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박2일’ 게임 집착 버리니 사람 냄새 폴폴 난다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1박2일>에 다시 사람 냄새가 난다. 모처럼 활기를 찾은 시장통처럼 북적인다. 지난 몇 년간 완만한 하강곡선을 그리던 가운데 찾아온 지난 1여 년간의 특히 심했던 부침, 그간의 방송환경의 변화 속에서 갈 길을 잃고 헤매던 시절을 벗어나 드디어 가장 <1박 2일>다우면서 가장 잘할 수 있는 목표를 찾은 듯하다. 지난여름 폐지설이 나도는 굴욕을 맛봤던 KBS 2TV <해피선데이-1박 2일 시즌2>은 지난달 강릉 바우길 트래킹 특집을 시작으로 그들만의 비전과 콘셉트를 선보였다. 그것은 바로, 여행 그리고 ‘사람’이다.
강호동이 틀을 마련한 만큼 <1박 2일>은 언제나 유쾌하고 즐겁고 정신없을 만큼 시끌벅적했다. 김승우 시절을 거쳐 지금까지 쭉 이어지고 있는 ‘야생’ 버라이어티의 정체성이다. 멤버들 간의 불신과 반목이 드러나는 복불복 게임은 리얼 버라이어티의 상징과도 같았고, 게임에서 오는 즐거움과 긴장감은 분명 <1박 2일>의 지난 6년의 밑바탕이었다.
문제는 예능 선수 출신들이 다 빠져나가면서 캐미스트리가 무너졌다. 멤버들은 갈등과 긴장관계를 만드는 데 서툴렀고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게임의 비중은 점점 더 높아졌다. 그러다 출발할 때부터 퇴근할 때까지의 모든 일정이 5~6개의 게임으로 이뤄질 정도로, 아예 잠자리 복불복에서 파생된 각종 게임만 남게 됐다. 지켜보는 입장에서 아무 목적 없는 게임의 활기는 소음에 가까웠다.
이처럼 <1박 2일>의 추락은 포맷의 식상함보다 정체성을 잃은 것이 더 큰 문제였다. 시청률 30%를 상회하던 시절 <1박 2일>의 인기는 게임 때문만이 아니었다. 웃음 밑에 짙게 깔린 정서적 공감대가 훨씬 더 중요한 것이었다. 그간 우리가 등한시 했던 우리나라 곳곳의 아름다운 풍광과 정겨운 풍경을 보여주면서 사람, 가족애 등 향수를 자극했고 이는 여러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대중적 정서였다. 거기다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 펼치는 게임은 일요일 저녁, 평화로운 가족이란 그림에 딱 들어맞았다. <1박 2일>은 여행과 여가문화를 선도하는 감성 있는 문화콘텐츠로 각광받았던 것이다.

그리고 지난 두 달 간 <1박 2일>은 서서히 자신을 찾아가고 있다. 게임을 걷어내고 길과 사람을 담은 트래킹 특집부터 멤버들에게 24시간의 시간을 주고 3명의 친구를 데려와 즉석 여행을 떠났던 친구 특집까지 모두 사람과 관계를 화두로 삼았다. 멤버들 간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사람들과의 이야기 속에서 관계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런 경향은 특히 카이트스와 경북대, 전남대 등 지역의 대학교로 찾아간 캠퍼스24시 특집에서 더욱 잘 드러난다. 어느덧 인생의 선배가 된 멤버들이 전국 각지의 청춘들을 직접 찾아가 마주하고 그들 속으로 녹아들었다. 게임은 곁들이는 양념일 뿐이었다. 웃음은 게임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학생들과 멤버들의 만남, 사투리를 쓰는지 인지 못하는 학생들의 순수함, 그리고 한번쯤 경험했거나 봐왔을 법한 대학의 보편적인 풍경과 어디가나 연애에 고민하는 청춘의 모습에서 비어져 나왔다.

힙합동아리의 작은 공연에 무려 성시경과 김종민이 올라가 찬조출연을 하고 무려 유해진이 연극동아리를 찾아가 학생들에게 조언을 한다. 카이스트를 찾은 차태현은 공부벌레들에게 연애론을 설파했다. 그리곤 그들의 자취방과 기숙사에 어떻게든 끼어서 잤다. 이건 그 학생들에게나 멤버들에게나 시청자들에게나 추억이다. 그들의 잠자리는 불편했겠지만 시청자들에겐 대학, 젊음, 청춘이란 이름의 낭만을 담아냈다.
각 지역 대학의 살아 있는 청춘들을 만나서 그들의 문화, 생각, 고민을 함께하는 장면에서 그간 그들만의 게임을 벌일 때 들었던 괴리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자기들끼리 웃고 떠드는 걸 왜 봐야 하냐는 것이 <1박 2일>에 대한 의문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들 안에서의 놀음은 끝내고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청춘들에게는 공감과 지금이 얼마나 찬란한 시기인 것을 깨닫게 해주고, 또 다른 이들에게는 추억과 조우하는 시간을 만들었다. 단순한 복불복의 나열을 벗어나 사람을 만나고 그 이야기를 재밌게 담기 시작한 것이다.
<1박2일>의 이세희 PD는 얼마 전 초심으로 돌아가 여행의 참된 의미를 살리겠다고 말한 바 있다. <1박2일>이 보여줬던 여행의 즐거움, 여행지 소개라는 본연의 의미를 앞으로 부각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 포부는 이제 구체화되어 찾아왔다. 그것은 바로 ‘사람’이었다. 이제 <1박 2일>은 시끌벅적하기만 하는 정신없는 예능이 아니라 길 위에서 사람을 만나는 로드 무비에 가까운, 또 다른 리얼 버라이어티의 모습을 기대하게 한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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