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미디어=정다훈의 문화스코어] 뮤지컬 <블랙메리포핀스>(극작 작곡 연출 서윤미, 편곡·음악감독 김은영, 프로듀서 김수로)는 어른들을 위한 잔혹 동화이자 ‘눈물 꽃’을 선사하는 심리추리스릴러다.

2012년 초 대학로에서 개막해 뮤지컬 마니아층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던 <블랙메리포핀스>는 영국 작가 파멜라 린던 트래버스가 쓴 동화 「메리포핀스」의 이야기를 비틀어 색다른 재미를 주는 작품. <메리포핀스>는 1964년 쥴리 앤드류스 주연으로 영화로 만들어진 것에 이어 2004년 캐머런 매킨토시가 뮤지컬로 제작 해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첫 선을 보인 바 있다.

뮤지컬은 동화 속 가정교사이자 유모인 ‘메리포핀스’를 극 안으로 끌고 왔다. 하지만 아이들 입 안 가득 달콤한 솜사탕을 넣어주며 행복해지는 주문을 알려주던 ‘웃음꽃’이 아닌 ‘눈물꽃’을 품고 있는 유모다. 작품은 제목 그대로 ‘메리포핀스’ 위에 덧입혀진 ‘블랙’(어두운) 기억을 찾아간다. ‘바람이 바뀌면 떠나야지’라고 말했던 동화 속 메리처럼 블랙메리 역시 안개 속에 감춰진 어느 수요일과 함께 어디론가 사라진다.

작품은 1926년 나치 치하의 독일의 저명한 심리학자인 그란첸 슈워츠 박사의 대저택에서 화재가 발생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화재로 인해 뿔뿔이 흩어진 입양된 4남매가 12년 뒤 다시 모여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4남매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기억을 더듬는다. 무의식 속 트라우마를 파헤치는 과정이 오브제와도 같은 배우들의 연기와 조도를 달리한 조명과 어우러져 흡인력이 높다. 회전무대 위에 놓인 뒤집혀진 식탁, 그리고 식탁 모서리에 놓인 의자 4개 위를 맴도는 아이들은 되풀이되는 잊어버린 기억의 미로 속에 서 있다.

시작 전 커튼 위 그림자로 표현되는 이야기로 작품의 이미지를 보다 명확히 한 점, 언뜻 수화 동작처럼 보이는 안무 하나 하나에도 숨겨진 이야기가 있는 점, 진실을 알기 두려워하는 아이들의 내면을 16곡의 넘버 속에 녹여낸 점이 인상적이다. 하나하나 사건을 추리해 나가는 쾌감보다는 인물들의 심리에 초점을 맞춰 매번 볼 때마다 다른 기분을 갖게 한 점도 이 작품의 쾌거다.



지난해 소극장에 이어 중극장으로 옮겨 온 이번 작품은 여러 겹의 프레임으로 된 무대가 훨씬 더 눈에 잘 들어온다. 명망 있는 변호사로 완벽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알코올중독자인 첫째 한스, 반듯하지만 쉽게 중심을 잃고 흔들리는 내면적 아픔을 가진 화가 헤르만, 침묵 속에 숨겨둔 아픔을 가지고 있는 음악교사 안나, 공황장애와 언어장애를 동시에 앓고 있는 막내 요나스 그리고 네 아이들을 지극히 사랑하고 아끼는 듯 보이지만 어두운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보모의 내면을 한 꺼풀씩 벗겨보고 싶게 만드는 장치이다. 다만 극장이 넓어지고 음악에 편곡을 가한 결과 작품 특유의 서늘한 기운이 좀 더 약해진 감은 없지 않아 있었다.

관객들의 트라우마에 따라 다섯 명의 등장인물 중 더 끌리는 기억과 아픔이 있다는 점이 <블랙메리포핀스>가 계속 사랑받는 요인이다. 웃음꽃보다는 ‘눈물꽃’이 더 오래 오래 빛나지 않은가.

작품의 핵심 인물인 한스 역에 배우 김재범·이경수·박한근이 트리플 캐스팅 됐다. 둘째 헤르만 역에 김성일· 윤소호, 안나 역에 문진아·이하나, 막내 요나스 역에 김도빈·최성원이 캐스팅됐다. 네 아이의 유모이자 비밀의 열쇠를 쥐고 있는 메리 슈미츠 역은 홍륜희· 최정화가 맡는다. 이경수 한스의 시원한 성량, 김성일 헤르만의 디테일한 심리 표현, 문진아 안나의 처연함, 홍륜희 메리의 눈물꽃 이 작품을 빛나게 했다. 더블 캐스팅 된 배우들의 숨겨진 매력도 궁금해진다.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아시아브릿즈컨텐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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