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나의 이 영화는..] 이고르는 흔한 러시아 남자 이름이다. 이런 이름을 가진 사람들 중엔 러시아의 현대음악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처럼 유명한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허구의 세계에서 이고르는 보다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이것은 더 이상 단순한 러시아 남자의 이름이 아니다. 영화 속에서 이고르들은 미치광이 과학자나 뱀파이어, 기타 등등 머리 좋은 악당들의 조수이거나 부하인 흉물스러운 꼽추이다. 그들은 주로 묘지를 파서 시체를 훔쳐오거나 번개가 꽝꽝 내리치는 밤에 수상쩍게 생긴 기계의 손잡이를 잡아당기거나 그밖에 주인들이 하기 싫어하는 힘들거나 귀찮은 일들을 한다.

도대체 언제부터 이런 오리지널 ‘이고르들’이 생겼던 걸까? 쉽지 않은 질문이다. 태초에 이런 캐릭터를 다룬 첫 번째 영화가 있어서 그를 이고르라고 불렀다면 문제는 쉽게 풀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수많은 미치광이 과학자들과 악당들이, 지금이라면 자동적으로 이고르라 불렀을 캐릭터들을 수족처럼 부렸지만 그들은 조금씩 달랐다. 이름이 달랐거나 장애를 가지고 있지 않았거나 이고르라는 이름이라도 철자가 달랐거나. 40년대에 수많은 필름 느와르의 걸작들이 나왔지만 정작 50년대 프랑스 평론가들이 필름 느와르라는 명칭을 붙이기 전까지 장르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자동적으로 3,40년대 유니버설 호러 영화와 연결시키는 이 이름이 곱사등이 조수와 결합된 건 1976년에 나온 멜 브룩스의 패러디 영화 ‘영 프랑켄슈타인’이라고 할 수 있다. 드디어 비교할 원작이 생긴 것이다. 우리가 분명히 지적할 수 있는 원작이 패러디라는 사실은 이고르라는 캐릭터의 성격을 보여준다. 존재 자체가 클리셰인 캐릭터인 거다.

곧 개봉될 애니메이션 영화 ‘이고르와 귀여운 몬스터 이바’는 이 클리셰를 노골적으로 구축해놓고 그걸 다시 깨부순다. 이 영화에서 이고르는 일반명사가 된다. 이고르는 직업이고 계급이며 심지어 자격증을 주는 학교도 있다. 다행히도 이 영화의 주인공인 ‘이고르’는 이런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계급을 넘어서는 꿈을 꾼다. 그 자신이 미친 과학자가 되려는 것이다. 물론 어린이 영화이기 때문에 정말 그의 꿈이 실현되는 것으로 영화가 끝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영화가 끝날 무렵, 이 영화의 이고르는 수십 년의 클리셰가 만들어 놓은 ‘이고르’의 고정관념을 깨고 독자적인 인물로 서는 데에 성공한다. 브라보!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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