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지웅, 잃을 게 생긴 ‘썰전’의 비밀병기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썰전>에 대한 썰을 푸는 건 더 이상 흥미로운 일이 아니다. 방송 토크쇼의 새 지평이자 일상과 방송의 경계를 더욱 가깝게 했다는 말 또한 새로운 평가가 아니다. 이 덕분에 국가적 이슈로 떠올랐던 트러블메이커 강용석은 이미지를 세탁했다. 종편에 대한 무조건적인 거부감도 희석됐다. 다른 종편 방송사들이 JTBC 앞으로 매달 송금해도 될 정도다. 그런데 열광이 조금 누그러진 지금 <썰전>이라는 이슈 리뷰 토크쇼가 지속가능한지에 대해서 문제제기를 해봐야 할 때다. 보는 눈이 많아진 가운데 이런저런 썰을 ‘독하게’ 푸는 태도를 얼마나 유지할 수 있겠느냐는 물음이다.
<썰전>의 태도는 제목부터 ‘담론’ 대신 ‘썰’이란 속어를 내세운 것에서 볼 수 있듯이 대안적이고 마이너한 감성을 바탕으로 한다. 어디든 성역 없이 독한 말을 던질 수 있다는 태도는 기본적으로 잃을 게 없다는 출발선상에서 시작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다. 물론 본인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품고 있겠지만 그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강용석이다.
지난 몇 주간 숨고르기를 했던 것일까. 그는 이번 주 새누리당의 여론 전략 프레임을 전면 반박했다. 국정원 댓글 사건을 덮기 위해 NLL을 갖고 왔다는 전제부터 깔고 전문을 보면 어떻게 봐도 NLL 포기라고 해석하기 힘들다고 짚고 시작한다. 대화록 전문과 뉘앙스와 의미가 상이한 발췌요약본은 범죄수준이며 지난 대선에 새누리당이 그 덕을 봤다고 인정했다.
정말 법률가의 마지막 양심이었을까. 그는 NLL 발언록을 갖고 고 노무현 대통령을 비판했던 새누리당의 두 의원은 사퇴해야 하며 자신을 포함 새누리당이 ‘똥볼’을 찼다고 주장했다. 국정원장의 전문 공개 또한 군인 출신이 절대로 독단적으로 결정을 내리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밝혔다. 바로 이 지점이 사람들이 <썰전>을 보면서 느끼는 카타르시스다. 새누리당 의원 출신이 진영논리를 벗어나 뉴스의 이면과 정쟁에 대해 명확한 진단을 내리는 것은 그 어느 뉴스나 시사토크에서도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강용석의 펀치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예능 심판자’ 코너다. <썰전>이 지켜야 할 삐딱한 태도가 벌써 많이 착해졌다. 종합격투기에 비유하자면 반데레이 실바의 니킥을 기대했는데 조르주 생피에르의 경기를 보는 기분이다. 강펀치를 날릴 것으로 기대를 모은 김구라는 독설을 던지기보다 조율하는 MC의 역할에 더욱 큰 관심을 보인다. ‘욕망 아줌마’ 캐릭터의 박지윤과 이윤석은 마음껏 다른 연예인이나 프로그램을 비평하기 자유롭지 않은 방송 산업 내 종사자들이다보니 날선 공격은 자제한다.
그래서 허지웅 기자는 강용석과 함께 이 프로그램의 엔진이 되어야 한다. 깡마르고 선 굵은 낯선 얼굴(받아들이기 나름이지만 창단멤버였던 홍석천은 그의 콧날이 예술이라고 했다). 다른 출연자에 비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썰전>의 앞으로의 신선도를 유지할 무기다. 그는 출연진 중 유일하게 비평할 대상과 자신이 속한 필드가 일치하지 않는다. 이것이 그의 입을 가볍게 만든다. 칭찬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자신의 칼럼이나 SNS에 쓰듯 ‘구리다’는 말을 방송에서 직설적으로 할 수 있는 인물은 흔치 않다.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후반부 편집을 내려놓았다” “<구암 허준>은 내 인생에 가장 재미없는 드라마” 영화 <26년>는 “근 10년간 이렇게 영화적 완성도를 포기한 영화는 없었다. 대선을 앞두고 급조한 영화다”라고 자신의 취향과 선호를 분명하게 밝힌다. 특히 “손석희 사장에 대한 평가는 삼성을 비판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여부에 있다”는 기존 방송인이라면 도저히 할 수 발언이었다.

방송환경에 점점 익숙해지면서 허지웅은 점점 자신만의 포지션을 만들고 있다. 방송 초반에는 전문가로서 사안을 정리하고 정보전달을 하는 역할을 주로 담당했지만, 점점 견해가 사라지는 쇼에서 자신의 언어를 강하게 구사한다. 대화의 정리가 아니라 물꼬와 방향이 그로부터 결정된다. 아무래도 다른 출연진들이 다루기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연예병사 제도에 홀로 분기탱천해 씩씩거리며 대중의 분노를 긁어주다가도, 사명감에 치우친 나머지 저널리즘의 본분을 망각하거나 오버하기 쉽다며 이번 보도 행태의 문제점을 함께 짚어주는 것이 바로 그의 역할이다.
방송이 거듭됨에 따라 리액션도 부드럽고 자연스러워졌다. 말수가 늘어남에 따라 구사하는 유머도 늘어나고 있다. 새로운 가족 예능을 제안해보라니까, 이 땅 어딘가 자라고 있을 남자 연예인들의 2세를 데려다 가족버라이어티를 만들자는 막장 예능을 제시한 것은 아무도 웃지 않았지만 허지웅식 유머였다.
전문 방송인이 아닌 강용석과 허지웅은 일상과 방송이 만나는 접점이자 시청자들이 <썰전>을 주목하도록 만드는 정체성이다. 기존 방송과 방송인들이 감히 할 수 없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썰전>이 신선하게 다가온 이유 중 하나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언더가 메인스트림으로 올라올 때 인기를 얻은 동력이 마이너한 감수성에 있었다면 문제가 생긴다. <나꼼수>가 한창 인기를 끌다가 정국을 흔든 순간 소멸되고, 수많은 밴드들이 EP나 1집이 최고로 남는 것도 그 때문이다. <썰전>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선 ‘독한 혀’라는 태도를 지켜야 한다. 그 방법은 역시나 펀치력을 기르는 것밖에 없다. 영민하게 경기를 운영해서 이기는 것보다 KO패를 당하더라도 화끈하게 펀치를 날리는 것. <썰전>식 토크쇼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다. 이미 강용석에 이은 새로운 펀치는 출격 준비를 마쳤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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