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노동영화가 지루할 틈 없다는 건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이태겸 감독의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가 최근 몇 개월 동안 나온 한국 영화 중 가장 재미있는 영화라고 말한다면 이상하게 들릴까. 코로나 사태 때문에 경쟁상대가 적긴 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을 고려한다고 해도 한국의 컴컴한 노동환경을 고발하는 진지한 영화를 ‘재미있다’고 말해도 될까? 마지막 문장은 두 가지 의미로 읽힌다. 1. 사회적 메시지를 가진 이런 영화들은 재미있을 수가 없다. 2. 이런 영화들의 척도는 재미여서는 안 된다. 하지만 사람들의 선입견이 뭐라고 말하건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는 재미있는 영화의 조건을 갖추고 있고 이를 무시하기는 어렵다.
내용을 보자. 원청에서 사무직으로 7년 동안 일한 정은(유다인)은 1년간 시골의 하청업체에서 일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이는 권고사직을 거부한 정은에 대한 일종의 형벌이다. 현장근무자들에겐 할 일도 없고 임금만 먹는 정은이 좋게 보일 리가 없다. 여기서 쫓겨나지 않고 1년을 버틴 뒤 회사로 돌아가려면 정은은 최대한 자신이 유용한 인간임을 입증해야 한다.

퍽퍽하게 들린다. 이 영화에는 부당한 노동환경에서 여성 노동자가 겪을 수 있는 온갖 사례들과 그에 대한 대응이 담겨있다. 이 정보들은 자연스럽게 드라마에 녹여내려는 시도 없이 통째로 무뚝뚝하게 전달된다. 분위기는 심각하고 어둡다. 지금의 관객들이 대중영화에 요구하는 사이다 전개도 없고 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건조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는 강렬한 몰입도를 과시하는 작품이다. 이 중심에는 유다인이 연기하는 주인공 정은이 있다. 정은은 잔 다르크나 장 발장처럼 끝없이 닥치는 시련을 극복하는 정통적인 영웅이다. 성격은 많이 안 좋지만 세상과 화합하지 못하는 올곧고 정의로운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다.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 취급을 받지만 그렇게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며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다면 세상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아주지 못하고 무엇보다 자신이 살아남지 못한다. 그리고 영화는 1분도 쉬지 않고 정은에게 극복해야 할 과제를 준다. 이게 영화 끝까지 간다. 일단 정은에게 감정이입을 시작하면 관객들은 지루할 시간이 없다.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여기지만 실제로는 아닌 것을 지적하겠다. 바로 ‘메시지를 드라마에 녹여내는 것’의 필요성이다. 보통 이는 ‘메시지를 필요하다면 그냥 신문을 읽겠다’라는 익숙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하지만 수많은 영화에서 메시지는 스토리의 일부이고 이들이 제시하는 문제점은 드라마 자체이다.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에서 메시지와 부당한 노동환경은 무언가에 녹여내어 말랑말랑하거나 예쁘게 만들어야 할 이유가 없다. 이들은 모두 정은이 싸워야 할 이유이고 정은이 싸워야 할 상대이다. 이들은 최대한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방법은 있는 그대로 그냥 보여주는 것이다. 그게 거칠게 보인다면 영화가 다루는 상황이 거칠고 해법도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작품은 보기만큼 ‘장르적인 노동영화’도 아니다. 사회 문제를 다룬 영화가 스스로를 ‘사회 고발 영화’의 장르에 속해있다고 인식하는 순간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차례 이야기했다. 하지만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는 그렇게 단순한 길을 가지도 않는다. 영화는 부당한 노동환경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만 노동의 가치와 아름다움에 대해, 이에 도달하기 위한 투쟁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 영화가 제공하는 카타르시스 상당부분은 후자에서 나온다. 이 묘사는 종종 구소련 사회주의 리얼리즘 영화들과 겹치기도 하는데, 이들처럼 노동자와 노동환경을 납작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모든 재료들이 익숙하지만 이들은 영화가 도식적이지 않게 보일 정도로 적절하게 배분되고 배합되어 있다. 영화는 익숙한 위험도 피해간다. 정은과 막내(오정세)의 관계는 연상의 현장 남자 노동자가 젊은 사무직 여성 노동자에게 진짜 인생을 가르치는 방향으로 갈 수도 있었지만 이 영화에서는 이를 의식적으로 줄인다.

완벽하지는 않다. 영화의 후반은 강렬하지만 메시지 영화의 전형성을 보이고 지금까지 쌓은 정은의 캐릭터를 충분히 활용한 것 같지 않다. 이 부분을 고정점으로 해서 각본 작업을 한 것이 보이기 때문에 왜 이런 결말로 갔는지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하지만 같은 이야기를 하고 같은 방향으로 가더라도 정은의 캐릭터에 더 잘 맞는 길을 찾을 수 있었을 것 같다.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스틸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