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TV삼분지계]가 꼽은, 놓치면 아쉬울 올해의 장면들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TV삼분지계]를 통해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피로한 한 해였다. 코로나19가 덮친 세상은 우리 사회가 앓고 있던 취약점들을 더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어떤 사람들이 집 안에만 갇혀 지내며 심적인 고통에 시달리는 동안, 어떤 이들은 코로나19의 위험을 무릅쓰고 배달 노동이나 방역 노동에 앞장서야 했다. 영화계와 연극, 공연계가 원상복구가 어려워 보일 만큼 부스러졌고, 일자리나 수입을 잃은 사람들의 마음이 각박해졌다. 사람마다 그 정도는 다르겠지만, 모두가 조금씩 다치고 아픈 한 해였다.

그런 와중에도 TV는 우리 곁에 있었다. 세상이 다 변한 것만 같아도 어떤 것들은 우리 곁에서 계속 우리를 위로해 줄 것이라는 믿음의 많은 부분은 실로 TV에서 나왔다. 그래서 [TV삼분지계]2020년 마지막 날, 세 평론가들에게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올해의 장면을 물었다. 김선영 평론가는 MBC 드라마 <카이로스>의 한 장면을 꼽았다. 역사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라도 비극의 근원을 찾아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메시지가 빛나는 장면이다. 정석희 평론가는 MBN 예능 <오래 살고 볼 일 : 어쩌다 모델>의 한 장면을 꼽았다. TV에서 오랜 시간 소외되었던 노년층에게 새로운 꿈을 질문하고 과감하게 기회를 주는 프로그램 제작진의 용기가 선정 이유다. 이승한 평론가는 카카오TV <톡이나 할까?>의 한 장면을 골랐다. 새롭고 섬세한 소통방식을 통해 보다 나은 이해와 소통을 가능케 한 프로그램이라는 평이다.

[TV삼분지계]의 2020년 결산과 함께, 여러분의 기억에 남는 2020년의 장면은 무엇인지도 곱씹어보면 어떨까. 아울러 2021년의 TV 시청도 즐겁기를, 2021년의 독자 여러분께는 더 좋은 일들이 가득하길 바란다.

p.s. [TV삼분지계]를 통해 오랜 시간 날카롭고 섬세한 시선을 나누어 주었던 김선영 평론가가 이번 회를 마지막으로 [TV삼분지계]를 떠난다. 감사하고 아쉬운 마음으로 김선영 평론가를 응원한다.

◆ 역사는 앞으로 나아간다 - ‘카이로스’ 12회 엔딩

MBC <카이로스>는 올해 최고의 드라마이자 비운의 수작이다. 방영 전에는 다른 시간대에 속한 두 사람이 통신매체를 통해 교신한다는 설정 때문에 유사한 소재의 작품들과 비교되어 저평가받았고, 방영 뒤에는 프로야구 중계로 인한 잦은 결방과 동시간대 SBS <펜트하우스>의 폭주로 인해 제대로 된 주목을 받지 못했다. 여러 불운에도 불구하고 <카이로스>는 첫회부터 최종회까지 뛰어난 집중력과 완성도를 선보였다. 타임크로싱스릴러로서의 장르적 긴장감을 내내 유지한 것은 물론, 기획의도를 탄탄한 스토리 안에 완벽하게 구현했다. 작가도, 감독도 이 작품이 입봉작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더 놀랍다.

 

유괴된 어린 딸을 구하려는 미래의 남자 서진(신성록)과 사라진 엄마를 찾아야 하는 과거의 여자 애리(이세영)의 공조로 시작한 <카이로스>는 곧 이 개인사적 비극 뒤에 숨어있던 사회적 비극의 진실을 향해 달려나간다. 모든 이야기의 출발점인 19년 전 태정타운 붕괴사고는 개발주의에 매몰된 한국사회의 수많은 참사를 연상시킨다. 그리고 마침내 12회 엔딩에서 19년 전의 사고로 이어져 있던 서진과 애리의 운명이 수면 위로 떠오르며 진짜 주제가 드러난다. 그동안 서진과 애리는 공조를 통해 예견된 사고들을 피해왔지만, 또 다른 패턴으로 되풀이되는 불행의 시간에 갇혀 있었다. 문제의 근본적 원인이 19년 전의 참사 안에 매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사고 현장에서 멈춰진 애리 부친의 시계는 결국 이 모든 비극의 근원, 그 은폐된 진실을 밝혀내지 않는 역사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역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모든 이슈를 코로나19가 집어삼킨 2020년의 마지막 날, 새로운 해를 하루 앞둔 시점에서 돌아보면 더 의미심장한 단연 올해의 장면이다.

