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자를 소환하는 VR과 AI, 재현의 윤리를 말하다
[TV삼분지계의 이 달의 생각] 죽은 이들에 대한 기억을 재현하는 VR과 AI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의 이달의 생각] ◾편집자 주◾ 21세기 미디어 환경의 변화는 숨가쁘다. 쏟아져 나오는 콘텐츠를 다 챙겨보는 일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진 시대, 당장 눈 앞의 변화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초점을 잃게 된다. 그래서 TV삼분지계는 생각했다. 매주 방영되는 프로그램 리뷰 말고, 보다 더 긴 호흡으로 TV를 곱씹어 볼 수는 없을까? TV삼분지계는 한 달에 한 번, 특정한 주제를 놓고 이야기 해보기로 했다. 지금 당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 이야기에 얽매이지 않고, 더 긴 호흡으로 중요하다 생각되는 것들을 이야기하기로. 이름하여 [TV삼분지계의 이 달의 생각]이다.

세상을 떠난 김현식과 김광석이, 자신들이 세상을 떠난 뒤에 발표된 노래를 부른다. 김용균의 삶을 몰랐던 시민들이, VR 기어를 쓰고 김용균이 일했던 어두컴컴한 태안화력발전소 안으로 들어간다. 2020년 말부터 2021년 초까지, TV는 온통 세상을 떠나간 이들을 VRAI로 소환하는 일에 몰두 중이다. 2020년 말 Mnet <다시 한번>은 터틀맨과 김현식의 목소리를 학습한 음성합성 AI를 통해 신곡을 발표했고, 2021SBS <신년특집 세기의 대결: AI vs. 인간>은 같은 AI를 이용해 김광석의 목소리로 신곡을 발표했다.

2020, 세상을 떠난 딸을 다시 만나고 싶었던 엄마에게 VR로 구현된 딸과의 재회를 제공하는 휴먼다큐 <너를 만났다>를 선보였던 MBC는 올해 한층 더 칼을 갈고 돌아왔다. 사랑했던 부부의 재회를 주선해주었던 1, 2로망스에 이어, 산업재해로 세상을 떠난 김용균은 어떤 청년이었고 얼마나 열악한 환경을 견뎌냈는지를 참가자들에게 체험시키는 ‘VR 저널리즘을 시도한 3용균이를 만났다를 선보였다.

죽은 이들에 대한 기억을 복원하고 재현하는데 열중하는 TV의 시도를, [TV삼분지계]의 세 평론가는 어떻게 봤을까? 이승한 평론가는 <다시 한번><신년특집 세기의 대결: AI vs. 인간> 등의 시도를 흥미로워하면서도, 고인들이 이와 같은 기술이 가능할 거라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고 따라서 세상을 떠나기 전에 자신의 목소리를 활용한 사후 작품을 만들 권리에 대해 규정할 생각도 못했을 것이라는 점에서 윤리적인 딜레마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한다.

남지우 평론가는 <너를 만났다> 3용균이를 만났다를 통해, VR이 제공하는 압도적인 몰입과 충격효과가 수용자들에게 애도의 공감대를 형성해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정치적인 효과를 자아낼 수도 있을 것이라 전망했다. 정석희 평론가 또한 용균이를 만났다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방송이 뭘 해야 하는지 어렴풋이나마 알게해준 방송이었다고 평하며, 최근 들어 VRAI를 통해 망자를 다시 화면 위로 소환하는 방송들의 존재 이유에 대해 조심스레 긍정하는 평을 남겼다.

◆ 남은 우리는 세상을 떠난 이들의 어디까지를 재현할 수 있을까?

시작은 지난해 말이었다. 202012, Mnet이 특집기획으로 선보인 <다시 한번>은 음성합성 AI로 거북이의 리더 터틀맨의 목소리를 복원하고, CGI 기술로 터틀맨의 얼굴을 복원해 홀로그램 기술로 터틀맨을 무대 위에 세웠다. 2008년에 세상을 떠난 터틀맨이 2020년에 발표된 가호의 시작을 개사한 새로운 시작을 부르는 광경은 신선했고, 신선한 만큼 울컥하기도 했다. 함께 무대에 오른 거북이 멤버들은 물론, 관객석에 앉아서 무대를 보던 터틀맨의 유가족들도 모두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 뒤로 나왔던 일련의 시도들은 매번 화제를 모았다. <다시 한번>이 선보인 김현식 버전의 너의 뒤에서, SBS <신년특집 세기의 대결: AI vs. 인간>이 선보인 김광석 버전의 보고 싶다등은 온라인 상에서 뜨거운 화제를 모았다. 화제가 된 만큼 찬반도 뜨거웠다. 어떤 이들은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가수들의 목소리를 다시 들은 반가움과 그리움을 이야기했고, 또 다른 이들은 여전히 기계가 만진 티가 역력한 결과물에서 불쾌한 골짜기를 느끼기도 했다.

불쾌한 골짜기만큼이나 위태로운 것은 재현의 윤리다. 김현식도, 김광석도, 터틀맨도, 모두 AI 기술을 통한 복원이 가시거리에 들어오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다시 말해 자신이 남기고 간 목소리를 가지고 다른 누군가가 전혀 새로운 곡을 부르게 만들 것이라는 상황을 상상해 본 적이 없고, 그에 대한 권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 규정하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망자를 그리워하는 것은 남아있는 사람들의 권리지만, 기술을 이용해 망자를 복원한 뒤 새로운 프로젝트에 참여시키는 것이 과연 망자를 기리는 윤리적인 방식인지는 여전히 미지수의 영역이다.

