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미디어=정덕현] 이제 남은 건 커밍아웃뿐인가. KBS 월화드라마 <연모>에서 이휘(박은빈)의 비밀은 이제 점점 그 장막을 거둘 때를 맞이하고 있다. 쌍생 여아라는 이유로 태어나자마자 죽을 위기를 겪었던 이휘. 하지만 오라비의 죽음으로 남장을 한 채 왕세자를 대신하는 삶을 살아온 그는 이제 그 정체가 발각될 위기에 놓였다. 한기재(윤제문)가 의심하기 시작했고, 중전 노하경(정채연)을 더 이상 속이며 지내기가 버거워졌다.

이휘는 정지운(로운)과 가까이 지내는 것에 남색을 의심받게 되었고, 정석조(배수빈)는 이휘가 여자라는 걸 알고 있다며 아들 정지운에게 신소은(배윤경)과 혼례를 치르라 명했다. 그렇지 않으면 가문을 위해서라도 이휘를 자신이 죽일 수밖에 없다고 으름장을 놓은 것. 정지운은 이런 사실을 알리지 않고 이휘에게 혼례를 알리며 떠났고, 이휘를 지켜주던 김상궁(백현주)과 홍내관(고규필)도 한기재의 위협을 받은 채 궁을 떠났다. 이휘는 벼랑 끝에 몰린 채 혼자가 됐다.

<연모>는 그저 달달하기만 했던 이휘와 정지운의 궁궐에서 금기를 넘어서는 사랑 이야기에서 이제 마지막 파국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휘의 정체를 알아채고 이제 왕의 자리를 노리는 원산군(김택)은 한기재를 찾아와 그 사실을 알리며 승부수를 던졌고, 한기재는 반신반의하면서도 이휘를 의심하게 됐다.

사실 왕위에 오른 이휘와 신하 정지운의 사랑은 어디서 어떻게 풀어야 할지 복잡하게 꼬인 실타래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두 사람 사이가 절절하고 가까워질수록 불안감 또한 커질 수밖에 없었다. 이휘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한기재와 그와 함께 정권을 장악하려는 무리들을 제거하고 왕권을 다시 세운 후 그의 이복동생인 제현대군(차성제)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휘의 투쟁은 그 궁극적 목표가 권력을 쥐는 것이 아니라, 본래의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것이다. 어려서 불렸던 담이라는 이름을 되찾는 것이고, 정지운이 지어준 ‘연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다. 무겁디 무거운 곤룡포를 벗고 자신의 본래 성인 여성을 드러내며 당당히 살아가는 것. 그래서 이것은 이휘의 ‘커밍아웃’이나 다를 바 없다.

궁을 떠나 도망치던 김상궁이 정지운을 찾아가 이휘의 어릴 때 이름이 ‘담이’라고 알려주자, 그 길로 궁으로 달려간 정지운이 이휘에게 “담이야”라고 부르는 장면은 그래서 이 사극이 궁극적으로 하려는 이야기를 잘 드러낸다. 그들만의 추억이 남겨진 비밀의 후원에서 마침 그 때의 흔적을 지워버리려는 듯 ‘연선’이라 써준 종이를 태워버리려던 이휘를 멈춰 세운 건 그 이름이었다. 그의 진짜 정체성을 드러내는 이름.

<연모>는 그래서 숨기고 살 수밖에 없었던 정체를 드러내려는 무리들과, 그들과 맞서 싸우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려는 이들의 대결로 그려지고 있다. 이휘는 과연 이 꼬인 실타래를 풀어내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을까. 본래 그의 이름으로 불릴 수 있을까. 그 어떤 부와 권력보다 진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이 더 행복한 일이라는 걸 그는 몸소 보여줄 수 있을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