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스’, 그저 그런 토크쇼로 전락할 것인가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연애가 뭐라고. 지난 수요일 밤은 공교롭게도 모태솔로 특집의 대단원을 마무리한 SBS <짝>과 연하남 공략법을 설파한 MBC <라디오스타> 모두 연애를 ‘공부’하게 했다. 방송을 지배한 남자 2호의 조개껍질 목걸이는 연애 반면교사 교본의 정점이었다. 그 덕분에 철벽녀로 등극한 여자 3호에게 가장 큰 감정이입이 되었다. 물론 방송 전반에 흘렀던 모태솔로들의 그 어쩔 줄 모르는 순수함은 <짝>이란 세속적 목적이 분명한 프로에서 느껴보지 못한 즐거움이었다.
반면 남자 2호가 시청자들의 손발을 앗아갈 때 안선영은 <라디오스타>에서 히트를 쳤다. 최근 그녀의 저서에서 밝힌 연애 지론의 몇 가지를 언급했는데, 그것은 일부 시청자, 특히 남성들에게 비수가 되어 꽂혔다. 정확하게 열등감을 건드린 것인데 최소 자신보다 연봉을 100만원은 더 벌어야 남자로 보인다는 발언이나 ‘멀쩡한 남자’에 대한 정의를 S대 공기업 출신이라고 언급하는 대목은 일종의 ‘선긋기’였기 때문이다. ‘너는 솔직히 안 그렇게 사냐?’라고 말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는 예전 <미녀들의 수다>에서 논란이 된 ‘루저’ 발언처럼 자신의 위치와 주제 파악을 누군가에 의해 당한 느낌이 들 때 오는 거부감이다. 안선영 스스로 방송에서 돈 벌 만큼 번다고 말한 만큼, 그녀의 기준 밑에 있을 거의 대다수의 남성 시청자들은 불쾌해질 수도 있는 내용인 것이다.
어쨌든, 솔직함과 속물적인 가치에 대해 논쟁하자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배금주의를 숭고하게 생각하진 않지만 MC 김구라처럼 돈이나 잇속에 대해 솔직한 입장을 털어놓는 걸 쿨하다고 생각하고, 또 다시 돈을 최고로 삼고 사는 자신이나 세상에 대해 마음 한편에서 씁쓸해 한다.
안선영의 이번 발언이 논란을 일으킨 것은 위선이냐 솔직함이냐의 차원 이전에 불특정 다수를 수용자로 삼는 공중파에서는 그다지 적절하지 못한 공감이 부족한 발언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솔직한 견해를 밝히는 매체가 수용자가 적극성을 띄어야 볼 수 있는 그녀의 히트 저서나 친분관계가 이미 맺어진 SNS, 혹은 지인들과 수다라면 무난하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내용이지만 그렇지 않은 더 많은 불특정 대중을 상대로 한 매체에서 말할 때는 주의했어야 했다.
예를 들어, 어느 남자 연예인이 출연해 솔직히 말하는데 나는 적어도 최소한 키와 몸매 수치가 이 정도는 되어야 여자로 보인다고 말하면서 그런 여자 만나는 법을 알려주마,라고 하면 방법의 실용성에 대한 궁금증 이전에 재수 없고 거부감이 느껴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논란에 묻혀버린 게 있다. 이번 방송은 <라스>의 시청자라면 짚어봐야 할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최근 <라디오 스타>는 <라스>만의 정서를 담은 기획이나 진행을 하지 못하고 있다. 연하남을 만나는 스킬에 대해 물어보고, 몇 명이나 만나봤는지 질문하고 그 답에 해당하는 에피소드로 풀어가는 토크쇼는 <화신>이나 <세바퀴> 등의 방식이지 물어뜯고 주고받으면서 수다판이 벌어지는 <라스>만의 화법이 아니다. 안선영에게 연애 멘토 강의를 제대로 듣고 싶으면 하루 늦춰서 질문과 경청으로 이뤄진 <무릎팍도사>에서 섭외했어야 했다. <라스>가 게스트의 매력을 살려주는 건 이야기를 잘 들어줘서가 아니라 낯선 상황에 빠트려 익히 보지 못한 색다른 매력을 보여주는 데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주 <라스> 시청자들이 주목해야 할 것은 안선영의 지엽적인 발언들이 아니라 호흡이 사라지고 질문만 남은 토크쇼의 형태다. 연하남과 연애 잘하는 연상녀를 섭외했다면 MC들이 연하 킬러라 칭하는 게스트에게 이야기를 듣는 게 아니라 공략하고 MC들끼리 또 주거니 받거니 해야 하는데, 케이블 채널에 등장하는 픽업아티스트들의 연애론을 듣는 수준에서 마무리 되고 말았다. 실제로 MC진에서 만들어낸 웃음은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에>에 집착하는 윤종신과 그것을 트집 잡는 김구라의 타박 정도 외에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공중파에서 가장 독특한 토크쇼로 자리매김한 <라스>의 정수는 패널에게 질문하고 그 이야기를 듣는 토크쇼의 틀을 벗어나는 것에서 출발한다. 김구라는 안선영에게 ‘세상 다 똑같은 거 아닌가요’라고 했지만 <라스>는 고유한 정서가 없다면 산만할 뿐인 그저 그런 토크쇼가 되고 만다. <라스>이기에 기대하는 정서, <라스>이기에 용인되는 지점이 있다. 안선영 발언 논란을 넘어 한번쯤 <라스>의 브랜드에 대한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마치 아카펠라팀 같았던 MC진의 화음이 다시 크게 울려 퍼지길 기대하면서 말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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