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퀴즈’와 팔도 리포터들의 만남, 특별했던 이유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저는 촬영, 편집, 연출 그리고 출연까지 맡고 있는 가성비 갑 PD겸 리포터 이PD라고 합니다.” tvN 예능 <유퀴즈 온 더 블럭> ‘팔도 리포터’ 특집에 출연한 KBS <생생정보> ‘이PD가 간다’의 이PD는 자신을 그렇게 소개했다. 실제로 그는 매주 2박3일간 전국을 다니며 촬영하고, 이틀간 편집, 또 이틀 간 시사와 후반작업 및 방송을 한 후 단 하루를 휴식 겸 다음 촬영 기획을 한다고 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다시 2박3일간의 촬영이 이어진다는 것.

시청자들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일주일에 한 편 20분 정도 분량의 방송을 만들기 위해 이런 강행군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적이 놀랐을 게다. 이PD는 이 일을 10년째 하고 있었다. ‘이PD가 간다’는 PD가 전국의 현장 속으로 뛰어 들어가 생생한 체험을 통해 정보들을 전해준다는 점에서 결코 촬영이 쉽지가 않다. 벼랑 끝에 매달리기도 하고, 10미터가 넘는 절벽에서 바다로 다이빙을 하기도 하며, 수중 촬영에 드론 촬영도 한다. “뭐 영화나 드라마도 사실 작품이라고 얘기하지만 저희들도 한주 한주가 작품입니다. 그럼요. 생생정보도 작품이고 수많은 제작진의 노력과 일주일에 그 방송시간이 되는 그 하루를 위해서 온 스텝이 노력을 하잖아요.” 유재석은 이들의 노력을 하나의 ‘작품’이라며 상찬했다.

이런 일을 이PD와 조연출 그리고 10년째 함께 하고 있는 ‘짝꿍’ 원은혜 작가가 모두 해내고 있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열정적이게 만들었을까. 그 이유는 이PD가 들려준 SNS 이야기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백혈병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하는 아들을 둔 어머니가 이 방송을 보고 ‘완치 후 여행 갈 목록들 작성해보려 한다’며 ‘늘 밝은 이미지 보여주셔서 감사하다’는 사연을 보낸 것. 이PD는 그 아이가 이겨낼 수 있게 ‘좋아할만한 영상’을 만들고 함께 ‘가실 좋은 곳들’을 많이 찾아내겠다는 답장을 보냈다고 한다. 그가 열심히 성실하게 일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시청자들 덕분이었다. 그는 현장에 나가면 “건강해야 오래하지!”라며 자신을 걱정해주는 분들이 있다고 얘기하며 울컥하는 마음을 전했다.

이PD는 연예인도 아니고 전문 방송인도 아니고 말 그대로 연출자다. 그래서 ‘이PD가 간다’에서 그의 모습은 어색하고 어눌하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이 코너가 가진 진짜 매력이다. 베테랑 방송인에서는 나올 수 없는 순수함과 진심이 그 어색함과 어눌함 속에서 묻어나기 때문이다. 감동적인 건, 이렇게 홀로 고군분투하는 이PD 옆에서 10년째 더 좋은 조건의 제안들도 거부한 채 늘 동행해온 원은혜 작가 같은 분도 있다는 점이다. 작가가 촬영지까지 가는 일도 드문 데 원작가는 그 곳에서 이PD를 촬영하는 일까지 돕고 있다. 이PD는 “누가 작가님이 그래요”라는 말로 고마움을 표했다.

이PD는 남성인지 여성인지 성별 구분이 되지 않는 중성적인 매력으로 이른바 ‘신비주의 리포터’로 잘 알려져 있다. 현장에서 만나는 분들이 “남자여 여자여”하며 궁금해 하는 것을 오히려 방송의 매력으로 끄집어낸 것. 하지만 그가 해온 일련의 촬영 속에 담긴 도전들이나 현장에서 만난 분들과의 따뜻한 소통 과정을 보면 그가 성별을 드러내지 않고 역할로서 존재감을 드러낸 것이 더 큰 가치를 지닌다는 걸 확인하게 된다. 세상엔 이름이 알려진 유명한 스타PD들도 있지만, 이렇게 묵묵히 오래도록 주어진 길을 성실하게 걸어온 이들도 있다는 것. 그들을 주인공으로 세워 특집으로 보여준 건 <유퀴즈 온 더 블럭>이 가진 가치와 맞닿아 있는 일이기도 했다.

이날 특집에 나온 TBC <싱싱고향별곡>의 한기웅 리포터는 대구 경북 지역을 돌며 그 곳의 어르신들을 만나러 다니는 그 방송이 <유퀴즈 온 더 블럭>의 초창기 모습과 비슷해 너무 좋았다며 그 이유를 이렇게 들었다. “이 세상의 어느 누군가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주고 가시잖아요.” 무려 14년째 700여 곳의 마을을 누비며 만 명 이상의 어르신을 만나왔다는 한기웅 리포터 역시 그 누군가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일을 해온 인물이었다.

이제는 마을 논만 봐도 그 어르신의 건강상태를 알아챌 정도라는 그는 어르신들이 떠나실 때를 스스로 아시는 것 같다며, 집에 나무를 평소보다 많이 해놓거나, 장을 더 많이 담근 집에서는 어르신들이 돌아가시곤 한다는 먹먹한 이야기를 전했다. 죽기 전 배우자를 위해 가족을 위해 마지막 힘을 그렇게 쓰신다는 거였다.

어찌 보면 그런 곳에 사람들이 사는 지도 모를 외진 마을을 찾아가 어르신들을 만나 ‘자존감을 높여주는’ 일을 해오고 있다는 한기웅 리포터는 그러나 이 방송이 ‘세상을 알게 해준 고마운 방송’이라며 “어른들의 삶을 통해서 제가 크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찾아가 만난 세상사람 모두가 주인공이라고 했다. “누구나가 이 세상의 주인공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함부로 하면 안 된다니까요. 주인공한테 함부로 하면 안 되잖아요.”

코로나19로 인해 새로운 마을을 찾아가는 일이 부담스러워진 상황이라, 이제 과거에 찾았던 마을을 다시 찾아가고 있다는 한기웅 리포터는 하지만 어르신들에게 10년이란 세월은 기다리기 어려울 수 있는 긴 시간이라며 고인이 되신 분들의 빈 집이나 묘소에서 과거를 회고히기도 한다고 했다. 묵묵히 오래도록 방송이 그 길을 주목하면서 담게 된 ‘시간의 흔적’과 그 곳에 남겨진 ‘사람의 온기’는 이런 방송이 갖는 진짜 가치가 어디에 있는가를 잘 드러내준다.

물론 코로나19로 인해 세상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된 현재지만, <유퀴즈 온 더 블럭>도 언젠가 다시 세상 속 숨겨진 주인공들을 찾아 나설 게다. 그리고 이PD나 한기웅 리포터처럼 더 오래도록 그 길을 걷기를 바란다. 그래서 시간과 시대와 사람의 흔적과 온기들까지 담는 프로그램이 되길. 무엇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주인공이라는 걸 보여줄 수 있기를.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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