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구난방 예능 베끼기 경쟁, 이대로 괜찮은가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추석을 앞두고 파일럿(시범) 프로그램들이 대거 준비 중이다. 물론, 예전부터 명절 특집방송의 반응이 좋은 경우 정규 편성된 예는 왕왕 있었다. 그런데 최근 시청자의 반응을 다양한 기준으로 수치화할 수 있게 된 동시에 SNS 등을 통한 피드백이 즉각적으로 이뤄지면서 훨씬 더 파일럿 방송의 활용가치가 높아졌다. 결정적으로 기존의 질서와 문법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형식과 정서를 담은 프로그램들이 인기를 끌면서 성공확률과 기회비용이란 측면에서 파일럿 후 정규화하는 코스가 방송가에 자연스레 정착되었다.
파일럿의 공습은 추석 전부터 이어졌다. 지난 8월부터 지금까지 KBS2의 <바라던 바다>와 <마마도> SBS의 <심장이 뛴다> MBC <화수분> 등이 선을 보였고, 일부 정규편성이 확정되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파일럿 프로그램이 갖는 실험성이다. 이들은 각자 새로운 무엇, 보다 진짜에 가깝고 신선한 무엇을 준비했다고 말한다. 새로운 프로그램인 만큼 실험적인 도전을 하겠다며 출사표를 내세운다.
하지만 출사표와 함께 내미는 것이 비교분석표라는 점에서 문제가 생긴다. <마마도>가 가장 대표적인 사례인데 tvN <꽃보다 할배>와 어떤 차이를 줄 수 있는지가 재미만큼이나 이목을 끈 관전 포인트였다. 그리고 그 차별화에 아직까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편 연예인들이 소방관이 되어 직접 현장에 출동하는 <심장이 뛴다>는 출연진과 제작진이 노력을 기울인 정성이 그대로 느껴진다. 그러나 리얼함이나 완성도와는 별개로 편집에서 인터뷰에 쓰이는 자막 형식까지 <진짜 사나이>의 그림자가 짙게 배어 있었다.
남자들끼리 요트여행을 떠나는 <바라던 바다>에서 내세우는 설정은 가출이다.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이지만 때로는 남자로서 마주하고 싶은 모험에 대한 로망과 일탈의 자유를 환기시킨다. 이는 돌이켜보면 <남자의 자격>과 동일한 정서다. 또한, 중견배우 박원숙과 오미연이 체코로 배낭여행을 떠난 KBS2의 <스타 마음 여행 그래도, 괜찮아>도 SBS <땡큐>를 비롯해 EBS의 <용서>와 <꽃보다 할배>가 즉각적으로 떠오른다.

형식과 방향이란 차원에서 전혀 다른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고, 비교되는 프로그램보다 훨씬 리얼해서 차이가 난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비교분석표가 군색해 보이는 것은 최근 관찰형 예능의 성패는 어떤 ‘특정한 정서’를 예능화하는 실험에 성공했느냐의 여부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할아버지 배우들의 배낭여행을 통해 멀게만 느껴졌던 세대차를 누그러뜨리고, 부정적 이미지가 가득했던 군대를 추억 돋는 현장이자 젊은이들의 땀방울이 느껴지는 도전의 장으로 탈바꿈시키며, 아이들의 순수함과 한 가족의 전성기를 지켜볼 때 느껴지는 행복을 예능화 하는 시대다. 그것을 처음으로 해낸 프로그램들은 성과를 얻었다.
<무한도전> 시대 이후, 시청자들이 그저 보는 입장이 아니라 드라마를 보듯 훨씬 감정이입을 하게 만드는 예능에 있어 어떤 정서를 처음 예능화 했는가는 매우 중요한 판별 기준이 되었다. 그 여부에 따라 ‘오리진’의 아우라가 형성되고, 형식과 캐스팅은 그 뒤를 따라오는 것이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아빠 어디가>는 지난주에도 행복 바이러스를 뿜어냈다. 음식 재료를 마련하고 요리하는 과정에서 아빠와 아이들의 성장을 그려내던 방식을 벗어나 몰카를 통해 아이들의 동심을 제대로 그려냈다. 동물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고 속아 넘어간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은 시청자들을 웃음 짓게 했다. 아빠와 아이가 여행을 떠난다는 단순한 구성 안에서 계속해서 변화를 꾀하면서 시청자들과 공유하는 <아빠 어디가>의 정서가 지루해지지 않게, 마음 깊이 다가오게 만든 것이다.

또한, 다음 주 본격적으로 선보일 친구특집에 앞서 함께 여행을 떠날 친구를 고르고 섭외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의 방송 밖 모습을 잠시 들여다볼 수 있었다. 아직도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아이들의 또 다른 모습을 보게 된다는 기대감을 심어주었다.
반면 이번 추석에 선보일 KBS 2TV의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아내 없이 아빠 혼자 아이와 48시간을 함께하며 육아와 살림을 책임지는 모습을 담는 리얼 예능이라고 한다. 프로그램의 재미와 성공 여부는 당연히 방송을 기다려봐야 알 수 있겠지만 <아빠 어디가>가 시청자들과 교감에 성공한 ‘정서’를 빚지고 가는 것은 피할 수 없게 됐다. 여기서 파일럿의 실험성에 상처가 나게 되고, 시청자 입장에서는 피로 혹은 반감을 느낄 여지가 충분히 있다. 아무리 다른 구성과 캐스팅을 준비했더라도, 방송에 몰입하게 만든 최고의 후크이자 저작권이라 할 수 있는 ‘정서’를 개발하지 않고 빌려 쓰고자 하기 때문이다.

어떤 정서의 오리진이 누구인가는 요즘 예능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다. <심장이 뛴다>는 갈등, 진행 호흡, 사건의 리얼함, 멤버의 조화 및 성장 등 모든 코드가 다 잘 녹아 있는 잘 만든 재밌는 예능이지만 이렇다 할 반응을 얻지 못하는 까닭은 오리진한 정서의 부재에서 찾을 수 있다. 군대 버전이 있기에 연예인들이 소방관이 된다는 설정이 그다지 신선하고 새롭게 다가오지 않는 것이다.
연예인들의 고생기에 감정이입을 해야 하는데 정서적 공감 차원에서 ‘추억’이란 끈끈한 뿌리를 공유하는 <진짜 사나이>에 밀릴 수밖에 없고, 그 프로그램에 빠져들었던 시청자들에겐 묘한 반발마저 느끼게 만든다. 바로 이런 감정, 시청자들을 빠져들게 만들고 내편으로 만드는 힘(정서)를 갖추는 것이 요즘 예능, 특히 관찰형 예능의 필수 요소다. 이런 핵심을 무시한 채 유행하는 설정을 빌려와 새롭게 가꾸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기초 없이 모래성을 쌓는 것과 같다. 쏟아지는 파일럿 프로그램들을 만날 기대를 하면서도 짐짓 염려스런 마음이 드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KBS, SBS]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