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시평 PD의 ‘멍키시티’, 또 하나의 우화 동물다큐 명작의 탄생

[엔터미디어=정덕현] 영화 <혹성탈출> 아냐? 수백 마리의 원숭이들이 도로로 튀어나와 집단 패싸움을 벌이는 장면에서 누구나 그런 생각을 했을 법하다. <SBS 스페셜>이 태국 롭부리 원숭이들을 담은 <멍키시티>는 동물다큐지만, 이를 보여주는 방식은 <혹성탈출>이 떠오를 정도로 독특하다. 캐릭터가 등장하고 그들 간에 벌어지는 서사가 내레이션을 통해 그려진다. 그래서 <멍키시티>를 한참 들여다 보다 보면 이들이 원숭이였다는 사실을 깜박 잊는 어떤 순간에 놀라게 된다. 어쩌면 우리랑 저렇게 닮았을까.
원숭이들의 집단 패싸움에서 <혹성탈출>이 떠올랐다면, 이 다큐멘터리가 1부에서 중점적으로 다룬 깔록과 차오의 대결은 <대부> 같은 느와르가 떠오른다. 사원파, 극장파, 시내파로 나뉘는 롭부리의 원숭이들 중, 사원파에서 벌어지는 깔록과 차오의 우두머리 싸움이 그것이다. 탑 구조로 되어 있는 사원에서 가장 중심에서 밑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인 우두머리 자리에 본래 앉아 있던 깔록이 차오와 그를 따르는 무리들에 의해 밀려난 후, 다시 세력을 규합해 자기 자리를 찾는 이야기가 영화도 아닌데 <멍키시티>에서는 생생하게 펼쳐진다.

암컷들을 도와주고 그루밍하는 것으로 세력을 모으는 깔록과 무력으로 공포정치를 하는 차오의 대결은 그 서사 자체가 정치적이다. 원숭이들이 우두머리 자리에 오르기 위한 싸움이지만, 너무나 우리네 정치를 닮았다. 권좌에 오르려는 우두머리가 있고, 그에 반발하는 무리가 있으며 힘을 가진 원숭이에게 어떻게든 잘 보이려는 무리도 있다. 반면 홀로 새끼를 낳아 시시각각 위험의 순간들을 넘기며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서민들의 모습을 보이는 원숭이도 등장한다.
이처럼 권력을 잡으려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먹이와 종족 번식에 대한 욕망 때문이다. 도시 한 가운데서 살게 된 원숭이들은 인간이 주는 먹이들을 통해 생존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른바 ‘먹이존’에 음식이 도착하면 그것을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영역 싸움이 벌어진다. 사원파와 극장파는 집단 패싸움을 하고 우두머리나 그를 보좌하는 싸움꾼 원숭이들이 나서서 각 파를 위한 대결을 벌인다. 시내파 원숭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행인들의 음식을 훔치거나 도로나 전선줄의 위험을 감수한다.

<멍키시티>가 보통의 동물들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여타의 동물다큐들과 다른 점은 인간과 동물의 공존 같은 현재 우리가 처한 환경 문제까지 담아내려는 시선 때문이다. <혹성탈출>이나 <대부> 같은 연출이 재미를 주지만, 그 밑에는 어쩌다 도시에서 인간들과 살게 된 원숭이들의 달라진 환경문제가 깔려 있다. 본래는 숲이었고 그 속에 있던 사원이었지만, 개발에 의해 도시가 되면서 유일하게 남겨진 사원에서 대를 이어 서식하게 된 원숭이들이었다. 당연히 생존방식도 달라졌다. 인간과 공존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한 것이다.
치열한 권력다툼이 생겨나고 급기야 도로 한 가운데서 집단적인 패싸움이 벌어지게 된 건 코로나19의 영향이 컸다. 이전까지만 해도 관광객들이 찾아와 먹이를 주는 등 풍족한 삶을 살았지만, 개체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코로나19로 관광객의 발길이 뚝 끊기면서 먹이 부족이 종족 보존의 위기감까지 만들면서 그들끼리의 생존경쟁이 벌어지게 된 것이었다.

즉 인간이 처한 코로나19 같은 환경 재난은 고스란히 동물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걸 이 다큐는 보여준다. 그리고 그렇게 제한된 먹이를 두고 치열해지는 생존경쟁이란 에둘러 그와 별반 다르지 않은 우리들의 삶을 반추하게 만든다. 영화를 보는 듯한 재미가 있지만 묵직한 메시지 또한 울림을 남기는 이유다.
주시평 PD는 우리에게 <길고양이 K>, <더(THE)람쥐>, <라이프 오브 사만다> 같은 우화식 스토리텔링을 담은 동물다큐를 일관되게 만들어온 인물이다. 이들 다큐들을 통해 그가 계속 해서 던지는 화두는 ‘인간과 동물의 공존’으로 이번 <멍키시티> 역시 그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이 흥미로운 건, 일련의 동물들의 생태를 관찰하는 걸 통해 이토록 인간세상을 통찰할 수 있는 시선을 던져준다는 점이다. 그래서 <멍키시티>를 보다 보면 저절로 느껴지게 될 것이다. 우리의 처지가 저들과 다를 게 뭐가 있는가를.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