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할배’, ‘나영석 월드’의 전초기지 될까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꽃보다 할배>가 우리 곁에 찾아온 지 이제 근 한 달이 됐다. 그 동안 네 분의 할아버지와 이서진, 그리고 나영석 PD는 예능 선수 한 명 없이 파란을 일으켰다. 케이블 채널의 한계를 뛰어넘는 시청률, 금요일 밤 수많은 프로그램을 잠재우는 이슈메이킹, 매출 2억 원을 돌파했다는 다시보기 서비스의 활황 등 각종 수치와 분위기로 느껴지는 인기와 반응은 엄청나다. 재미 여부를 놓고 갑론을박은커녕 불만의 목소리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이서진은 호감 캐릭터로,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네 명의 선생님 배우들은 각기 다른 캐릭터를 어필하며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이에 부진한 <1박 2일>의 반사효과까지 더해 나영석 PD의 위상은 더욱 높아졌다.

하지만 <꽃보다 할배>를 평가하기는 아직 이르다. 발상의 전환은 신선하지만 구조자체는 획기적으로 새로운 형식은 아니며, 준비한 재미요소와 볼거리를 초반부터 모두 오픈하고 아낌없이 쏟아 붓기 때문에 또 한 달이 지나고, 그 다음 시즌이 찾아왔을 때도 이와 같은 반응을 유지할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지금 쏟아지는 환호와 몇 가지 염려를 넘어서서 <꽃할배>를 흥미롭게 지켜볼 지점은 따로 있다. 제작진의 ‘작가주의적 평가’가 그것이다. 어떤 영화의 감독이 누구냐에 따라 영화의 성격과 기대가 엇갈리는 것처럼 이제 예능도 그 연출자의 브랜드가 중요해진 시대라는 걸 <꽃할배>는 상기시킨다.

사실 그전까지 예능은 출연진의 역량에 크게 의존했다. 기본적으로 유재석이나 강호동급 정도 되면 어떤 프로그램이든 그들의 아우라를 이고 갔고, 노홍철이나 박명수처럼 잘 나가는 몇 명의 예능 선수들이 여러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웃음을 책임졌다. 허나 <꽃할배>는 제작진의 역량이 출연진의 역량과 영향력보다 중요시되는 판세의 변화를 보여준다. 제작진이 두드러지는 예능, 작가주의 예능의 시대를 알리는 듯하다.



요즘 관찰형 예능, 다큐의 형식을 빌린 예능이 대세가 되면서 리얼 버라이어티를 넘어선 리얼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그런데 리얼의 강조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더 중요한 건 제작진의 업무 영역인 스토리다. <꽃보다 할배>도 그저 카메라만 따라갈 뿐 모든 동선과 일정은 이서진이 네 분의 선생님의 사정에 맞춰 짰다고 한다. 제작진은 촬영 후 그 스토리를 이끌어갈 캐릭터를 발견하고 부각시키고, 볼거리를 조각한다. 리얼은 시청자들이 그 이야기에 빠져들기 위한 전제다. <일밤>의 <아빠 어디가>와 <진짜 사나이>가 그렇듯 그 스토리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 기본적인 신뢰인 것이다.

<꽃보다 할배>는 편집과정을 거치면서 촬영 때와 전혀 다른 결과물로 탈바꿈한다. 일단 엄청난 분량을 있는 그대로 찍은 다음, 역사는 편집실에서 이뤄진다. 그 수많은 상황과 장면 중에 어떤 것을 건져내서 엮을지 사후 판단한다. 상황은 리얼이되 의도와 기획은 꽉 잡혀 있는 리얼 버라이어티와도 다르고, 제작진이 울타리를 만들어놓은 <인간의 조건><정글의 법칙>과도 다르다. <꽃보다 할배>나 <진짜 사나이>는 다큐 형식을 차용한 여타 예능보다 한 발 더 깊게 나아간 것이다.



그 작업 과정은 마치 수많은 음반 소스를 찾아서 그것을 오리고 이어 붙여서 새로운 음악을 만드는 DJ와 같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어떤 장면을 고르는 선구안과 드라마를 만드는 스토리텔링 능력이다. 제작진은 낱장으로 분리된 만화 컷들을 이리 저리 조합해 완성도 높은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서진의 고생담을 부각해서 시청자들이 이입할 수 있도록 만들고, 독불장군 이순재와 막내 백일섭의 갈등을 만들어서 긴장감을 유지한다. 보기와 다르게 속정 깊은 박근형에게 호감을 느끼게 하고 사람 좋은 구야형 신구가 이서진이 제작진과 돈 문제로 부딪힐 때마다 돕기 위해 정색하는 모습을 껄렁하게 보여주어 웃음을 만든다. 여기서 제작진의 의도가 100% 투영된 자막은 무성영화 시대의 변사처럼 웃음의 장치이자, 스토리의 흐름을 돕는 안내자다. 거의 편집된 영상을 보면서 대사와 내레이션, 음향 효과 등을 녹음하는 후시녹음 수준의 작업이다. 이는 <진짜 사나이><아빠 어디가>와 같은 방식이다.

결코 쉽지 않다. 다른 예능도 물론 힘들겠지만 게임을 만들고 상황을 주는 다른 예능과 달리 출연진에게 웃음을 기대하기 힘들다. 의외성이 중시되고, 매뉴얼이 없어 일단 해봐야 안다.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을 언급했지만 소스를 확보하는 것도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다. 관찰형 예능의 가장 큰 숙제는 지속가능한 소스의 확보다. <정글의 법칙> 히말라야 편에서처럼 기본적으로 볼거리가 다양하지 못하면 스토리를 엮는 데 한계가 올 수밖에 없다. 또 일상을 다루는 <인간의 조건>이나 <나 혼자 산다>처럼 처음엔 신선하지만 계속된 노출은 반복과 식상함을 가져오는 경우도 생긴다. 따라서 멤버 교체든 새로운 도전이든 신선함이 가시기 전에 계속 변주를 준비해야 하는 것도 제작진의 중요한 책무다.



<꽃보다 할배>는 이제 4회 방영됐다. 지금까지는 새로운 캐릭터를 만나는 재미, 기존 이미지와 다른 의외성에서 호감과 재미로 폭발할 수 있었다. 이제 이런 것들에 익숙해질 시기다. 반가움의 감정보다 좀 더 잔잔한 감정을 주고받을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사람들의 관심은 제대로 끌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에 따라 성패가 나뉘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꽃보다 할배>는 예능이지만 그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연속극을 보는 것 같다.

관찰형 예능일수록 이미 잘 알려진 예능 선수들이 등장하지 않는다. 스토리를 써내려가는 제작진 입장에서는 다양한 가능성과 신선한 스토리를 위해 백지에서 시작하는 게 편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체와 중심은 어디에 있는지 명확하게 드러난다. 이제 예능도 드라마처럼 스토리를 제작진이 만드는 시대다. 제작진이 얼굴이 아닌 존재감을 드러내야 하는 시대가 당도했다. 이 분야의 최고수로 이미 채널과 방송국을 넘어 하나의 브랜드가 된 나영석 PD가 기존 한계를 어떻게 뛰어넘어서 자신만의 월드를 확장해갈지 지켜보는 것. <꽃보다 할배>를 지켜봐야 할 이유이자 기대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CJ E&M,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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