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의 여신’을 2030세대에게 권하는 이유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SBS 주말극 <결혼의 여신>은 한마디로 평가하기 어려운 경계에선 드라마다. 소위 주말 홈드라마의 전형인 재벌 설정과 대가족주의의 전통적 가족 이데올로기 등은 그대로 가져오면서 트렌디 드라마의 코미디와 로맨스를 펼쳐 보인다. 공분을 불러일으키는 재벌집 시어머니와 우연으로 가장된 스토리 전개라는 막장 요소 한편에는 이른바 ‘언론고시’에 도전하는 아나운서 준비생의 일상을 꽤나 현실적으로 풀어낸다. 그러면서 자기계발과 사랑의 안정감을 원하는 여성(주부)들의 판타지를 건드린다.

이 드라마를 더욱 모호하게 만든 것은 <결혼의 여신>이라는 제목이다. 중년층 이상의 시청자를 대상으로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낼 듯한 선입견이 들지만, 이 드라마는 사실 연애의 모든 것을 다루는 한국판 <러브 액츄얼리>에 가깝다. 영화에서는 낭만과 설렘을 주로 다뤘다면, 이 드라마는 결혼을 중심으로 맺어지는 연애 관계의 다양한 모습을 유형별로 담아서 펼쳐낸다. 그리고 영화와 마찬가지로 커플들은 모두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결혼의 여신>은 재벌집 며느리의 이야기기가 아니다. 아역과 초단역들을 제외하곤 등장인물들은 모두가 커플 혹은 부부다. 돈만 보고 사랑하던 남자를 버리고 재벌집에 시집간 여자와 어쩌다 보니 사귀던 남자가 재벌집 아들이었던 여자, 찌질이라고 멀리했는데 재벌집 손자라는 말에 전격 시집을 결정한 여자, 결혼 전 다른 남자를 만나면서 흔들리는 여자, 여자가 하도 좋다고 해서 약혼하지만 맘속에는 다른 여자를 품고 사는 남자, 친구처럼 지내는 부부, 바람난 적반하장 남편을 둔 아내 등등의 다양한 상황과 캐릭터가 펼쳐진다.

즉 돈보다 사랑이냐 사랑보다 돈이냐, 남자가 여자를 더 많이 사랑하는 관계와 여자가 남자를 더 많이 사랑하는 관계 등 연애할 때 나타날 수 있는 다양한 모습을 드라마적 에피소드로 풀어내면서 결혼관과 연애의 가치관에 대해 이야기를 건네는 것이다.



비록 <결혼의 여신>은 빈부 계급 차에서 오는 불화, 바람, 우연으로 점철된 개연성, 복수 등등 출생의 비밀 하나 정도를 제외하고는 ‘아줌마 드라마월드’의 요소가 척추를 이루지만 디테일은 연애에 관한 세밀한 관찰과 영민한 표현법으로 살을 붙였다. 그리고 드라마의 재미를 이루는 판타지와 현실감각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톤에 특히 신경을 쓴다. 우리 대부분이 겪을 리 없는, 재벌 시댁에서 갖은 설움을 받는 남상미의 눈물에는 울분과 안쓰러움을 무겁게 담아내면서 정작 현실에서 겪을 수 있는 바람난 남편 에피소드는 최대한 가볍고 코믹하게 다루는 식이다. 마치 <넝쿨째 굴러온 당신>이 그랬던 것처럼 관습을 따르면서 동시에 ‘시월드’에 대한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전략처럼, 다양한 연애관과 며느리 군상을 보여주면서 주말드라마 특유의 가족 이데올로기를 넘어서 결혼의 조건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물론, <결혼의 여신>을 <황금의 제국> 수준의 현실감각으로 치고나가는 드라마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절대 악인이 있고, 공분을 자아내는 시댁에는 아줌마들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들끓게 만드는 나쁜 놈이 존재한다. 드라마 배경의 절반 이상이 재벌사회라는 볼거리에 치중한 판타지도 화려하다. 송지혜(남상미)의 말처럼 너무나 자주 만나기도 한다. 그 넓은 서울 시내에서 서점, 식당, 술집, 심지어 교차로 정지선에서도 마주친다. 그런가 하면 최근 맺어진 노민정(이세영)·김예솔(김준구) 커플은 은희(권영남)와 연결된다. 민정에게는 작은 어머니이고, 예솔 군에게는 튼실한 어느 기업의 회장이신 할머니와 깊은 인연을 맺어서 함께 살고 있는 식구다. 세상이 참 좁다.



<결혼의 여신>이 흥미로운 것은 당연한 설정과 장치를 뻔하게 쓰면서도 ‘어떤 연애와 결혼이 과연 행복한가?’라는 질문에 육박해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 방법론은 판타지가 되기도 하고, 서로 사랑이란 바통을 들고 이어달리기하는 듯한 어쩔 수 없는 마음을 다루기도 한다. 권선징악의 해피엔딩이기도 하다.

가족 뒷바라지밖에 모르던 매력 없는 주부라는 이유로 바람난 남편에게서 오히려 큰소리 듣다가 커리어우먼으로 환골탈태한 은희는 심지어 젊은 남자의 고백을 받는다. 이것은 주부들의 통쾌한 판타지 그 자체다(남편 노승수(장현성)와 바람난 여자가 무려 신시아(클라라)였으니 그 통쾌함은 훨씬 배가된다). 남상미의 눈물에 몰입하게 만드는 건 돈보다 중요한 사랑의 가치에 대한 믿음과 해피엔딩에 대한 기대다. 돈 때문에 모든 걸 포기하고 살던 여자 홍혜정(이태란)의 반격을 응원하게 만드는 것도 역시나 돈보다 나은 무엇에 대한 기대다.



어차피 결혼이란 제도를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면 어떤 남자와 만나는 게 좋을지도 슬쩍 보여준다. 가족에 매여 있는 능력 있는 남자 강태욱(김지훈), 엄마의 치마폭에 둘러싸여 있는 돈 많은 남자 강태진(김정태). 지고지순한 순애보로 다른 여자를 아프게 하는 미간 연기의 달인 이상우가 맡은 김현우도 마냥 멋지다고만 하기 오묘하다. 대신 등장 커플 중 가장 멀쩡하고 보기 좋은 노장수(권해효)·지선(조민수) 부부는 소박하게 살더라도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 얼마나 행복한지를 티격태격하는 가운데 은근슬쩍 보여준다.

어렵게 에둘러 말하지도 않고, 스토리를 말도 안 되게 엄청 빙빙 꼬지도 않는다. 과장되었을지언정 현실을 바탕으로 한 공감과 교훈이 드라마의 주요 관계와 주제에 흐르고 있다. 잘 관찰된 연애와 결혼에 대한 고찰을 기존 드라마 설정 위에다 녹인 것이다. 그래서 <결혼의 여신>은 어머니들만의 드라마가 아닌, 청춘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볼만한 의미가 있는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드라마판 <러브 액츄얼리>인 셈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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