MBC <너를 만났다> 3용균이를 만났다처럼 망자가 살아있던 시절의 체험과 기억을 VR로 구현하는 것은, 최소한 망자가 직접 경험한 일들을 보여주는 것이기에 망자가 안 했을 그가 살아 있었다면 과연 이런 활동에 참여했을까?’라는 질문에 대해, 남아있는 사람들이 대신 답을 할 수 있는 길은 없지 않은가.

이승한 칼럼니스트 tintin@iamtintin.net

◆ 新 VR 전략 : 애도·공감·정치

두어 달 전, 여행을 잃은 인천공항에 약간의 활기를 보탠 적이 있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와 주한프랑스문화원이 공항을 배경으로 VR 전시를 준비했는데, 내가 평소 bifan의 팬인 데다 문화원 친구가 진두지휘해 준비한 전시라 의미가 깊었다. 제목은 ‘BEYOND REALITY’. 고글만 쓰면 코로나19라는 지금의 현실을 넘어서, 세상 너머로, 너머의 세상으로 얼마든 갈 수 있었다.

VR이 선사하는 것은 아주 높은 강도의 충격 체험이다. ·청각이 모두 굉장한 자극에 노출되며, 그렇게 완성된 몰입 상태는 극한으로 치닫는다. VR 체험 후 필히 동반되는 어지럼과 피로감마저 몰입의 결과다. 인간은 몰입 상태에서 쾌락과 만족을 느끼지만, 순수 의지만으론 그에 가닿는 것을 어려워한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것들의 도움을 받곤 하는데, 이 글을 쓰는 지금 내가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있듯 말이다. 일정에 쫓겨 더 폭발적이고 지속적인 몰입이 필요한 순간이 찾아오면 지금 여기가 캘리포니아, 암스테르담이었으면 좋겠다고 농담한다. 마약이라도 해야겠다고.

마약 합법화 이전에 VR 기술이 먼저 도착해 우리의 전 세대적 몰입을 돕고 있음을 공항에 이어 TV에서 발견한다. 4일 방송된 MBC 다큐플렉스 <용균이를 만났다>가 몰입으로부터 추출한 인간주의는 바로 공감’.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공감은 줄곧 한국에서 애도와 정치가 만나는 지점이 되어주었다. 롤랑 바르트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쓴 책 애도 일기에서 나는 슬픔 속에 있는 게 아니라 슬퍼하는 것이라고 했다. 애도는 배타적이지 않고, 다른 사람이 합류하기를 간절히 기다린다. 그 합류의 순간에 공감이 발생하고, 이는 곧 정치로 이어질 것이다. 타고나지 않은 이상, 경험하지 않은 이상, 공감엔 힘이 든다. 그렇다면 기술이 온 힘을 다해 우리를 도와줄 것이다. 더 몰입할 수 있도록, 더 공감할 수 있도록.

남지우 칼럼니스트 jeewoo1119@gmail.com

◆ “왜 이런 걸 만드느냐”는 질문에 “연대”라고 답하다

지난 연말부터 이어지는 AI 관련 프로그램들을 보고 있자니 이제 싫은 좋든 AI가 내 삶 속으로 들어왔다는 게 실감이 났다. 하지만 AI와 실력을 겨루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었고 사무치게 그리운 사람이 있다 한들 VR 체험으로는 만나고 싶지 않았기에 그 또한 크게 공감이 가지 않았다. 물론 MBC <너를 만났다2 - 로망스>를 보는 내내 훌쩍이긴 했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눈물에 방점을 찍지 않는 제작진이 고마웠다.

 

그러나 3<너를 만났다2 - 용균이를 만났다>는 다르다. 보고 싶은 방송이 아닌 봐야 하는 방송이었다. 엉망이 되어 죽었으나 책임지는 사람은 없는 청년 김용균에게 그날 무슨 일이 닥쳤는지 확인하는 시간이었으니까. 공감의 차원을 넘어 이번엔 연대다. 김용균과 아무 인과관계가 없는 이들이 그의 발자취를 한 걸음 한 걸음 따라 걸었고 시청자는 간접 체험으로 그가 겪었을 시간과 마주했다. 내가 아무리 섬뜩하다 해도 그가 느꼈을 두려움과 고통에 비하면 구두 위의 먼지 정도이리라. 적어도 왜 이런 걸 만드느냐에 대한 답은 얻었지 싶다.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방송이 뭘 해야 하는지 어렴풋이나마 알게 된 것 같다.

 

단장의 아픔을 감내하고 계신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 님 얘기는 이 자리에선 하지 않으련다. 이번엔 백번 천 번 공감이 가다 못해 속이 쓰라릴 지경이어서. 나는 여전히 비겁하다. 자꾸 피하고 싶다. 흐린 아침이어서 떠오르는 해를 볼 순 없었지만 동쪽 하늘을 보며 다짐했다. 연대하리라.

정석희 칼럼니스트 soyow59@hanmail.net

[사진·영상=Mnet, SBS, MBC. 그래픽=이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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