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타운’, 작가·제작사·방송사 모두 무책임한 이유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하반기 기대작으로 꼽혔던 tvN 수목드라마 <홈타운>이 하루아침에 논란의 대상이 됐다. 이유는 이 작품의 주진 작가가 과거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됐던 조현훈 감독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다. 2016년 상영된 영화 <꿈의 제인>을 연출했던 조현훈 감독은 2018년 3월 과거 뒤풀이 자리에서 성폭력을 한 사실이 피해자에 의해 알려졌고, 그는 이 사실을 인정했다. 그리고 “일체의 공식 활동과 작업을 중단하고 자숙과 반성의 시간을 갖겠다”고 했다.

하지만 3년이 지난 현재 그는 필명을 내세워 드라마 작가로 복귀했다. 드라마가 2회까지 방영되는 동안 이 사실은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3회를 앞둔 시점에 사실이 밝혀졌다. 조현훈 감독은 이 사실 역시 인정했고 “제 과오로 인해 고통받은 분과 영화계 동료들, 지금 방영 중인 작품의 시청자들께도 정말 죄송하다”는 말을 전했다. 하지만 그는 “당시에도 지금도 그 일을 부정하거나 숨기려고 하는 의도는 없었으며” 여전히 반성하며 피해자에게 도움이 된다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뜻의 사과문을 올렸다.

문제는 이미 작가가 성추행 가해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시청자들이 과연 <홈타운>이라는 드라마를 계속 몰입해서 볼 수 있을 것이며, 그 내용에 공감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물론 작가와 작품을 분리해서 바라보는 ‘쿨한 시각’이 있을 수도 있지만, 우리네 정서는 이를 용납하기가 쉽지 않다. 결국 작품, 그 중에서도 드라마는 더더욱 작가의 세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우리네 시청자들에게 작품과 작가를 분리해서 본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홈타운>은 살인사건이 벌어지는 스릴러 장르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등장하는 작품인지라 작가가 성추행 가해자라는 사실은 몰입을 깨고 나아가 불쾌함까지 만들어내는 이유가 될 수 있다. 물론 한 번 잘못한 일로 향후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기회조차 박탈된다는 건 가혹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적어도 그 가해자가 공인 같은 책임 있는 위치에 있다면 충분히 대중들이 납득할 만큼의 자숙이나 반성의 모습을 보였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그의 공식적인 활동 재개는 그 자체로 관계된 모든 이들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어서다.

문제는 과연 이 사실을 제작사인 스튜디오 드래곤과 방송사인 tvN 측이 몰랐을까 하는 점이다. 제작사 측은 조현훈 감독이 주진 작가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건 편성이 확정되고 촬영을 시작하기 직전이라고 했다. 즉 애초 편성단계부터 미리 알고 있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상식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세상에 작가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작품만 보고 계약을 하는 일이 그리 흔한가. 특히 그 무엇보다 작가의 무게감이 큰 우리네 제작 시스템에서?

제작사 측은 이미 모든 회차의 대본이 나와 막바지 촬영 중이라며, “조현훈 감독 필명인 주진 작가 이름을 3화부터 엔딩 크레딧에서 삭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말은 이미 다 찍었기 때문에 12회 분인 드라마를 끝까지 방영하겠다는 것이고, 조치로서 작가 이름 하나를 빼겠다는 뜻이다. 과연 이런 조치가 시청자들에게 납득이 될 수 있을까.

사실을 몰랐을 가능성도 높지 않지만, 몰랐다 하더라도 이대로 방송을 끝까지 내보내는 건 여러모로 많은 논란의 소지를 안긴다. 가장 큰 문제는 가해자가 만든 드라마가 방영되고, 혹여나 성공하게 된다면 그것이 피해자에게 안기는 상실감과 2차가해가 적지 않을 것이고, 나아가 이런 수순(?)이 향후 성폭력 사건에 하나의 전례처럼 메시지를 던질 수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자칫 이 논란은 제작사와 방송사의 이미지에도 타격을 입힐 수 있다.

유재명, 한예리, 엄태구 같은 쟁쟁한 배우들에게도 이 논란은 맥 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들 역시 작가가 누구인가를 과연 몰랐을까 하는 의구심은 남는다. 하지만 어쨌든 <홈타운>이라는 드라마를 끌고 가는 대부분의 힘이 이들 배우에게서 나온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 논란이 만들어내는 허탈함은 더욱 안타깝게 느껴진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 사실이 밝혀지고 <홈타운>의 시청률은 2.5%(닐슨 코리아)까지 추락했다. 논란 때문에 생겨난 비호감도 원인으로 작용했을 테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작품이 애초 기대만큼 매력적이지 않아서다. 미스터리 스릴러로 공포에 가까운 자극적인 장면들이 등장하지만, 스토리가 뭔가 있을 것 같은 변죽만 울리며 그 힘으로 끌고 가는 것에 시청자들이 채널을 돌리고 있다. 논란을 감수할 만큼 굉장한 작품처럼 보이지도 않는데 어째서 방송사도 제작사도 이를 감수하고 있은 걸까. 드라마 속 미스터리보다 이 제작 과정의 미스터리가 더 궁금하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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