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단심’, 사건 자체보다 감정 안으로 들어가면 더 재밌는

[엔터미디어=정덕현] “그대는 좌상의 질녀가 아니다. 아니어야 한다. 방법을 찾을 것이다. 그러니 다시는 죽으려 하지 말라. 과인을 홀로 두지 말라.” KBS 월화드라마 <붉은 단심>에서 이태(이준)는 유정(강한나)에게 입맞춤을 하며 그렇게 말한다. 유정을 밀어낼 듯 보였던 이태가 갑자기 달려와 “오늘밤 과인을 허락한다”며 입맞춤을 하는 장면은 이들의 내면으로 깊게 들어가 보지 않으면 갑작스런 느낌마저 준다.

그도 그럴 것이 이태는 연희(최리)와 합방을 하려던 참이었다. 입맞춤을 하는 것처럼 보였던 이태는 대신 연희를 껴안아주고 “미안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유정에게 달려간다. 좌의정 박계원(장혁)과 반정 공신들을 밀어내기 위해서는 정략적으로 병판 조원표(허성태)의 여식과 합방하는 선택을 해야 했지만, 그건 생각일 뿐이고 막상 눈앞에 직접 그 일이 닥치자 이태는 깨닫는다. 자신이 얼마나 유정을 연모하고 있는가를.

그래서 이들이 처한 꼬인 관계 속에서, 그렇기 때문에 더 애틋할 수밖에 없는 감정들 속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는 시청자들은 이태와 유정의 입맞춤이 더 절절하게 느껴진다. 그건 감정이 아닌 겉으로 벌어지는 사건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의 변화들이다. 그리고 이건 <붉은 단심>이라는 사극이 가진 특징을 가장 잘 보여준다. 이들의 서로에게 애틋한 요동치는 감정과 그럼에도 그 꼬인 관계가 만들어내는 또 다른 감정의 부딪침. 그것이 뒤섞이며 <붉은 단심>만의 변화무쌍한 상황과 사건들을 만들어내고 있어서다.

그렇게 유정과 이태가 하룻밤을 보냈지만, 이들이 가까워지는 걸 결코 용납하지 않는 박계원의 반격이 이어진다. 그런데 박계원이 하는 반격은 결국 이들의 감정을 갈라놓는 방식이다. 그는 유정의 가문이 몰락하게 된 이유가 박계원 때문이 아니라, 이태와 그의 아버지 선종(안내상) 때문이라고 강변한다. 결국 이태가 세자였던 시절 그의 어머니 중전이 죽은 건 억울한 누명을 쓴 유정의 아버지 유학수 때문도 아니지만 세간에 알려져 있듯이 박계원이 독살했기 때문도 아니며, 스스로 독이 든 차를 마셨기 때문이었다.

그런 자작극을 통해 어린 이태는 살아남을 수 있었고, 선종이 나서서 유학수를 중전을 독살한 자로 지목해 그 가문이 몰락하게 된 것이었다. 박계원은 이 사실을 유정에게 알려줌으로써 이태와의 관계에 선을 그으려 한다. 그리고 이태도 그 사실을 유정에게 고백한다. 박계원의 계략은 효력을 발휘했고 결국 유정은 이렇게 말한다. “모두 내 원수로군요. 대감도 선왕도 전하마저.”

유정의 흔들리는 감정이 드러내는 말이지만, 유정은 과연 박계원의 계략대로 이태와의 관계를 끊어낼까. 결코 그렇지 않을 듯 싶다. 박계원만큼 속이 깊은 유정은 그의 손을 잡은 듯 그의 질녀가 되어 중전이 되려 하지만, 그 칼끝은 결코 이태를 향한 것이 아닐 듯싶기 때문이다. <붉은 단심>이라는 제목이 다시 보인다. ‘일편단심’ 이태에 대한 마음이 바로 유정의 마음이지만, 그걸 지켜나가는데 있어서는 ‘붉은’ 피가 흐를 수밖에 없는 유정의 처지를 이 제목은 말하는 것이 아닐까. 요동치는 감정을 깊이 들여다보면 볼수록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사건 전개의 흐름으로 <붉은 단심>은 시청자들의 시선을 단단히 붙잡아 놓고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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