도 ‘된’ 성애영화들도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 불법파일 유통 창궐기였던 21세기 초엽부터 살펴봐도 ‘색즉시공’, ‘몽정기’, ‘스캔들 조선남녀상열지사’ ‘음란서생’ ‘미인도’ ‘쌍화점’ 등이 모두 성공을 거뒀다. 외화 중에서도 ‘색계’가 200만 가까운 관객을 동원, 가능성을 보여준 바 있다.
위 영화들을 살펴보면 확실히 사극 성애영화들이 많긴 하다. 특히 한국영화 쪽에선 성애영화 히트작이 나왔다 하면 사극일 확률이 높다. 그러니 ‘옥보단 3D’가 극장개봉‘씩이나’ 시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일단 사극인데다, 거의 유일한 외화 성애영화 히트작이 마침 중화권 영화 ‘색계’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위 영화들엔 사극이라는 점 외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바로 여성층이 부담 없이 선택할 수 있는 콘텐츠라는 점이다. 이들은 한 마디로 ‘여성용 성애영화’들인 것이다.
일단 ‘스캔들 조선남녀상열지사’ ‘음란서생’ ‘미인도’ ‘쌍화점’ 등은 사극 중에서도 고증을 통한 세트디자인 및 의상디자인에 역점을 둔 영화들이다. 촬영도 수려하고 색감이 화려하다. 성애장면도 가능한 아름답게 그려낸다. 전반적으로 여성이 중시 여기는 미적 쾌에 집중돼있다. 거기다 인물과 상황설정도 다분히 여성 취향이 짙다. 사실상 여성용 멜로드라마 형식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 현대극이라 할지라도 이 같은 맥락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는다. ‘색즉시공’의 경우 확실히 남성층이 선호하는 음담패설 코미디긴 하지만, 그래도 기본 골격은 여성층에 어필하는 로맨틱 코미디로 잡고 있다. 남자주인공부터가 여성층이 호응하는 지고지순형 헌신 캐릭터다. 또한 ‘몽정기’ 역시 여성층이 선호하는 청춘물 형식에 역시 여성층이 궁금해 하는 남자 중학학생들 얘기를 다뤘다. ‘몽정기’ 성공에서 유심히 지켜봐야 할 부분은, 그 속편에서 무대를 여자고등학교로 옮기자 관객수가 절반 이하로 줄었다는 점이다. 여성 관객층 역할을 가늠할 수 있는 부분이다.
‘색계’의 성공 역시 여성층 호응으로 보는 게 정답이다. 파격적 성애묘사가 화제가 되긴 했지만, ‘색계’는 그것만으로 성공한 게 아니다.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이라는 딱지가 하나 더 붙었다. 예술영화로 분류된다. 그리고 예술영화 전성기였던 1990년대나 크게 열기가 꺾인 지금이나 이런 딱지가 붙은 영화를 가장 열성적으로 소비하는 건 여성층이다.
종합해볼 때 ‘성공한 성애영화는 모두 여성용 성애영화’라는 공식도 절대 비약이 아니게 된다. 그리고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1997년 IMF 외환위기와 뒤따른 경제 불황이 대중문화산업에 일으킨 가장 변화 중 하나는, 바로 남성층의 대중문화상품 소비욕이 크게 저하됐다는 점이었다. 남성층은 경제 불황기에 아무래도 문화소비부터 줄여나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에 반해 여성층의 소비욕은 오히려 증가되는 추세로 자리 잡았다. 여성층의 경제적 지위 향상은 이후로도 꾸준히 이어져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15년 가까이 지난 지금, 영화 소비는 기본적으로 여성층이 주도하게 된 형국이다. 영화소비는 이제 남녀 간 데이트 무비, 또는 여성끼리의 동반관람 구도로만 굳어지게 됐다. 두 경우 모두 영화 선택의 주도권은 여성에게로 넘어가게 된다. 그러다보니 남성층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이런 영화들마저도 이 같은 관객분포 구도에 종속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옥보단 3D’를 극장개봉 시키는 ‘진짜’ 이유는?
이제 다시 ‘옥보단 3D’로 돌아가 보자. 이 같은 여성 중심 영화시장 분위기에, ‘옥보단 3D’는 사실상 인터넷 불법파일 유통 문제가 없었더라도 여전히 흥행 적신호를 얻었을 콘텐트가 맞다. ‘옥보단 3D’는 완벽한 ‘남성용 성애영화’이기 때문이다.
