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PD는 예능의 다음 패러다임이다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무한도전> ‘예능캠프’는 미래를 위한 훈련이라기보다 황금기를 추억으로 간직하는 의식에 가까웠다. 존박과 뮤지 등 예능계 샛별들을 게스트로 초대해 <동거동락><가족 오락관><위험한 초대> ‘타짱’ 등 2000년대 초중반 히트했던 예능의 정수들을 속성 체험하고 이를 통해 예능의 세계에 적응하는 방법을 알려준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시효는 끝났다. 영광스런 한때를 빛바래고 푸석해진 벽에 걸어둔 어느 복싱 체육관에서 벌어진 마지막 시합을 지켜보는 느낌이랄까. 웃음 한편에서 저물어가는 한 시대를 기리는 마지막 잔치에 초대된 듯한 아련한 느낌이 들었다.

강호동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무릎팍 도사>가 폐지되면서 예능 톱MC인 강호동의 위기론이 거론되고 있다. 스포츠를 예능에 접목한 <우리동네 예체능>에서도 그의 비중은 과거 명성에 비하면 매우 점잖은 편이다. 이런 연유를 두고 일부에서는 공백과 적응의 문제를 탓한다. 하지만 강호동은 분명 발전해서 돌아왔다. 에너지는 여전한 데다 분위기를 아우르는 포용력을 갖추었다. 자세히 살펴보면 그는 복귀 후 부적응이 아니라 활동중단 기간 이전부터 원만하게 내리막을 내려오는 중이었다.

어쨌든 근 10년간 지속된 유재석과 강호동의 쌍두마차 시대에 균열이 일고 있다.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유재석과 강호동의 시대는 집단MC체제라는 예능 선수들의 전성기였다. 그런데 예능계를 점령한 MBC <일밤>의 ‘아빠 어디가’와 ‘진짜 사나이’는 신흥 쌍두마차로 급부상했고, 이 두 프로그램을 포함해 대세로 자리매김한 관찰형 예능에는 <나 혼자 산다>의 노홍철 정도를 제외하면 기존의 예능 선수는 아무도 등장하지 않는다.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 예능 선수가 보이지 않는 것은 지난 한 시대를 풍미한 ‘예능 선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한 가지 징후다. 신동엽이나 김구라처럼 프로그램의 색깔을 스스로 결정짓는 분야와 브랜드를 갖춘 선수들은 그나마 낫지만 그렇지 않은 선수들은 서울에서 전세 매물을 찾기 힘든 사람들이 수도권으로 눈을 돌리듯 케이블과 종편으로 시야를 더욱 넓혀야 할 때가 오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예능 패러다임의 변화는 세대교체가 아니라 스타 파워에서 기획과 콘셉트를 담당하는 연출자의 브랜드 파워로 중심이 이동하면서 일어나고 있다. 이는 채널의 다양화와 같은 플랫폼의 확장과 맞물린다. 종편채널 편성과 케이블이 활성화되면서 연출자들은 자신의 역량과 개성을 뚜렷하게 드러낼 수 있는 다양한 시도를 할 기회를 얻었다. 공중파와 달리 타깃을 명확히 하다 보니 자유도는 더욱 높아졌다. 그 속에서 엠넷의 <슈퍼스타K>부터 JTBC <썰전><히든싱어>, tvN <더 지니어스:게임의 법칙><꽃보다 할배> 등등 기존 성공 모델이 없던 프로그램들이 자신만의 오리지널티를 통해 인기를 누리고 됐다.



이런 흐름 속에서 기획과 콘셉트를 관장하는 연출자가 프로그램의 전면에 등장했다. 때로는 간판이 되었다. 리얼 버라이어티를 넘어선 리얼이 요구되고, 방송의 문턱이 일상까지 내려와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무대’ 자체의 앞뒤가 없어졌다. 연출자들은 카메라 앞으로 자리했다. 영화감독과 마찬가지로 전작의 흥행성이 중요해졌고, 그 자체의 브랜드가 프로그램의 상품성에 직결됐다.

<개그콘서트>의 서수민 PD는 방송 넘어 멘토로도 활약했고, <안녕하세요>에서 <우리동네 예체능>까지 신선한 기획을 연이어 내놓으면서 호평을 받은 이예지 PD와 <남자의 자격><응답하라 1997>의 신원호 PD는 시청자들과 정서적 교감을 이뤄내는 데 탁월한 성과를 보이면서 인지도를 얻었다. <정글의 법칙> 이지원 PD는 다소 과한 개입을 하는 편이지만 어쨌든 방송의 한 축이 제작진임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특히 편집 과정 등에서 연출자의 개입이 클 수밖에 없는 관찰형 예능이 대두되는 흐름 속에서 <일밤>의 승승장구는 연출자의 능력을 더욱 부각시킨 기폭제가 됐다. 물론 쌀집 아저씨 김영희 PD나 여운혁 PD처럼 스타예능PD는 예전부터 존재했었다. 그러나 업계를 넘어 대중들에게 직접적으로 어필하고, 더 나아가 PD들이 전면에 나서서 예능 판도를 흔든 사례는 없었다.



예능 PD들은 자막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해서 리얼 버라이어티 이후 화면 안에 적극적으로 들어오더니 이제는 스토리와 캐릭터를 만드는 위치에 올랐다. 긴 시간의 촬영분량을 어떻게 유기적으로 오려붙이고 무엇을 부각할지 선택하는 것은 결국 글이냐 영상이냐의 차이일 뿐 드라마 작가와 같이 스토리텔러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출연진들에게 의외성을 기대할 뿐 기대지 않는다. 딱히 비싸고 이미지가 굳어져 있는 예능 선수들을 쓰기보다 백지에서 시작할 수 있는 예능 밖의 새로운 인물을 원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유재석 강호동 쌍두마차 시대는 이제 애드립과 진행이 아니라 기획과 스토리의 싸움이 되었다. 예능의 포맷이 콩트, 토크쇼, 버라이어티를 벗어나 다큐와 드라마까지 확장되면서 가져온 필연적인 결과다. <꽃보다 할배>의 성공은 그와 전성기를 함께 구가한 강호동의 현주소와 대비되면서 더욱 더 상징적으로 다가온다. 주목할 것은 선생님급 배우들을 캐스팅한 것이 아니라, 나영석이란 브랜드에 시청자들이 갖는 기대와 반응이다. 그는 기존의 무대를 버리고 새로운 채널에서 ‘연출자의 브랜드’로 성공한 첫 케이스다. 시청자들은 이미 이런 흐름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 예로 <무한도전>에 대한 모든 평가는 스타PD의 시대를 활짝 열고, 제작진이 방송의 한 축이라는 것을 온 국민에게 알려준 김태호 PD에 대한 옹호나 불만으로 귀결된다.

예능 패러다임이 어떻게 변하든 예능 선수는 언제나 비싼 몸이었다. 그런데 이제 조금 색다른 세상이 오고 있다. 가을 개편을 앞두고 발표한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의 공통점은 기존의 유명 MC들을 내세우는 프로그램이 없다는 것과 현재 콘셉트와 기획으로 승부를 본 예능들과 유사한 면면들이 보인다는 것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연출자가 브랜드이자 프로그램의 간판이며, 마케팅의 제1 수단이 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CJ 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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