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의 법칙’, 어떻게 잃어버린 로망을 되찾았나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꿈같은 카리브해의 푸른 에메랄드빛 바다가 펼쳐지고, 보기만 해도 군침 도는 이색적인 해산물과 신비로운 형형색색의 열대어들이 가득하다. 병만족은 그 한가운데 자리한 무인도에 머물며 스노클링을 즐긴다. 물론 그들에게 있어서 바다는 휴양 아니라 생존의 터전이다. 그들은 진귀한 대형소라 콩크와 열대어인 치킨피쉬, 거대한 갑각류 스파이니 로브스터를 채집한다. 그 행위는 식량을 구한 것만이 아니었다. 덥고 무더운 8월의 어느 여름날, SBS <정글의 법칙>은 그 어떤 휴양지에서도 누릴 수 없는 로망을 건져 올렸다.

<정글의 법칙>의 매력은 어느 여름날, 시원한 바다로 떠나자 폭발했다. 카리브해 벨리즈를 찾은 병만족은 그들이 왜 금요 예능 시청률 부동의 1위인지 스스로 증명했다. 그간 <정글의 법칙>은 시청률로 설명할 수 없는 침체기가 있었다. 진정성 회복을 위한 여러 장치와 설정이 과도한 진지함을 불러일으켰고, 먹을거리 하나 없는 척박한 환경에 도전하면서 철저하게 김병만 원맨쇼로 흘러갔다. 그 흐름 속에서 다른 병만족의 역할은 제한되면서 스토리의 빈곤을 낳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그러나 이번 벨리즈 편에서는 이 모든 걸 벗어버렸다. 그간 여행의 종합판이라는 출사표가 허언이 아니었다. 여름특집이라고 할 만큼 간만에 즐거운 모험과 볼거리, 즐거움이 가득했다.

<정글의 법칙>의 근간은 로망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문명을 등지고 ‘떠난다’는 행위에 대한 로망은 이 프로그램의 존재 이유다. 웃음이든 진정성이든 로망을 자극하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끼니 걱정을 위해 하루 종일 사냥을 일상으로 여겨야 하는 현실 앞에 눈물을 보이고만 조여정이 세삼 느낀 ‘먹고사니즘’은 <정글의 법칙>이 전해주는 우리가 잊고 지낸 당연한 하루 일과이자 평범한 진리다. 푸르른 바다 속을 탐험하는 병만족의 물질을 보는 동안 시청자들은 두 발을 딛고 있는 현실을 떠나는 상상을 하게 된다.



<정글의 법칙>의 로망을 받드는 첫 번째 기둥은 신비로운 볼거리이고, 두 번째 기둥은 병만족과 함께하고 싶은 감정을 이끌어내는 감정이입이다. 벨리즈의 풍광은 시청자들에게 떠나고픈 욕망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이번 주 방송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해 보여준 것은 생전 들어본 적도 없는 진귀한 해산물을 맛보는 먹방이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도 <정글의 법칙>이 3년 전 우리에게 주었던 그 강력한 설렘이 다시 한 번 느껴졌다. 스파이니 로브스터를 너무나 맛있게 먹는 병만족을 보고 있노라면 식욕에서 시작해 어깨를 짓누르는 일상을 벗어나고 싶은 욕망으로 이어진다. 새로운 세상을 마주하는 모험과 신비로운 경험의 대리만족은 로망의 예능, <정글의 법칙>만이 줄 수 있는 매력인 것이다.



또한, 이번 편이 히말라야나 다른 편에 비해 감정이입이 잘 된 것은 절묘한 캐스팅 덕분이다. 사실 리키 김이 빠지면서 병만족의 균형은 무너졌다. 엄마 역할이자, 또 다른 능력자이자, 김병만의 힘을 덜어줄 조력자 역할을 해온 리키 김의 존재는 코미디를 책임지는 다른 멤버들이 보다 더 웃길 수 있고, 김병만에게 쏠리는 하중을 나눠 받아주면서 병만족 내에서 훨씬 더 많은 관계망과 가능성을 만드는 중심 멤버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엄마 역할을 하는 ‘김 여사’ 김성수가 병만족 내에서 중심을 잡아준다. 김병만은 보다 더 일에 집중할 수 있고, 다른 멤버들은 더 친해질 수 있다. 거기에 오종혁과 성열은 신입 부족원이지만 리키 김이 해냈던 역할을 어느 정도 수행한다.

여기에 제작진의 태도 변화도 눈에 띈다. <진짜 사나이>와 <라디오스타> 등에서 검증된 자막 스타일과 CG를 적극 도입해 캐릭터의 개성을 드러내게 하고, 진정성과 극기를 강조하던 분위기를 가볍게 만들었다. 각자 다른 멤버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서는 부족원들 간의 끈끈한 관계를 부각시키고 서로를 향한 마음을 확인하면서 시청자들도 그들의 커뮤니티에 몰입하도록 했다. 가장 큰형인 김성수에게 장난을 거는 막내 성열, 군기가 덜 빠진 순박한 오종혁, 매사에 열심히 임하는 조여정 등과 개그 캐릭터인 류담, 노우진이 블록 장난감처럼 서로 끼워 맞춰지면서 김병만에게 쏠렸던 스포트라이트가 분산됐다. 특히 김성수의 능글맞으면서도 재치 넘치는 입담은 이번 병만족이 흥할 수 있는 신의 한 수였다.



이 무더운 여름 밤, <정글의 법칙>은 시청자들을 카리브해의 푸르른 바다로 초대했다. 한국에서는 맛볼 수 없는 진귀한 해산물을 잡아 올리면서 시청자들의 마음 또한 사로잡았다. 다큐형식을 차용한 관찰형 예능의 효시인 <정글의 법칙>은 같은 계열의 다른 프로그램들이 일상의 공감을 주시할 때 로망을 노래한다. 진정성에 얽매이기보다 로망을 주목한다. 시청자들의 떠나고 싶은 욕망, 호기심을 자아내는 신비로움을 자극하는 예능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SBS]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