‘옥보단 3D’는, 한국으로 치면 변강쇠 스토리다. 어떤 의미에선 섹스 수퍼히어로물에 가깝다. 영상의 미적 쾌, 등장인물들 간 관계 설정, 멜로드라마틱한 전개 등 여성층이 즐길 만한 요소는 전혀 없다. 거기다 변강쇠 스토리라는 점에서 이미 알 수 있듯 남성기 집착 코드로 승부를 거는 콘텐트다. 이는 사실상 여성층이 성애영화 장르 내에서 가장 혐오스러워하는 코드다.
그러나 위 모든 코드들은 동시에 남성층에는 정확히 먹혀들어가는 것들이기도 하다. 나아가 성애와 관련된 남성 판타지의 극단에 가깝다. 그러나 막상 이 같은 남성용 성애영화를 극장에서 소비해줄 남성 관객층, 동행 여성이 동의해주지 않더라도 혼자서라도 극장까지 기어이 찾아갈 남성 관객층은 더 이상 한국에서 발견하기 힘들다. 한 마디로 ‘옥보단 3D’는 ‘없는 관객층을 위한 영화’라는 얘기다.
더 중요한 건 21세기 들어 동일 코드 한국영화가 한 번 크게 실패한 전례가 있다는 점이다. ‘변강쇠’를 리메이크한 2008년작 ‘가루지기’다. 개봉 당시 숱한 사극 성애영화 성공작들 틈에서 불과 27만2648명의 관객만을 모으는 기록적인 참패를 겪었다. 역시 ‘없는 관객층’이 맞다는 점을 확인시켜 준 결과다.
그렇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옥보단 3D’가 극장개봉까지 기획하게 된 까닭은 대체 어디에 있을까. 사실상 간명한 얘기다. ‘옥보단 3D’는 화젯거리가 많은 영화다. 미디어를 타기 쉬운 조건이다. 일단 3D라는 점 자체부터 기사화 가치가 있다. 그리고 ‘옥보단’은 현재 각 연예미디어에 종사하는 30대 기자들에 친숙한 1990년대 인기 프랜차이즈였다. 그러니 ‘옥보단 3D’의 극장개봉은 어쩌면 전혀 다른 목적, 즉 개봉과 맞물린 미디어 보도를 통해 콘텐트 인지도를 높이려는 목적으로만 기획됐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그러면서 정작 수익은 2차 시장에서 찾겠다는 전략일 수 있다.
물론 한국은 2차 시장이 붕괴된 환경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조금만 신경 쓰면 아직 일정수준 이상의 수익 정도는 거둬들일 수 있는 환경이다. 일단 웹하드 불법파일 유통만 잘 체크해도 억대 수익 정도는 나온다. IPTV를 통한 수익도 400만 가입자를 둔 상황에서라면 절대 무시할 게 못 된다. 케이블TV 판권판매 수익 등도 마찬가지다. 물론 대박급 블록버스터라면 택도 없는 얘기지만, 수입비용이 크지 않은 홍콩산 성애영화라면 이 정도로도 손익분기를 넘을 수 있다는 계산이리라는 것.
더군다나 한국 남성 관객층은 아무리 표현에 한계가 있는 일반 성애영화라 할지라도, ‘안방극장’에서만큼은 꽤 후한 소비를 꾸준히 보여 왔다. IPTV 등의 다운로드 건수에서도 성애영화는 꾸준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 본래 모든 문화권의 성애영화 시장에선 ‘수위’에 따른 시장이 각기 따로 성립돼있다. 한 마디로, 가끔씩은 수위가 좀 낮더라도 플롯이 있는 성애영화를 보고 싶어 하기도 한다는 얘기다. 그저 극장까지 가기가 싫을 뿐이다.
한국 저예산영화시장, 남성용 성애영화로 다시 일으켜야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한국영화산업이 ‘옥보단 3D’의 향방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만약 ‘옥보단 3D’가 웹하드, IPTV, 케이블TV 등에서 일정수준 이상의 수익을 거둬들일 수 있다면, 그렇게 해서 손익분기를 넘길 수 있다면, 남성용 성애영화시장이 아직 완전히 사멸해버린 것은 아니라는 결론이 설 수 있다. 그러면 이른바 저예산 영화시장의 가능성에도 시동이 걸릴 수 있다.
