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금리 시대’ 은행 예·적금 1년만에 12조원 감소
“고령층·부유층도 자금 맡길 수 있는 안정적 투자 환경 필요”

[엔터미디어 박재찬 기자] ‘제로금리 시대’ 시작과 함께 주요 시중은행 정기 예·적금 잔액이 급감했다. 은행에서 빠져나간 자금의 상당액은 호황인 주식시장으로 흘러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저축은행들도 시중은행보다 높은 금리를 앞세워 고객 모시기에 나서고 있다.

7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KB국민은행·신한은행·하나은행·NH농협은행 등 주요 시중은행의 정기 예·적금 잔액은 673조7286억원으로 2019년 말 685조7160억원 대비 11조9874억원, 2% 감소했다. 이는 2018년 말에서 2019년 말 사이 50조원 가까이 증가한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으로 큰 감소 폭이다.

사진제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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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은행의 정기 예·적금 잔액은 2016~2019년 매년 수십조원씩 증가해왔다. 하지만 지난해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로 예·적금 금리가 역대 최저로 하락하면서 1년만에 예·적금 잔액이 급감했다.

올해 3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기준금리를 1.25%에서 0.75%로의 ‘빅컷’을 단행하면서 제로금리 시대가 열렸고, 이어 5월에도 기준금리를 0.5%로 한차례 더 인하했다.

제로금리 시대 시작과 함께 주요 시중은행의 정기 예·적금 금리도 모두 0%대로 떨어졌다. 쉽게 말해 은행에 1년 동안 1000만원을 예금해도 10만원의 이자도 받기 어렵다는 의미다.

주요 5대 시중은행 정기 예금 상품 금리를 보면 1년 만기 기준 최저 금리 0.45%에서 최대 0.9%에 불과하다. 또 같은 기준 정기 적금 상품 금리는 최저 금리 0.25%에서 최대 1.9%의 수준을 보였다.

한 시중은행 고객은 “그동안은 적금이 만기되면 그자리에서 바로 다시 적금을 계약해 돈을 불려왔는데, 지금은 금리가 너무 낮아 또 적금에 가입하기에는 부담스럽다”며 “일단은 자금을 은행에 묶어두고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저축은행들은 은행보다 높은 금리를 앞세워 예·적금 고객 모시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저축은행들은 지난해 110%였던 예금 잔액에 대한 대출 잔액 비율 규제가 올해부터 100%로 강화돼 수신을 늘여야 하는 상황이다.

주요 저축은행 정기 예금 금리는 지난해 말 기준 최저 1.7%에서 최대 2.2%까지 제공하고 있다. 또 같은 기간 정기 적금의 경우도 최저 1.5%에서 최대 5%까지 제공하고 있다.

저축은행 관계자는 “고객에게 유리한 금리를 제공하기 위해 다양한 이벤트를 제공하고 있다”며 “특히, 디지털 금융 활성화를 위해 비대면 상품에 대한 추가 금리를 제공하는 이벤트들이 많다”고 말했다.

사진제공=KB국민은행
사진제공=KB국민은행

한편, 지난해 시중은행에서 빠져나간 자금이 가장 흘러 들어간 곳은 주식시장이다. 초저금리가 이어지면서 예·적금이 주식·부동산 대기 자금 등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연말부터 주식 시장은 활황세를 보이며 더 많은 자금들이 투자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지난 6일 코스피가 장중 사상 처음으로 3000포인트를 넘어섰고, 7일 11시 기준 3033포인트를 유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주식시장 호황은 2030 젊은 층에서 ‘빚투·영끌’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과도하게 자금이 몰리고 있어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또 과거 은행처럼 안정적인 투자도 가능한 투자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부채 수준이 높고 금융, 실물 간 괴리가 확대된 상황에서는 작은 충격에도 시장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며 “투자의 기본이 분산인 만큼 무조건 높은 수익을 제공하는 투자처로 자금이 몰리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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