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수분’, ‘무릎팍 도사’ 제치고 자리 잡으려면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강호동이 복귀하면서 야심차게 목요일에 도전한 <무릎팍도사>는 끝내 반란을 일으키지 못했다. 시사 프로그램들이 주로 편성되어 예능 무주공산이었던 목요일 밤에 KBS <해피투게더>가 무혈입성한 후, 꽤 오랜 기간 평화로이 왕좌를 차지했었다. 그러다 SBS의 <자기야>가 자리를 잡고, <무릎팍 도사>가 가세하면서 목요일 밤은 예능 격전지로 돌변했다. 그러나 굴러온 돌이 가장 먼저 굴러나갔다. 결국 가장 늦게 전투에 합류한 MBC가 가장 먼저 후퇴를 했다. 강호동이란 카드를 접어두고서 일보 후퇴 후 전열을 가다듬기로 한 것이다.
MBC가 이번에 새롭게 목요일 전투에 올린 <화수분>은 사실 지난 3월말 파일럿으로 방영된 적이 있었다. 당시 주말 예능을 목표로 기획됐던 이 쇼는 이수근, 정형돈, 박지윤이 진행을 맡고 다양한 세대의 게스트들이 출연해 세대 공감을 주제로 <세바퀴>식 토크쇼와 <테마게임>식 사연재구성 콩트를 결합해 만든 일종의 스토리쇼였다. 윤문식 등의 새마을 세대, 데크콘과 안문숙 등의 X세대, 정진운과 민아 등의 LTE세대로 팀을 나눈 후, 세대 별 추억과 공감대를 자아낼 재밌는 이야기들을 에피소드로 ‘토크’하는 게 아니라 따로 제작한 ‘콩트’를 본 뒤 세대별 공감지수를 획득하는 집단 토크쇼 형식이었다. 허나 재밌는 이야기보따리라는 포부에 걸맞지 않게 라디오 사연 수준을 영상화한 재미에 머물고 말았고, 세대 공감도 <비타민>스러운 덕담으로 마무리됐다.
그리고 5개월이 지난 1일 밤에 선보인 두 번째 파일럿 방송에서는 사연 재연 콩트라는 스토리쇼의 정체성은 그대로 가져가돼, MC진을 전원 교체하고 세대 공감의 콘셉트와 함께 포맷도 집단 토크쇼에서 뉴스 형식으로 바꿨다. 첫 방송이 시청자들에게서 라디오 사연을 받듯이 이야기꺼리를 얻었다면, 이번에는 시청자들이 몰랐던 비하인드 스토리로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MC진들의 이야기가 첫 출발이었다. 유이가 몸담았던 전설이자 비운의 여자 아이돌그룹 ‘오소녀’ 스토리, 정준하의 러브스토리, 서경석의 실제 군 생활담 등 세 가지 이야기를 시청자 앞에 선보였다.

<테마게임>시절의 사연을 재구성하는 콩트 예능은, 현재 방영 중인 예능 프로그램들 중 확실히 비교 대상이 없는 색다른 포맷이기는 하다. 그러나 <응답하라 1997>처럼 잘 고증된 정서가 바탕이 되고 <푸른거탑>처럼 온갖 것들을 범벅 해 패러디하는 시트콤이 인기를 얻고, 다큐 형식을 빌려 예능을 찍는 시대에, 예전 사연 재구성 콩트를 내세우면서 연기 톤이나 사연의 소재나 그 사연을 풀어내는 연출 방식은
더 큰 문제는 이야기에 있다. 콩트라는 포맷은 둘째 치고, 이 프로그램이 표방하고 있는 것은 스토리쇼다. 궁극적으로 소재 확보 차원에서 시청자들의 사연을 공모할 것으로 보이지만, 이번 회는 연예계의 비하인드 스토리로 갔다. 재밌는 사연을 TV 예능화해서 다른 시청자들과 공유하고 공감하고자하는 포부와 달리, 이 프로그램이 다루고 있는 연예인들의 이야기가 과연 리얼을 넘어 일상을 카메라 앞에 불러오길 원하는 요즘 시청자들이 귀를 기울일 만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따른다. 물론 앞으로는 시청자들 사연으로 구성하겠지만 단순히 재밌는 이야기를 극화한다기보다 무슨 이야기를 선보일지 조금 더 구체적이 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 방송이 새로운 기획이라고 하지만 신선하지 않게 다가온 것은 바로 여기에 있다. <화수분>은 다른 방송에서 아무도 안 하고 있는 것일 뿐 새로운 것이 아니다. 복고는 그냥 돌아오는 게 아니다. 주변의 맥락과 맞닿아 있는 시대정신과 현실에 달을 딛고 재해석하는 리폼의 기술이 필요하다. <힐링캠프>처럼 무슨 이야기를 왜 들려줄지나 <인간의 조건>처럼 어떤 형식으로 새롭게 담아낼지에 대해서 아직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화수분>의 요체는 어쨌든 이제 예능의 역사 속으로 사라진 상황을 재구성한 콩트라는 형식이 가진 힘을 믿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대에 맞게 퀄리티를 드라마 수준 이상으로 올린다든가, <안녕하세요>를 능가하는 듣고 싶은 이야기를 전해줘야 그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파일럿만 2회째라 기대가 컸지만 2%대의 낮은 시청률을 나타냄으로써 <무릎팍 도사> 대체재로 바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인지 물음표는 남아 있다. 물론 의의는 있다. 아무도 도전하지 않는 형식이고 분명 큰 사랑을 받았던 방식이기에 기대와 호기심은 여전히 크다. 그러니 진정 마르지 않는 화수분처럼 다음 번 기회를 잡게 된다면 이번에는 더 큰 신선함을 선사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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