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도’, 아이템보다 이예준 캐릭터가 더 중요한 이유
[엔터미디어=정덕현의 스틸컷] “부담 없습니다. 너무 즐거우니까요.” 이 한 마디가 왜 이토록 감동이었을까. <무한도전>이 시청자 참여 아이템으로 기획한 ‘무도를 부탁해’에서 PD로 뽑힌 12살 이예준 군은 처음 하는 연출에 “가끔은 생각대로 안 될 때도 있다. 부담되지는 않느냐”는 유재석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런데 이 답변 한 마디는 멤버들을 순간 짠하게 만들었다. 하하는 “눈물 흘릴 뻔 했다”고 설레발을 쳤고, 박명수는 “20년 방송하며 눈물 흘린 적은 처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약간의 과장된 리액션이 섞여 있는 말들이었지만, 그것은 어쩌면 진짜 짠한 마음을 웃음으로 숨기려는 마음이 더 컸을 게다. 지나친 감동에 인색한(?) <무한도전>답게 그들은 ‘재촬영’ 없고 ‘편집으로 살린다’는 이예준 군의 말에 반색하며 김태호 PD와 비교하는 것을 통해 웃음의 분위기로 전환시켰다. 하지만 이예준 군의 한 마디는 아마도 <무한도전>을 계속 바라보며 지내온 팬들에게도 역시 마음 한 구석을 짠하게 만들기에 충분했을 게다.
<무한도전>이라고 왜 한계가 없겠는가. 8년 넘게 끊임없이 새로운 형식 도전을 한다는 것 자체가 사실은 진짜 도전이었을 게다. 실제로 최근 들어 <무한도전>의 아이템들은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획기적이라는 느낌이 줄어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어딘지 과거에 봤던 아이템의 연장선이거나 혹은 웃음의 강박이 지나쳐 어떻게든 웃기려고만 안간힘을 쓰는 모습도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도전 자체가 그걸 하는 멤버들이나 그걸 보는 시청자들이나 즐거울 수는 없다.
하지만 어쩌면 아이템이 새롭지 않아서 도전이 재미가 없고 즐겁지 않은 것은 아니었을 지도 모른다. 오히려 도전하는 모습이 과거에 비해 즐겁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템을 바라보는 새로움이 생기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시청자 참여 콘셉트는 이 한계에 있어서 <무한도전>식의 문제 해결방식을 제공했던 셈이다. 시청자들에게 직접 아이템을 묻고 시청자가 PD로 참여해 프로그램을 만들어보는 것.

이 아이디어가 김태호 PD의 신의 한수였다는 것은 ‘거장 이예준’ 같은 캐릭터가 등장해 시청자의 입장과 <무한도전> 멤버, 제작진 사이에 소통하는 시간을 갖게 해줬다는 점이다. 물론 12살 어린 나이의 이예준 군이 낸 아이템이 새롭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비슷한 아이템이라고 해도 이예준 군이 진두지휘한다는 것이 포인트다. 아이템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아이템을 내놓고 참여하는 이예준 군 같은 캐릭터가 더 중요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무도를 부탁해’를 찍어내는 카메라는 기존 <무한도전>과는 달리 두 개의 시선을 갖게 된다. 하나는 이예준 군이 연출하는 시선이고 다른 하나는 그 이예준 군이 연출하는 걸 찍어서 그것 자체를 연출시키는 김태호 PD의 시선이다. 시청자가 연출하는 것을 연출하는 이 기막힌 시선의 교차는 그래서 그 아이템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무한도전>의 새롭고 신선한 도전이 되는 셈이다.
거기서 이예준 군이 자신은 이 과정 자체가 너무나 즐겁기 때문에 부담이 없다고 말하는 장면은 어쩌면 이번 아이템에서 거둔 최대의 수확이 아니었나 싶다. 그것은 8년을 내내 방송을 찍는 마음이 첫 촬영을 하는 마음을 다시 만나는 지점이니 말이다. 아마도 이예준 군의 한 마디가 모두를 찡하게 만든 건, <무한도전> 멤버들이나 김태호 PD 또 그걸 바라보던 시청자들도 모두 8년 전 그 첫 촬영의 즐거움과 흥분을 그 한 마디가 다시 떠올리게 했기 때문일 게다.
물론 다음 주 예고편에서 살짝 비춘 것처럼 생각만큼 일이 잘 풀리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제 아무리 난감한 상황에서도 뭐든 능숙하게 척척 해내는 능숙함보다 때로는 더 중요한 것이 모든 걸 처음 느끼던 그대로 즐겁고 설레는 마음으로 임하는 자세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제 첫 촬영을 하는 이예준 군 앞에 심지어 ‘거장’이라고 거창한 수식어를 붙인 것이 그저 웃음을 만들어내기 위한 과장만은 아니었다고 생각된다. 실로 <무한도전>의 이런 식의 센스 넘치는 위기 극복 능력은 제 아무리 비판적인 관점을 유지하려는 노력에도 어쩔 수 없이 감복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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