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체포왕’과 ‘시선 너머’ 비교 분석

[엔터미디어=듀나의 이영화는..] 얼마 전에 본 두 영화 [시선 너머]의 에피소드 [백문백답]과 [체포왕]을 비교하지 않을 수가 없다. 두 편 모두 성폭행을 소재로 삼고 있어서 어떻게든 비교하고 넘어가야 개운해질 것 같다. 그리고 이유가 어찌되었건 비교는 한 번 해볼 만하다. 같은 소재를 다루었지만 두 영화가 소재를 다루는 태도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백문백답]은 허구의 투자 없이 현실세계에서 직장 내 성폭행이 대부분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는지를 보여준다. 가해자가 뻔뻔스럽게 무고한 척 돌아다니는 동안 피해자는 꽃뱀이라는 말을 들으며 직장까지 잃는다. ‘정보인권’이 테마라지만 사실은 그보다는 직장내 성정치와 역학관계가 더 중요한 이야기이고 그게 핵심이다.

보고 있노라면 울화통이 터진다. [백문백답]은 작정하고 사람들의 신경을 긁는 영화이다. 영화가 그리는 이야기가 현실에서 그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이 더 신경 쓰인다. 물론 이건 영화를 만드는 올바른 태도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성격이 급해져서인지, 개인적으로 나는 이런 건조한 사실 기술을 더 이상 견디기 힘들다. 결국 나는 투덜거리게 된다. 나는 이미 현실에 대해서 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니 제발 무언가 대안을 보여 달라. 적어도 대안의 시도는 보여 달라. 그것이 결국 ‘예술’을 망가뜨리는 것이라 해도. 어차피 [시선 너머]의 목표는 ‘예술’에 도달하는 게 아니지 않는가.

그럼 [체포왕]은 어떤가. 이 영화는 박중훈, 이선균이 나오는 장르 코미디다. [투캅스]의 분위기를 상상하시면 되겠다. 그런데 이들이 해결하려고 달려드는 사건이 소위 마포 발바리라고 알려진 연쇄 성폭행범을 잡는 것이다. 형식적으로는 거의 모범적인 단편영화인 [백문백답]과는 달리 시작부터 위태롭다. 성폭행을 다룬 코미디인 거다. 희생자 중 한 명은 자살하고, 다른 한 명은 심지어 미성년자이다. 이런 소재가 과연 웃음과 제대로 섞일까? 물론 아니다. 영화는 시종일관 소재와 장르 사이에서 어쩔 줄 모르고 그 때문에 중간엔 내용이 뚝 부러진 듯한 느낌마저도 든다. 하긴 한국 관객들은 그런 것들을 한국 장르 코미디의 익숙한 공식이라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예상 외로 [체포왕]은 이 무례하고 위태로운 그릇 안에서 최선을 다한다. 너무 열심이라서 설정을 눈치 채고 까려고 작정한 내가 오히려 민망할 정도다. 영화는 실적주의에 빠져 성폭행범죄 수사에 건성인 경찰을 비판하고, 성폭행이라는 범죄가 어떻게 이루어지며 희생자들에게 어떤 상처를 남기는지를 보여주며, 심지어 대안도 제시하려 한다. 이것들이 아주 깊이 있다거나 할 수는 없고 종종 지나치게 순진하다는 인상도 받지만, 적어도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이 주제를 건성으로 다루지 않는다는 건 분명하다. 그 때문에 코미디가 망가진다는 인상을 받기도 하지만 원래 코미디용 소재는 아니지 않았는가.



나는 지금 이 둘 중 한 편을 옹호하려는 걸까? 그렇지는 않다. 개인적으로 말하면 나는 두 편의 영화 모두 견디기가 쉽지 않다. 적어도 스토리 안에서 사건을 해결한 [체포왕]이 보기가 편하지만 난 여전히 이 작품이 장르를 심각하게 잘못 선택했다고 믿는다. [백문백답]의 경우, 이 영화는 그냥 올바르기만 하다. 두 영화 모두 진심을 다해 최선을 다했는데, 그것만 가지고는 도저히 만족할 수가 없는 거다.

슬슬 일반론으로 넘어갈 때가 되었다. 과연 영화라는 도구가 현실 세계에서 무엇을 할 수가 있는가? 허구의 스토리 안에서 문제를 해결한다고 현실 세계에서도 문제가 해결되나? 영화로 관객들을 불편하게 하고 자극하면 과연 그 관객들이 현실 세계에 나가 그 문제를 해결하려 할까? 오히려 그 불쾌한 기억과 함께 현실 세계의 문제까지 한꺼번에 잊어버리려 하지 않을까? 허구를 통해 무언가를 이루려는 노력이 저널리스트나 평론가들의 인정을 받고 사라진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마 답은 없을 것이다. 아마 [백문백답]과 [체포왕]은 해결책보다는 현상으로서 더 가치가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적어도 이 두 영화는 00년대 한국 영화계의 (남성) 감독들이 성폭행이라는 소재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 정도면 약간 안심이 된다. 지금까지 궁시렁거리고 투덜거렸지만 적어도 이 영화들의 태도는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가 나왔던 90년대보다는 훨씬 낫다. 그 동안 우리가 조금 예민해지고 똑똑해진 거다. 그리고 앞으로 20년 동안 우린 더 나아질 것이다. 현실 세계 역시 그 발전 속도를 따라가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체포왕’, ‘시선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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