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경 천상계의 ‘고백’에서 장범준 인간계의 ‘고백’으로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1999년 솔로로 전향한 박혜경 1집의 타이틀곡 <고백>은 그녀의 청아한 음색이 지닌 강점이 고스란히 드러난 곡이다. 물론 <고백>은 당시 브릿팝 스타일 가요에 한국적인 서정을 담은 일기예보와 러브홀릭의 강현민 스타일이 오롯이 담긴 노래이기도하다. 그리고 이미 강현민 음악에 박혜경 보컬의 시너지 효과는 더더 2집의 <it’s you>로 이미 잘 알려져 있기도 했다.

박혜경은 <고백>에서 본인의 천상계 음색으로 “말해야 하는데/네 앞에 서면 아무 말 못하는/내가 미워져//용기를 내야 해/후회하지 않게/조금씩 너에게 다가가/날 고백해야 해”로 큐피드의 속삭임처럼 이 노래를 시작한다. 이어 담담한 우정에서 사랑으로 넘어가는 마음을 풍성한 록 사운드 위에서 읊조리듯 날갯짓하듯 부드러운 깃털처럼 날아다니며 노래한다.

누가 들어도 마음이 치이는 <고백>은 남녀노소 모두 노래방에서 한번쯤 부르고 싶은 곡이다. 하지만 동시에 실패하기 쉬운 곡 중 하나다. 숨쉬기도 쉽지 않고, 음정을 맞추기도 어렵고, 후반부에 올라가는 고음 파트는 <고백>이 아닌 고행의 느낌으로 노래를 불러야 할 때도 있다. 여기에 박혜경의 음색이 아니면 이 특유의 깨질 것 같이 조심스러운 짝사랑의 시소타기 감정을 청아하게 부르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20여년 만에 등장한 장범준의 리메이크는 <고백>을 인간계로 끌고 온다. <벚꽃엔딩>부터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향이 느껴진거야>까지 장범준의 노래에는 폼 안 잡는데 희한하게 노래 잘하는 남자친구의 느낌이 있다.

장범준은 <고백>에서도 이런 본인의 매력을 살랑살랑 보여준다. 일단 장범준은 과감하게 첫 소절을 박혜경이 여린 음색으로 속삭이는 파트의 다음부터 시작한다. 가장 인간적이고 솔직한 짝사랑의 감정을 실은 솔직한 가사로 노래를 시작하는 것이다. 마치 종업식 날에 짝사랑하던 여자애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남자애의 노래처럼. “내 오래된 친구인 널 좋아하게 됐나봐/아무렇지 않은 듯 널 대해도 마음은 널 떨렸어.”

이후에도 장범준은 원곡의 섬세한 기교를 털어내고 담담하게 밀고 나간다. 특히 “어색할까”라는 노랫말을 이렇게 편안하게 잘 살리는 걸 보면 장범준의 보컬적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동시에 2절에서 “날 그저 그런 친구로 생각했고/지금과는 달랐어”에서 뭔가 실수처럼 부르는 느낌도 장범준 <고백>의 매력이다. 또 “용기를 내야해”라는 부분에서는 박혜경의 <고백>과는 확실히 다른 무심한 듯 담담하지만 진솔한 느낌이 있다. 이후 휘몰아치는 고음에서도 무리하지 않고, 장범준 특유의 힘을 빼면서 어깨동무하듯 청자의 마음을 슥 훔치는 식으로 <고백>이란 노래에 새로운 맛을 입힌다.

사실 20여년의 세월이 흘러 다시 리메이크 되었지만 놀랍게도 좋은 보컬들이 들려주는 <고백>의 매력은 여전하다. 장범준의 리메이크만이 아니라 박혜경의 <고백> 역시 지금 다시 들어도 훌륭하다. 박혜경 보컬의 매력뿐만이 아니라 1990년대 후반 사운드의 정교하고 풍성한 세련됨이 아직까지 살아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오랜 친구에게 말하고 싶은데, 말하지 못하는 고백의 진솔한 마음을 담은 노랫말 역시 싸이월드 감성의 시대는 물론 인스타 갬성 시대에도 여전히 애틋하게 통한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고백’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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