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두가 망할 거라던 ‘너목들’의 성공 요인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드라마 공감] SBS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이미 2년 전부터 방송사에 돌아다니던 작품이었다. 드라마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이 작품에 대한 방송사의 입장은 대체로 회의적이었다고 한다. 이유는 너무 많은 장르가 한 드라마 속에 들어있다는 것. 시청자들에게 혼동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심지어 모 방송사 드라마 제작자는 “작품이 조잡하다”는 표현까지 했다고 한다.
당시 분위기를 보면 이러한 반응은 그다지 놀라운 것도 아니었다. 즉 당시만 해도 복합장르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었고, 심지어 장르 드라마들조차 대중적인 인기를 끌지 못하던 시기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2년이 흘렀고, 그 사이에 드라마에 대한 대중들의 취향도 조금씩 변화했다. 작년부터 본격화된 장르 간의 실험은 사극과 판타지, 의학을 접목하는 시도로 이어졌고 올해는 <나인> 같은 작품을 통해 판타지와 멜로의 성공적인 실험을 보여주었다.
<너목들>은 이 새로운 대중들의 기호에 의해 비로소 빛을 볼 수 있게 된 작품이다. 이 드라마의 장르 섭렵은 법정드라마, 스릴러, 로맨틱 코미디, 멜로, 가족드라마, 청춘드라마, 형사물 그리고 판타지에 이르기까지 너무나 다양하다. 빈부의 격차와 정의의 문제를 들고 뛰어든 시작은 사회극이었지만, 조금 지나자 수하(이종석)와 혜성(이보영)이 엮어가는 연상연하 커플의 청춘 멜로와 로맨틱 코미디가 이어졌다.
드라마가 조금 가벼운 멜로로 흘러갈 때 갑자기 느닷없는 혜성 모의 살해 장면으로 국면이 전환되었다. 법정드라마가 전개되었고 아이러니하게도 국선변호사 차관우(윤상현)에 의해 무죄가 되어 방면된 민준국(정웅인)의 잘려진 손이 발견되면서 이야기는 다시 스릴러로 돌변했다. 이즈음에서는 이제 장르의 변환에 시청자들도 어느 정도 익숙해졌고 오히려 그것을 즐기기 시작했다. 장르가 바뀔 때마다 어디로 튈 지 알 수 없는 이야기 전개에 흥미를 느끼게 됐던 것.

하지만 <너목들>이 단순히 복합장르의 시대를 만났기 때문에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복합장르란 여러 장르가 그저 묶인다고 해서 성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탁월한 국면전환을 통해 놀라운 장르의 봉합술을 보여주었다. 여기에는 작가와 연출자의 공이 가장 크겠지만 그 역할을 해내는 연기자들의 몫도 빼놓을 수 없다.
사실 이것은 캐스팅 단계에서부터 정교한 선택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내 딸 서영이>로 국민 딸로 등극했던 이보영은 특유의 가족드라마적인 느낌에 지금껏 잘 시도하지 않았던 상큼 발랄한 로맨틱 코미디의 여주인공 역할까지 소화해냈다. <학교 2013>으로 주목됐던 청춘의 아이콘 이종석은 특유의 청춘드라마적인 느낌 위에 보다 성숙한 멜로 연기와 심지어 액션 연기까지 선보이며 그 다양한 가능성을 역할을 통해 입증해냈다.
반듯한 이미지에 속 깊은 내면 연기를 보여준 윤상현이나 드라마에 스릴러적 긴장감을 부여한 정웅인, 그리고 이 드라마를 통해 확실한 존재감을 만들어낸 이다희는 물론이고, 어머니 역할의 김해숙, 권력형 악역의 정동환, 푸근하고 인간적인 상사역의 윤주상, 강렬한 인상 속에 페이소스까지 보여주는 김병옥,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낸 김광규까지 그 인물 하나하나가 다채로운 장르적 특징들을 소화해내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다양한 장르를 섭렵할 수 있는 좋은 스토리에 그 장르를 소화해내는 연출, 게다가 훌륭한 연기자들의 연기가 얹어지면서 결국 잘 균형 잡힌 복합장르가 탄생했던 것. 여기에 무엇보다 빼놓을 수 없는 성공요인이 이 모든 것이 받아들여질 수 있게 변화한 대중들의 취향이다. 이처럼 한 작품의 성공은 작가, 감독, 배우는 물론이고 대중들까지 함께 공조하기 마련이다. 한때는 모두가 망할 거라고 말했던 <너의 목소리가 들려>. 하지만 모두가 공조함으로써 복합장르의 시대를 활짝 열어 놓은 이 작품이 시사하는 바는 그래서 크다. 새로운 시도는 늘 어떤 하나의 벽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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