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돌아온 ‘나는 가수다’, 단 한가지 아쉬운 점
[엔터미디어=최명희의 대거리] 명불허전이라는 말이 절로 튀어 나왔다. 90분 동안의 방송 내내 한 일이라고는 조금 더, 조금 더, 조금 더... 오디오 볼륨을 키운 게 고작이다. 그리고 가시지 않은 감동과 전율. 한 달여의 충전을 마치고 한층 업그레이드한 모습으로 돌아와 방송을 재개한 MBC ‘우리들의 일밤-나는 가수다’ 얘기다.
새롭게 ‘나가수’를 맡게 된 신정수 PD는 지난달 29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신들의 공연을 보는 것 같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아울러 “음악감독을 영입한 것에 대해 내가 김영희 PD보다 낫다”고 웃으며 말했다. 사실 프로그램을 책임지고 있는 PD가 자신이 연출한 프로그램을 놓고 기자들 앞에서 ‘신들의 공연’ 운운한 것에 대해서는 쉽게 동의가 가지 않았다. 워낙 국민적 관심이 높은 프로그램인 데다 김영희 PD의 후임을 맡아 부담감이 크기에 홍보를 위해 다소 무리한 발언을 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하지만 이 같은 생각이 달라지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1일 방송된 ‘나가수’는 음향과 편집 부분에서 눈에 띄게 개선된 모습을 보였다. 무엇보다 김건모, 백지영, 정엽의 자리에 새로 합류한 임재범, BMK, 김연우라는 걸출한 가수들의 무대와 이소라, 박정현, 김범수, 윤도현 등 기존 가수들의 여유있는 무대는 진한 감동을 선사하며 ‘신들의 공연’이라는 수사가 전혀 아깝지 않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한 달 동안 제대로 정비한 점이 향후 가수들간의 본격적인 경쟁에 더욱 기대감을 갖게 만들었다. 훌륭한 가수들을 섭외했고, 뛰어난 음악감독을 영입한 효과가 첫 방송을 통해 그대로 입증됐다. ‘1인 3표제’ 등 변경된 규칙도 무리없이 적용될 것을 예측된다. 이 정도면 ‘나가수’의 산파인 김영희 PD의 공백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아마 멕시코에서 재충전의 시간을 갖고 있는 김 PD도 크게 만족하지 않았을까 싶다.
‘나가수’의 완벽한 부활에 거슬리는 단 한가지는 ‘의외’라는 단어다. 굳이 무편집 동영상이 공개되며 간주중 인터뷰의 문제점이 제거된 무한 감동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단어 하나로 사소한 꼬투리를 잡을 생각은 없다. 하지만 ‘나가수’가 갖고 있는 태생적인 특성상 한번쯤 짚고 넘어갈 필요성도 상존한다는 판단이다.
‘나가수’ 방송 재개에서 여러 가지 개선된 점 중 하나가 결과발표 방식의 변화다. 최소한의 스탭만 남은 상황에서 어정쩡하게 가수와 매니저들 14명이 무대 위에서 일렬 횡대로 서 있다가 담당 PD의 결과발표를 듣는 상황은 숱한 지적을 받았다. 이를 의식한 듯 가수들은 의자에 앉게 했고 그 뒤에 매니저들이 서서 발표를 들었다. 발표도 담당 PD가 아니라 자문위원장인 장기호 교수가 맡았다. 전문MC 영입을 시도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본다.
문제는 장기호 교수의 결과 발표에서 나타났다. 장 교수는 2~6위까지 순위를 차례로 발표한 뒤 1위를 발표하기 앞서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고 했다. 도대체 무엇이 의외였을까. 결과는 모두가 아는대로 ‘왕의 귀환’ 임재범이 차지했다. 무한감동으로 청중평가단의 눈물을 이끌어낸 임재범이 1등한 게 의외였나? 아니라면 지난번 1등한 김범수가 꼴찌를 한 게 의외였나. 그건 말이 되지 않는다. 이미 2~6위를 발표했기 때문에 임재범이 1등이면 김범수는 당연히 7위인건 초등학생도 알 일인데 의외는 아니지 않은가.

이도저도 아니면 장 교수는 김범수를 1등으로 판단하고 있었는데 봉투를 열어보니 임재범이 1등이어서 의외라고 한 것일까. 하지만 신 PD와 장 교수가 봉투를 주고 받는 과정은 그야 말로 보여주기 위한 과정에 불과하다. 방송 중 이미 ‘1인 3표제’ 등 공정성 확보를 위해 자문위원단이 참여한 가운데 검표를 진행했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당연히 장 교수는 결과도 이미 알고 있었을 터. 뭐가 의외였을까. 만약 임재범과 김범수가 공동 1등을 한 정도의 상황이었다면 정말 의외라는 단어가 적절했을 것이다.
논리적 추론을 떠나서 이미 ‘나가수’ 신들의 경연에 참가하고 있는 가수들은 모두 결과에 승복할 준비가 되어 있다. 한 차례 큰 파고를 넘으면서도 다시 참여한 그들 아닌가. 또 청중평가단이나 시청자들도 그 순위가 가창력의 높고 낮음이나 가수의 질적평가가 아니라는 것에 동의가 되어 있는 상태이다. 이런 상황에서 결과발표자가 ‘의외’ 운운하는 것은 출연 가수들이나 시청자에 대해 대단한 무례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이 사소한 ‘의외’라는 단어 하나에 지면을 할애해서 지적하는 데에는 다른 이유도 있다. 먼저 ‘의외’라는 단어는 ‘나는 가수다’에 큰 빚을 지고 있다. ‘시청자들과의 약속을 무참히 짓밟았다’라는 의견과 ‘예능이 대한민국 공정성까지 책임져야 하나’라는 반문이 오가며 ‘나가수’가 한 달간 쉴 수 밖에 없었던 상황에는 ‘재도전’이라는 키워드가 존재한다. ‘재도전’ 논란은 바로 지난 3월 20일 방송에서 김건모가 탈락자로 결정되었을 때 김영희 PD가 결과 발표에 앞서 “정말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는 말을 반복하며 촉발됐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아마 당시에도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의외’였다면 사태가 그렇게까지 확산되지는 않았을 터. 발표자에게만 ‘의외’인 상황은 좋지 않다는 걸 아주 큰 비용을 치르며 경험하지 않았던가.
아울러 지난 1일 방송 말미에 나온 다음주 예고편에서도 ‘의외’라는 단어가 몇 번 사용되는 장면이 포착됐다. 거슬릴 수 밖에 없다. 정말 의외가 아니라면 편집에 반영해 주길 바란다. 김영희 PD에 이어 장기호 교수까지 ‘의외’를 남발하는 걸 보면, 그들의 선택이 아니라 채널이 돌아가는 걸 잠시라도 막아보려는 담당 작가의 취향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어찌됐건 ‘의외’라는 단어를 남용해서 ‘나가수’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의외의 순간은 인간들이 부대끼는 상황일 뿐 신들의 영역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최명희 기자 enter@entermedia.co.kr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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