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진경의 영화로운 덕후생활’, 마침내 시작된 홍진경의 전성기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tvN 예능 <홍진경의 영화로운 덕후생활>은 방송가에 깊게 스며든 유튜브의 파급력과 코로나 시대의 영향력이 절묘한 자리에서 만난 프로그램이다.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예능계에서 인지도는 최상급이지만 자신만의 예능, 자신의 본진을 가져본 적 없는 홍진경이 데뷔한 지 30여 년 만에 자신의 이름을 내세운 프로그램을 런칭했다.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시피, 모델 출신의 홍진경은 1990년대 초반 이영자의 사이드킥(외형상으로나 코미디 스타일상으로나)으로 방송가에 눈도장을 찍었다. 이후 긴 세월 동안 현역으로 활동하며 살아남은 한 손 안에 꼽히는 몇 안 되는 여성 예능인이다. 또한 방송에서 보여주는 이미지와 달리 2006년부터 시작한 김치 사업을 크게 일구며 주식회사 홍진경의 대표이사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런 흥미로운 배경까지 더해져 여성 예능인에게 기회가 별로 주어지지 않던 리얼버라이어티 시대에도 MBC <마리텔>, <무한도전> 게스트, KBS2 <언니들의 슬램덩크> 등에서 꾸준히 존재감을 발산하며 뭔가 부족하지만 순수하며 자신감 넘치는 캐릭터를 완성했다.

이런 확실한 캐릭터를 바탕으로 홍진경은 주로 게스트나 패널로 감초 역할을 맡았다. 채널A <애로부부>를 비롯해 여러 예능에서 서슴지 않고 질문을 던지면서 호감과 공감대를 일으키며 활약했다. 특히, 오랜 기간 출연한 JTBC <차이나는 클라스>에서 보여준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고 질문에 주저함이 없는 순수한 열정은 지난 2월 시작한 카카오TV 웹예능이자 유튜브 채널인 <공부왕찐천재>의 모태라고 할 수 있다. 라디오를 제외하고 홍진경을 타이틀롤로 내건 첫 콘텐츠로, 학문에 대한 열망을 이루기 위해 과외 선생님을 찾아나서는 여정에 포커스를 둔 웹예능이다.

카카오TV의 프로그램답게 물량(캐스팅)은 방송국 수준 이상으로 투여하고, 풀어가는 방식도 가족 관찰예능, 리얼버라이어티, 토크쇼 등 다양한 예능 장르가 혼합되어 있다. 처음부터 인기를 끌었던 것은 아니지만 홍진경의 특유의 화법과 예측 불가한 솔직함과 기상천외한 접근법, 딸 라엘과 다른 출연자들과의 케미스트리가 터지면서 6개월여 만에 구독자수 86만 명의 채널로 압축 성장했다. 이 웹예능 하나로 홍진경은 무척이나 호감 가는 흥미로운 인물로 새롭게 다가왔다.

 

<홍진경의 영화로운 덕후생활>는 박준형, 장성규가 그랬듯이 유튜브에서 마련한 전기를 방송으로 옮겨온 사례다. 코로나 시대가 길어지면서 OTT플랫폼 전쟁이 낳은 수요와 제작여건상 다시 각광받기 시작한 정보성 콘텐츠다. 홍진경이 단독 MC로 나서고 평론가 이동진, 유튜버 겸 성우 쓰복만, 배우 송진우가 각각의 코너를 맡아 플랫폼과 콘텐츠가 범람하는 이 시대에 각자의 취향에 맞춰 골라볼 수 있도록 다양한 영상을 흥미롭게 전해주는 영화 소개 프로그램의 일종이다.

홍진경을 앞세운 기획의 방점은 기존의 영화 소개나 영화 담론 예능과 달리 전문가가 아닌 평범한 누군가의 시선에 눈높이를 둔 편안함과 공감대에 있다. 이 프로그램의 핵심 콘텐츠는 관련해 업계 최고로 꼽히는 이동진 평론가와 배우이기도 한 홍진경이 함께 영화 이야기를 나누는 15분 남짓한 ‘문화시민’ 코너다. 홍진경은 특유의 진심어린 자기만의 언어로 진행자이자 철저한 일반 관객 입장에서 영화를 보고, 스스럼없이 질문을 던지고, 자신이 느낀 생각과 감정을 20자 평에 담아 가감 없이 드러낸다.

분야 최고의 전문가라 불리는 이동진과 함께하지만 인정하고 배우는 와중에 감상과 해석을 달리 두는 걸 부담스러워하지 않는 점이 매력이다. 예를 들어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마지막 장면을 두고 이동진 평론가는 해피엔딩으로 확대해석하지만, 홍진경은 정반대로 오히려 더 슬픔이 배가되는 장면으로 받아들인다. <블루 재스민>을 보고는 나름의 논리적 스토리텔링으로 세세하게 들려주는 이동진 평론가와 달리 영화의 주제를 자신의 언어로 간파해 직관적으로 보여줘 놀라움을 준다. 그러는 와중 예의 엉뚱함을 놓칠 수 없다. 헤어짐에 대한 나름의 철학을 설파하는데, 주체적인 판단과 의견을 가감 없이 개진하는 것이 바로 홍진경의 진가다.

그러나 개인의 매력과 일상 속으로 카메라를 갖고 들어가는 <공부왕찐천재>와 달리, <홍진경의 영화로운 덕후생활>은 매거진 형태의 예능이라는 점에서 홍진경이란 인물의 매력으로 프로그램 전체를 끌고 가긴 어렵다는 아쉬움이 있다. 홍진경이 등장하지 않는 코너들은 코너지기들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허나 순백, 무지의 아이콘으로 거듭난 홍진경이 영화 및 여러 영상 콘텐츠를 소개하는 역할을 맡았다는 점부터가 파격이며 시대성이 반영된 상징적인 증표다.

무엇보다 다시금 주목해 볼 점은 홍진경 캐릭터의 바탕이 되는 다른 이의 말을 진지하고 열린 자세로 듣는 몸에 배인 태도다. 이러한 열린 자세가 바로 호감이 싹트는 토양이 되고, 그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몰입하게 만드는 비결이다. 마침내 시작된 전성기를 응원하며, 지금껏 평론업계에 전무했던 이동진 평론가를 놀라게 만드는 카운터 파트너가 되길 기대해본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tvN, JTBC, 카카오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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