김선영 칼럼니스트 herland@naver.com

◆ 노년의 꿈을 외따로 떨어뜨리지 않는 용기

‘오래 살고 볼 일 : 어쩌다 모델’ 10회, 김숙자님 화보 촬영현장

코로나19로 한 치 앞이 오리무중이다.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재앙 앞에 너나 없이 흔들리는 중이지만 네 살짜리 어린 손녀를 보고 있노라면 측은하기 짝이 없다. 인생의 1/4이 팬데믹이라니 원. 자칫 잘못했다가 1/41/3이 될 수 있고 더 나아가 반이 될 수도 있다. 섬뜩한 일이지 뭔가. 보는 대로 듣는 대로 느끼고 흡수해야 할 시기에 이 무슨 감옥살이냔 말이다. 그런데 눈을 돌려 보면 어르신들의 삶 또한 한숨이 절로 나온다. 아침저녁으로 자식들은 절대 나가시면 안 된다며 경고 또 경고, 경로 시설도 종교 모임도 금지 또 금지. 그저 TV 앞에 앉아 있는 거 외엔 별 다른 낙이 없다. 그렇다고 어디 노년층을 위한 변변한 프로그램은 있던가. 광고 시장이 2049 중심으로 돌아가면서 시니어 대상 프로그램은 아예 희귀해졌다. 그러니 쏟아져 나오는 트로트 프로그램이나 아니면 이 채널 저 채널 사골 우리듯이 틀어주는 옛날 드라마나 볼 밖에.

 

MBN <오래 살고 볼 일 : 어쩌다 모델>은 오롯이 인생 이모작을 준비하는 시니어들을 위해 마련된, 어르신들의 꿈을 얘기하는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혼돈의 이 시대에 누가 노년의 꿈에 관심을 갖겠는가. 그럼에도 노년층을 위해 기꺼이 자리를 펴준 제작진의 용기와 도전에 박수를 보낸다. 두고두고 기억하고 싶은 장면으로 꼽고 싶은 순간은 바로 광고 화보 미션과 가족 화보 미션에서 연이어 탈락 위기였으나 4차 미션 1 1 익스트림 화보 촬영에서 판세를 뒤집고 당당히 우승을 차지한 김숙자(62) 님의 화보 촬영 현장이다. 스커트 차림이어서 한 다리로만 와이어 줄을 버텨야 하는 긴박한 상황이었지만 뜨거운 열정과 근성으로 재촬영을 요구해가며 완벽한 한 컷을 만들었다. 그리고 탑7에 이름을 올려 결선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한동안 제조업 침체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는 김숙자 님, 그는 이제 시니어 모델이다!

정석희 TV 칼럼니스트 soyow59@hanmail.net

◆ 섬세하게 시도한 새로운 방식의 소통, 우리는 지금보다 더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카카오TV ‘톡이나 할까?’ 14회 구경선 작가 편

카카오TV의 인터뷰 프로그램 <톡이나 할까?>를 추천하다 보면 종종 듣는 질문이 있다. 그런데 왜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앉아서 굳이 육성을 놔두고 카카오톡으로 대화하는 거죠? 카카오에서 제작한 프로그램이라서? 나는 또 추천한 사람의 입장에서 연신 프로그램의 장점을 설명한다. 톡으로 이야기할 때에는 조금 더 부담 없이 농담도 던질 수 있고 감정표현도 더 살가워지는 부분이 있잖아요. 대답을 열심히 하다 보면 기분이 이상하다. 내가 제작진도 아닌데, 왜 이렇게까지 프로그램의 의의를 설명하고 있는 걸까?

 

그 이유를, 국민토끼 베니의 창조자인 구경선 작가와의 톡터뷰에서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싸이월드 시절부터 카카오톡의 시대까지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베니캐릭터를 그린 구경선 작가는 두 살에 앓은 열병으로 청력을 상실했다.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언젠가 시력도 상실하게 될지 모른다는 구경선 작가의 이야기는, 기존의 언론이나 TV의 관습대로라면 상처를 딛고 희망을 피워낸 인간 승리따위의 헤드라인으로 뽑기 딱 좋은 사연이다.

그러나 <톡이나 할까?>는 비장애인의 자리에서 장애인의 성취를 대견해하는 시혜적인 관점을 피해간다. 구경선 작가가 출연한 14회는, 망막색소변성증을 언제 시력을 잃을지 모르니 아름다운 세상을 더 많이 봐두기로 했다는 여행의 출발점으로 삼았던 구경선 작가의 쾌활함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회차 내내 음향을 구경선 작가의 동의와 관련단체의 자문을 받아 재현한 청각장애인이 경험하는 소리로 채워 청인들로 하여금 농인들의 관점에서 경험하는 세상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게 해준다.

<톡이나 할까?>가 선택한 독특한 포맷의 가치를, 그리고 더 많은 이들을 포용할 수 있는 TV 매체의 가능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들어준 회차다. 우리는 늘 기존의 소통방식이 누군가를 배제하고 있는 건 아닌지, 더 새로운 방식으로 소통할 수는 없는지 그 가능성을 탐구할 필요가 있다. 우린 서로를 더 잘 이해할 필요가 있으니까.

이승한 칼럼니스트 tintin@iamtintin.net

[영상=MBC, MBN, 카카오TV. 그래픽=이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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