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인왕후’, 예고만으로도 안볼 수 없었던 저세상 텐션

[엔터미디어=정덕현] 첫 방부터 빵 터졌다. tvN 새 토일드라마 <철인왕후>의 첫 회 시청률은 무려 8.6%(닐슨 코리아). 이 기록은 tvN 역대 토일드라마 중 <미스터 션샤인> 다음으로 높은 시청률이다. 순간 최고 시청률은 무려 11%에 달했다. 도대체 <철인왕후>의 무엇이 이토록 첫 회부터 화제를 만들었을까.

조선시대로 타임슬립되어 중전의 몸으로 들어간 바람둥이 남자의 이야기. 어찌 보면 황당한 설정이지만, 현대에서 과거로 갔다는 사실과 남성에서 여성으로 그것도 바람둥이에서 중전으로 몸이 바뀌었다는 판타지 설정은 그 자체로도 흥미를 끄는 요소가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사극이라는 다소 엄숙한(?) 장르를 뒤틀어 놓은 것만으로도 웃음이 터지기 때문이다. 궁궐에서의 중전의 모습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지금껏 사극에서는 볼 수 없었던 차림으로 궁녀들을 피해 달리는 김소용(신혜선)이 자신이 중전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그런 내가 왕 마누라가 된다는 거야?”라고 말할 때 묘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그런데 <철인왕후>라는 판타지 코미디 사극에서는 왕으로 등장하는 철종(김정현)의 모습도 예사롭지 않다. 점잖은 척 앉아 서책을 읽는 줄 알았더니 사실은 19금 춘화를 보고 있는 왕이다. 그런 왕 앞으로 대뜸 달려가 한바탕 말싸움을 하다 서책으로 위장한 춘화책을 두고 쟁탈전을 벌이는 두 사람의 모습은 한 마디로 저 세상 텐션이다.

어허 음은 양을 거슬러선 안 되고 자고로 아내란 남편의 말에 복종해야 하거늘.” 이렇게 왕이 으름장을 놓자 김소용이 하는 대거리가 이 드라마가 던져놓은 웃음의 상황을 잘 보여준다. “지금이 뭐 조선시대야?”하고 중전이 묻자 조선시대요.”라고 답하는 왕. 그러자 아주 임금님 납셨네.”라고 비아냥대는 중전에게 임금님이요.”라고 말하는 왕이라니.

본래는 셰프에 바람둥이였던 장봉환(최진혁)이 조선시대 중전으로 간택된 김소용의 몸으로 들어갔다는 설정은 그래서 말 그대로 시대착오의 코미디를 만들어낸다. 현재의 시선으로 조선시대를 들여다보니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시대착오. 그런데 지금이 뭐 조선시대야?”라고 묻는 그 지점은 사실 우리가 현재에도 여전히 반복되는 시대착오적 상황들 속에서 툭 던지곤 하는 그런 비아냥이 아니던가.

그래서 <철인왕후>가 가진 황당한 상상력의 코미디는 빵빵 터지면서도 묘한 짜릿함을 선사한다. 그건 마치 엄숙하고 시대착오적인 어떤 상황들을 김소용이라는 인물이 비웃고, 들이받고, 뒤집어버리는 이야기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김소용만이 아니라 왕이나 순원왕후(배종옥) 같은 인물들에게서도 보이는 풍자적 시선에서도 느껴진다. 이들의 진지해 보이는 눈빛은 그래서 슬쩍 뒤틀어보면 숨겨진 허세나 음흉한 속내가 드러남으로써 웃음을 만든다.

본래 중국의 소설 <태자비승직기>를 원작으로 갖고 왔지만, 타임슬립과 성별 전환 콘셉트만 가져왔을 뿐 <철인왕후>는 우리네 사극의 전통과 조선시대라는 특성들을 가져와 전혀 다른 스토리로 엮어냈다. 무엇보다 <철인왕후>의 코미디를 실감나게 만드는 건 배우들의 기막힌 연기 덕분이다. 중전의 몸으로 들어갔지만 본래는 바람둥이 남자인 김소용이라는 캐릭터를 신혜선은 살짝 뒤틀어진 얼굴표정 하나와 건들대는 몸동작 하나 그리고 마구 던져대는 대사 하나 속에 녹여낸다.

신혜선의 연기와 맞물려 철종 역할을 하는 김정현의 연기도 좋은 합을 만들어낸다. 가늘게 뜬 눈빛이 선비인 양, 왕의 위엄을 가장하지만 어딘지 음흉한 속내를 숨기는 것처럼 보여 웃음을 주면서도 어딘지 이 인물은 그런 허허실실을 일부러 가장하는 듯한 느낌마저 준다. 또 이런 코믹 판타지 사극에 배종옥이나 김태우 같은 든든한 연기파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무게감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일단 <철인왕후>가 첫 방에 보여준 이 드라마의 신박한 설정은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앞으로 얼마나 이 작품이 웃음의 밀도를 이어갈 수 있는가 하는 점과, 그 안에서도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현재의 시대착오를 비트는 풍자적 메시지들을 잘 살려나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신혜선은 확실히 드라마의 중심을 잡아주는 하드캐리를 성공적으로 보이고 있다. 그 힘을 작품은 얼마나 받쳐줄까.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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