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수업’, 예능도 ‘강철부대’ 같은 긴박감을 연출하는데
‘경찰수업’, 경찰대생들을 이렇게 희화화해 그려도 되나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단 한 번도 드라마에 등장한 적 없었던 그 장소. 국립경찰대학. 모두가 궁금했지만 함부로 들여다볼 수 없었던 그 곳에선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까?’ KBS 월화드라마 ‘경찰수업’은 기획의도는 그런 문구로 시작한다. 실제로 지금껏 그토록 많은 범죄물과 형사, 연쇄살인범이 등장한 스릴러 드라마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경찰대학을 소재로 하는 드라마는 없었다. 그래서 일단 관심은 끈다. 하지만 한 회만 봐도 그 기대감은 여지없이 무너진다. 한 번도 등장한 적 없던 그곳에서 어디선가 봤던 상투성이 드라마를 가득 채워놓고 있어서다.
1980년대 할리우드 영화를 좀 봤던 시청자들이라면, 1984년에 만들어진 휴 윌슨 감독의 코미디 범죄영화인 ‘폴리스 아카데미’나 1986년 톰 크루즈가 나왔던 ‘탑건’, 1982년 리차드 기어 주연의 ‘사관과 신사’가 보여줬던 전형적인 스토리 구조를 떠올릴 것이다. 모두 학교가 등장하고 훈련이 등장하며, 그 학생들은 실전에 투입되어 사태를 해결하는 영웅담도 들어있다. 이처럼 학생이 현실 사건의 문제까지 해결하는 이야기는 2017년 우리네 영화 ‘청년경찰’에서도 반복될 정도로 익숙한 틀이다.

하지만 이들 영화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경찰수업’은 연출, 연기, 대본이 너무 유치하다. 대본은 등장부터 강선호(진영)의 범죄를 그의 아버지가 무릎 꿇고 빌어 유동만(차태현)이 모른 척 지나가주는 대목에서부터 삐끗했다. 이 시퀀스는 향후 강선호가 경찰대에 들어가고 좌천된 유동만을 거기서 만나게 다시 만나는 상황을 예비해 만든 악연설정이다. 유동만은 범죄를 저질렀던 강선호에게 경찰 자격이 없다며 혹독한 훈련을 시키게 되고, 그럼에도 강선호가 그 훈련을 이겨내고 어찌어찌해 경찰이 되어가는 모습을 그리겠다는 의도다.
그런 구도 자체를 뭐라 하긴 그렇지만, ‘경찰수업’은 그 과정을 너무 디테일 없이 상투적으로 그려나간다. 그 상투성은 대부분 별로 웃기지 않는 코미디 설정이나 주변 캐릭터들에 의해 만들어지는데, 이러한 강선호의 성장이나 유동만의 변화는 그리 몰입될 만큼 드라마틱하고 새로운 이야기가 별로 없다. 이런 상투성은 오강희(정수정)와 강선호 사이에 만들어지는 멜로 구도에서 두드러진다. 둘 사이에 무슨 교감이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오강희는 어느 순간부터 대놓고 강선호에 대한 호감을 드러내고 강선호는 숨겼던 마음을 털어놓는 식이다. 자연스러운 관계의 흐름이 결과에 닿는 것이 아니라. 결과를 예비해놓고 인물들이 자의적으로 움직이는 부자연스러움이 대본에 묻어난다.

이런 대본의 허술함은 유동만의 파트너였던 박철진(송진우)이 범인들의 정체를 알고 있고 그들과 연결되어 있던 인물이라는 식의 이야기 설정에서도 드러난다. 결국 유동만을 배신하지 못하는 박철진이 그에게 범인은 경찰대와 관련 있는 인물(이런 설정도 그리 놀랍지는 않다)이라는 걸 말하려다 급습당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박철진이 테러를 당하는 건 유동만이 애써 사제지간으로서 수사를 위해 강선호를 끌어들이는 걸 꺼려했던 그 마음을 돌리기 위한 이야기 설정이다. 이 정도는 되어야 유동만이 강선호를 범죄 수사에 끌어들이는 윤리적 문제를 넘어설 수 있다 작가는 생각했을 게다. 기다렸다는 듯이 유동만은 강선호를 찾아와 수사를 도와 달라 요구한다.
이런 상투적인 이야기 설정이나 인물들 간의 관계 설정은 ‘경찰수업’이 월화에 방영되는 미니시리즈가 맞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만한 극적 긴장감이나 새로움을 별로 발견할 수 없어서다. 일일드라마를 보는 듯한 평이한 스토리의 반복이나, 부자연스러운 관계의 진전, 뻔한 대사는 결국 단 한 번도 다뤄지지 않았던 경찰대학이라는 공간에 대한 좀 더 치밀한 사전 취재가 과연 있었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한 번도 다뤄지지 않았다지만 너무 익숙한 이야기들의 나열만 들어 있어서다.

하지만 ‘경찰수업’의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더 큰 문제는 연출이다. 이 드라마의 연출은 최근 들어 드라마 제작에서 기본으로 자리 잡고 있는 ‘톤 앤 매너’가 전혀 없다. 디자인적인 일치감이나 통일감은 당연히 없고 연출의 미장센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너무나 설명적으로 찍혀진 영상들은 일차원적이다. ‘경찰수업’이 세련되지 못하다고 여겨지는 건 바로 이 일차원적이고 설명적인 연출 때문이다. 심도 없는 조명과 최적화되지 못한 동선, 인물의 심리까지 담아내지 못하는 영상은 드라마를 밋밋하게 만든다.
경찰대에 남을 수 있는가를 두고 청람교육 최종미션으로 벌어진 페인트 볼 서바이벌 대항전은 이 드라마가 얼마나 연출이 조악한가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너무 단순한 대결 과정도 그렇지만, 동네 아이들이 총싸움 하는 수준으로 그려내 긴박감을 전혀 느낄 수 없는 서바이벌 장면들은 배우들이 안쓰러울 지경이다. 채널A ‘강철부대’ 같은 밀리터리 서바이벌 예능 프로그램도 강력한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연출을 해내는 요즘이다. 하물며 드라마가 액션 연출을 이렇게 맥없이 그려낸다는 건 문제가 있다. 실제 현업 경찰이나 경찰대생들이 이 연출을 보고 과연 어떤 생각을 할까 싶다.

대본과 연출이 난국인데 연기가 두드러질 수가 없다. 차태현 같은 연기 경력자야 이런 조악함을 코미디로 풀어내는 연기를 보이고 있지만, 진영이나 정수정 같은 신인들은 어색해질 수밖에 없다. 대본과 연출이 연기를 살려줘야 하는데, 이건 연기로 오히려 대본과 연출의 빈약함을 채워야 하는 상황이다.
근본적인 문제가 뭘까. 의심할 수 있는 건 제작비 부족이 아닐까 싶다. 결국 그만한 물량이 투입되기 어렵기 때문에 연출이나 대본 배우 캐스팅에 모두 부실함이 드러나게 된 게 아닐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적은 예산안에서 할 수 있는 연출의 묘는 충분히 있지 않을까 싶다. 차라리 대놓고 B급을 추구했다면 그것이 너무 상투적인 밋밋함보다는 나았을 테니 말이다. ‘단 한 번도 드라마에 등장한 적 없었던 그 곳’이라는 기획의도의 문구가 무색해지는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