여성용 성애영화는 확실히 저예산으로 만들기 어려운 구석이 있다. 언급했듯 세트디자인, 의상디자인 등에서부터 돈이 든다. 그러나 남성용 성애영화는 다르다. 본래 미적 쾌에 집중하는 콘텐트가 아니다보니 별로 돈 들 게 없다. ‘젖소부인 바람났네’ 시절에는 “배우와 침대만 있으면 만사 오케이”라는 말까지 돌았다.
만약 저예산 남성용 성애영화 시장이 성립된다면, 일단 계속 잉여 되고 있는 영화연출 인력을 붙잡아둘 수가 있다. 지금 한국영화산업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이른바 ‘차세대 주자’가 없다는 점이다. 안 그래도 영화연출을 꿈꾸는 이들이 1970년대 생 이하로는 드문 판국이다. 그런데 투자 빙하기를 맞아 투자자들도 대부분 이미 성공전력이 있는 기성연출 인력을 선호하다보니 차세대 영화주자들은 연출의 기회를 제대로 얻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오래 지속되면 차세대 영화연출 인력은 자연스럽게 영화계를 떠나게 된다. 이들이 계속해서 영화계에 붙어 있으면서 생활을 해결해나가기 위해선 초짜라도 부담 없이 연출을 맡길 수 있는 초저예산 영화시장이 필수불가결하다. 그 역할을 저예산 남성용 성애영화들이 맡아줄 수 있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옆 나라 일본만 해도 초저예산 남성용 성애영화인 ‘핑크영화’들을 통해 수많은 차세대 영화 인력을 키워낸 바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쉘 위 댄스’의 수오 마사유키, ‘큐어’의 구로자와 기요시, ‘가족게임’의 모리타 요시미츠 등도 모두 핑크영화 출신이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대부’의 거장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도 알고 보면 소프트코어 포르노 출신이다. ‘B급영화 대부’ 로저 코먼의 선정영화까지 합치면 마틴 스콜세지, 론 하워드, 제임스 카메론 등 현재 할리우드를 주름 잡는 거장들이 다수 포함된다.
한국대중문화시장은 늘 ‘저변’이 없어 골치를 썩는 시장이다. 대중 성향이 본래 주류 지향적, 이벤트 중심적이어서 그렇다. 그러다보니 시장을 살찌울 자양분 부족에 늘 시달리게 된다. 그러나 영화시장만 따로 떼놓고 생각해보면, 업계종사자 본인들 책임도 크다. 저예산영화시장을 그 자체로 가동되는 미니상업영화시장으로 만들 생각은 않고, 저예산영화=예술영화 구도로 왜곡시켜버린 책임이다. 그러다보니 현 시점 저예산영화 왕도는 어떻게든 정부의 독립영화지원금이나 받아 나 하고 싶은 대로 한 예술 하는 것으로 굳어버린 상태다. 이런 건 시장이 아니다. 시장이 성립되지 않는 비정상적인 판에선 인재들도 당연히 자리를 뜬다.
어떻게든 미래인력 확보를 위해 저예산영화 시장부터 만들어놓고 봐야한다. 그러기 위해선 최소 한 번이라도 가능성을 보여줬던 장르시장부터 서서히 가동을 걸어봐야 한다. 지금으로선 사실상 남성용 성애영화 시장밖에 두드릴 곳이 없다. 일본처럼 B급 특촬물 시장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미국처럼 B급 하드고어 시장이 따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옥보단 3D’가 ‘어떻게 해서든’ 손익분기를 넘길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점이 확인된다면, 정교한 미디어 전략과 마케팅 전략을 동원했을 시 부실한 2차 시장을 통해서라도 한국 남성용 성애영화시장이 돌아갈 수 있다는 데이터를 얻어내게 된다. 그리고 그런 데이터는 자연스럽게 시장 원동력으로 역할 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옥보단 3D’의 건투를 비는 바다. 돌이켜보면, 외국영화의 성공을 이처럼 고대해본 적도 또 없는 듯하다.
이문원 칼럼니스트 fletch@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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