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키운다’의 안전한 선택, 기존 육아예능과 차별성은?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2021년 여름의 예능 키워드는 백종원, 골프, 그리고 돌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지난 2년간 위축된 예능 현장에서 고육지책으로 ‘옆’그레이드하며 벌어진 현상이다.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팬데믹으로 인한 현실 제약이 워낙 많다보니 도전의 설계가 훨씬 까다로워지고 기회비용은 비싸졌다. 그런 까닭에 기획은 보수화됐다. 새로움을 주면서도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기존의 문법과 틀을 가져가고 어느 정도는 성과가 담보되는 콘텐츠가 늘어나는 중이다. 그래서일까. 세 키워드 모두 기존 방송이나 유튜브 콘텐츠를 통해 검증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지난 9일 JTBC의 새 금요예능으로 전격 편성된 <용감한 솔로 육아-내가 키운다>는 돌싱 맘이 된 스타들이 모임을 결성해 서로의 일상을 공유한다는 육아 관찰 예능이다. SBS <짝>의 돌싱 버전이라 할 수 있는 일반인 리얼 연애물(MBN <돌싱글즈>), <미우새>출신 싱글 중년남들의 리얼버라이어티(SBS <신발 벗고 돌싱포맨>) 등이 준비 중인 가운데, 돌싱 예능 중 가장 현실에 발을 붙이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보여준다.

MC이자 회장으로 참여하는 김구라는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동상이몽>을 언급하며 기존의 부부예능, 가족예능과는 큰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물론 훗날 특별한 이슈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동상이몽>과 <내가 키운다>의 출연자가 겹칠 가능성은 없다. 하지만 김구라의 말은 캐스팅의 관문을 넘어선 이후에는 유효하지 않다. <내가 키운다>는 편집, 구성, 토크 모든 부문에서 육아예능의 문법과 클리셰를 무척이나 꼼꼼하게 연구하고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성실한 전략적 접근이 오히려 흥미롭게 다가올 정도였다.

기획이란 곧 캐스팅이다. 그리 다를 것 없는 수많은 관찰예능이 있어왔기에 누군가의 집에 카메라를 설치하려면 설득력 있는 명분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싱글맘 스타들의 육아예능이란 기획은 합격이다. 캐스팅 또한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이미 육아 콘텐츠로 50만 구독자를 거느린 유튜브 스타 김나영이 앵커 테넌트가 되고 세간의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조윤희의 첫 일상 공개는 호기심을 유발한다. 여기에 유쾌함을 책임질 것으로 예상되는 김현숙, 오랜만에 만나 반가운 이름 채림까지 구성이 다채롭고 캐릭터와 역할이 전략적으로 안배되어 있다.

카메라 또한 철저히 육아예능의 기성 패턴 안에서 움직인다.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여주는 스케치를 통해 집안 살림을 엿본다. 정리정돈에서 주로 나타나는 똑 부러지는 살림 솜씨, 요리나 훈육에서 드러나는 스타의 육아 방식,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를 반영한 세련된 공간 등을 보여준다. 여기서 많은 육아 예능이 늘 그렇듯 화려한 직업을 가진 스타임에도 아이를 위해 매 끼니 밥을 짓는 등 살림과 육아를 우선시하는 반전 면모가 돋보인다.

정도 소개가 끝났다면 재빨리 포커스를 육아예능의 성패를 좌우하는 아이들에게로 옮긴다. 제목은 <내가 키운다>지만 대부분의 볼거리는 카메라에 담긴 아들의 커가는 모습이다. 처음 본 카메라 스텝과 반갑게 소꿉놀를 하고, 발랄한 에너지를 주체 못하는가 하면 순수하고 여린 탓에 때론 엄마와의 소통 원활하지 않기도 한다. 런 모습조차 사랑스러운 아이들이다. 밝고 건강하고 귀여운 아들의 순수한 표정과 행동과 말 한마디 한마디에 엄마 미소, 모 미소, 삼촌 미소가 자동으로 짓게 된다.

MBN <우리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2>, TV조선 <우리 이혼했어요> 등 이혼과 돌싱을 소재로 삼았던 예능들이 어느 정도는 자극과 파격을 노렸다면, <내가 키운다>는 노선을 달리해 육아의 공감대로 접근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싱글맘은 상황일 뿐, 아이를 행복하게 기르는 데 진심을 보이는 가족예능, 육아예능과 훨씬 공통분모가 크다. 다른 육아예능에는 잘 없는 눈물이 시작부터 터질 뿐이다. 비슷한 아픔을 겪은 당사자들끼리 수시로 흘리는 눈물은 기존 육아예능에는 없던 감정선이다. 따라서 상황에 대한 공감이나 정서적 코드가 맞아 떨어진다면 응원하는 마음을 갖거나 이 프로그램의 기획의도이기도 한 ‘용기’를 전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런 눈물과 토닥임이 기존 육아예능을 능가하는 새로운 볼거리와 동력이 될지는 미지수다. 첫 회 시청률 3%를 넘기며 김나영과 조윤희로 시청자의 발걸음을 일단 멈추게 하는 데까지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 하지만 누군가가 만약 아무런 배경 지식 없이 이 예능을 본다면 기존 육아예능 중 한 편이라 생각했을 수 있다. 용기를 냈다는 당위와 명분은 인터뷰와 스튜디오 토크를 통해서는 충분히 언급됐지만 정작 방송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보여준다는 특별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무척이나 정돈된 톤에 편집과 스토리텔링의 완성도가 높은 건 알겠는데, 봐야 할 이유, 즉 기존 육아예능과 다른 이 프로그램에서만 볼 수 있는 오리지널리티가 딱히 잡히지 않는다. 장수하는 기존 관찰예능들처럼 팬덤을 갖고 롱런하기 위해서는 어디서 본 듯한 볼거리를 넘어선 새로움과 진정성이 필요하다. 돌싱, 싱글맘이란 설정은 이미 제 역할을 다 하고 떨어져 나간 우주선의 추진연료통이다. <내가 키운다>가 더욱 순항하기 위해서는 기존 육아예능과는 다른, 이 프로그램만의 볼거리와 에너지가 필요하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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