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남자이면서 일곱(* 2) 명이나 되는 여성 캐릭터들이 주인공인 영화를 만든 죄를 지었다는 이유로, [써니]의 감독/작가 강형철은 도대체 남자가 어떻게 이런 작품을 만들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대답 대부분은 지루하거나 평범하다. 캐릭터들을 여자 대신 그냥 사람으로 봤다는 대답은 그 중 가장 뻔하다. 이건 여성 주인공을 내세우는 남성 예술가들이 툭하면 내세우는 핑계로, 나는 故 곽지균 감독이 [두 여자의 집]을 만든 뒤 거의 똑같은 변명을 했던 걸 아직도 기억한다.

그건 강형철의 잘못이 아니다. 평범하고 지루한 질문에 대한 당연한 반응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이 질문 역시 보기만큼 단순하지는 않다. 이성 캐릭터의 묘사와 수용은 한 번쯤 깊이 생각해볼 문제이긴 하다.

수많은 허구의 창조물들이 이성 창작자들의 손과 머리에 의해 만들어진다. [제인 에어]의 로체스터,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블랑쉬 뒤브와, [오만과 편견]의 미스터 다시, [안나 카레니나]의 안나 카레니나와 같은 인물들을 보라. 이들이 빠진다면 허구의 세계는 극도로 심심해질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인물들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특별한 통찰력과 경험이 필요한 것일까? 물론 필요하다. 그래서 제인 오스틴이나 레프 톨스토이가 위대한 작가들인 거다.

하지만 이는 설득력 있는 이성 캐릭터의 창작에 특별한 통찰력이 필요하다는 일반론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반대가 맞다. 대부분의 경우 이성 캐릭터의 창조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그 캐릭터가 다른 성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지나치게 인식하는 데에서 발생한다. 이런 실수를 저지르는 작가들은 캐릭터를 만들 때 그들을 ‘여성’ 또는 ‘남성’의 기계적인 틀 안에 놓고 오로지 그 안에서는 심리묘사와 행동을 끌어낸다.

수많은 연속극 캐릭터들이 그 희생자들이다. 예를 들어 요새 거의 모든 연속극에 나오는 것 같은 ‘실장님’ 캐릭터나 ‘나쁜 남자’ 캐릭터들은 오로지 성적인 기능성만 갖고 있다. 소위 ‘청순가련’하거나 ‘캔디’인 여자주인공도 다를 건 없다. 고로 이런 실패는 작가의 성과도 무관하다. 시작부터 이런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다면 여성 작가가 여성 캐릭터를 써도 거의 똑같은 결과가 나온다. 여기서부터는 작가가 어느 성에 속해 있느냐는 부차적인 문제인 것이다.

물론 육체적/정신적 성이 캐릭터에 주는 영향은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은 캐릭터를 결정짓는 유일한 요인은 아니다. 캐릭터가 자신의 성에 속해 있지 않다고 해도, 부당한 편견,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어리석고 사악한 정부, 갑작스럽게 찾아온 행복과 같은 극적 재료들에 대응하는 캐릭터의 법칙을 이해하기 위해 여분의 상상력이 필요하지는 않다. 인간이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최소한의 공감의 능력만 갖는다면 대부분의 문제는 해결 가능하다. 대부분 실패는 지나치게 생각하고 불필요한 상수를 추가하는 데에서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강형철과 곽지균의 지루한 답변은 의외로 정곡을 찌르고 있다. 적어도 강형철의 경우 그가 성공한 이유는 ‘여성 캐릭터’를 만든다는 의식에 갇히지 않고 비교적 자유롭게 캐릭터를 풀어놨기 때문이다. (곽지균은 그러지 못했다. 그의 대답과는 달리, [두 여자의 집]에 나오는 캐릭터들은 갑갑할 정도로 ‘영화적 여성’의 관념 안에 갇혀 있다.) 강형철은 대부분의 평자나 관객들보다도 거기서 자유롭다. 적어도 그는 [써니]라는 영화를 무조건 ‘어머니’나 ‘아줌마’의 틀 안에 넣고 봐야 한다고 믿는 평균적인 평론가들보다는 자유롭다.

예를 들어 영화 속 하춘화 캐릭터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간단한 선입견 하나를 포기하면서 이야기할 공간이 늘어나는 것이다. 이런 단순한 행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자유를 포기하는 작가들이 이렇게 많다는 건 이상한 일이다. 살아있는 어떤 사람들도 ‘성적인 편견’의 평균만큼 지루하지는 않다. 그런데 허구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작가들의 임무는 지루한 삶을 사는 관객들이나 독자들을 위해 보다 다채로운 캐릭터와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왜 삶의 평균보다 좁은 감옥 안에 캐릭터들을 일부러 밀어넣느냔 말이다.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써니’]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